‘인스타 감성’, 이제 좀 질려요.
간만의 휴일이었다. 오래간만에 자주 가는 북카페에 가고 싶었다. 내가 자주 가는 북카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힐링공간이다.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로, 마당에 정원이 있어서 사계절의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원목으로 된 테이블과 의자들은 곳곳에 놓여 있는 화분들과 조화를 이루고, 방 한쪽에는 북카페답게 책장과 책들이 놓여있는 이 분위기를 좋아한다. 내가 이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는 인테리어가 예뻐서 이기도 하지만, 바쁜 현대사회에 마음을 좀 더 여유롭게 두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말 그대로 힐링하기 좋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시간이 맞지 않아 못 갔는데, 이번 휴일이 기회이겠거니 싶었다.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휴일에는 카페를 열지 않는다는 인스타 공지가 떴다. 오래간만에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힐링’을 하고 싶었는데, 카페를 열지 않는다니. 평소보다 더 서운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카페에서 책은 읽고 싶었다. 평소에 자주 마주하는 집이 아닌, 인테리어도 잘 되어있고 커피 향을 풍기며 여유롭게 날 반겨주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며 차분하게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난 다른 카페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휴일에 어떤 카페를 갔냐, 전혀 예상치 못한 곳을 갔다. 그날 나의 하루 계획은, 아침에 한의원을 갔다가(3주째 허리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서 방문했다. 이 타이밍에 허리 한 번 펴보는 것은 어떨까) 카페를 방문해 브런치와 커피를 먹고 집에서 좀 쉬었다가 저녁 약속을 가는 것이었다. 집에서 한의원까지는 거리가 조금 있었다. 그래서 한의원을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카페를 들르기로 한 것이다. 나는 길을 배회하다 아무 카페나 잡아서 들어갈 성격이 못 된다. 그래서 적당한 카페를 검색해 놓고 그 카페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길을 잃어버렸다. 아까 왔던 길이 아니다. 그래도 아주 낯선 동네는 아니기 때문에 조금 돌아가는 길 이어도 마냥 걷고 있었다. 그때 멀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카페가 보였다. ‘인스타 감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카페였다. 카페 이름도 영어로 지어진 멋들어진 이름이 아니라 나무판 위에 새겨진 순우리말의 이름이었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공간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한쪽에 책장이 놓여있었고 커피를 내리는 영역에서는 커피에 대한 사장님의 자부심이 보였다. 그냥 지나칠까 했지만 그 공간이 궁금했다. 그래서 그냥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에 들어가 보니 어리둥절한 나를 맞이하는 더 어리둥절해 보이는 사장님이 계셨다. 어김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카페에서 편하게 책을 읽고 있을 때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클래식을 틀어주는 라디오 채널인 듯했다. 클래식 또는 가곡이나 뮤지컬 넘버가 나오고 그 사이사이에 방금 들려준 노래나 사연을 소개해주는 라디오 디제이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음악 대신 라디오를 틀어주는 카페는 처음이었다. 클래식 음악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줬고, 중간중간 들려오는 라디오 디제이의 목소리는 여유로운 느낌과 안정감을 줬다. 게다가 같은 주파수,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 있는 디제이와 내가 서로 소통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따로 사연을 보내거나 하지 않아도 같은 시간에 같은 음악을 공유하고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발이 이끄는 대로 무작정 들어간 카페에서 친근하고 몽글몽글한 느낌을 받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인스타 감성’ 카페가 성행하는 시대. 예쁜 사진, 개성 있는 인테리어, 무드를 완성시켜 주는 조명과 음악. 예전에는 이런 공간이 기대가 됐다. 번화가에 갈 예쁜 카페를 검색하고, 맘에 드는 예쁜 카페를 찾아서 방문하는 게 특별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요새는 예쁜 카페가 너무 많다. ‘인스타 감성’이라고 하는 카페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 카페들은 카페 고유의 개성을 살렸다고 하지만, 파스텔 톤 아니면 키치 아니면 모던한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니면 마감이 덜 된 것 같은 인테리어, 그냥 봤으면 거의 무너져 내리기 직전인 건물에 간판을 붙여 ‘인스타 감성’ 카페라고 하기도 한다. 제목은 정확히 모르지만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나른한 힙합 아니면 팝 음악을 틀어놓고, 오래 앉아있기엔 불편한 의자와 테이블을 배치해 놓는다. 가끔은 테이블이 아닌데 테이블이라고 배치해 놓은 것들도 있다. 아크릴이 유행이면 아크릴로 된 가구들을 쓰고, 체커보드가 유행이면 체커보드로 꾸며 놓는다. 물론 본인이 원하는 대로 꾸미는 게 잘못은 아니다. 유행을 따라가는 게 잘못됐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으로서 이제 이런 공간이 기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 그게 문제다. 심지어 이런 공간이 질린다. 아마 이런 공간에 질려버린 건 나 혼자만은 아닌 것 같다. 인터넷에는 이런 ‘인스타 감성’ 카페들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글이나 사진, 영상 등이 올라오고 있다 (물론 공간만의 문제는 아니긴 하지만). 사람들은 이걸 보며 다들 공감한다. 다 다른 카페들이지만 거의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 카페를 개성 있고 특별하게 꾸미다는 게 오히려 개성 없는 카페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까지 ‘인스타 감성’ 카페에 대한 문제점을 풀어놓긴 했지만, ‘인스타 감성’의 카페가 나쁘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인스타 감성’이라고 말하는 카페들의 현주소가 조금 아쉬울 뿐이다. 카페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좀 더 풀어보자면, 카페는 좀 더 포근한 맛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공간과 달리, 카페야말로 내가 원하는 대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이다. 식당은 밥을 다 먹으면 그 공간을 떠나야 하고, 영화관은 영화를 다 보면 그 공간에서 나와야 한다. 그런데 카페는 커피 한 잔 하면서 공부나 작업을 하거나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친구들과 와서 수다를 떨 수도 있다. 개인적인 생각을 좀 더 보태보자면, 카페는 커피를 파는 곳 그 이상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좀 더 마음을 놓고, 마음을 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사람들이 기대를 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SNS가 성행하면서 일상을 공유하는 게 일상이 되고, 그러다 보니 일상이 아닌 것도 일상이라고 공유하는 현상이 늘어났다. 그런 SNS 감성에 맞추다 보니 허울 좋은 카페들이 늘어나버린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인스타 감성’에 질려버린 사람의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