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비 5만 원

참전용사

by 타인K

일이 너무 밀려 다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이미 잡아놓은 휴가 일정 미루기엔 마이너스가 너무 커서 업무와 함께 온 여름휴가는 시작이 안 좋았다. 안 그래도 쑤시는 몸은 호우주의보와 함께 더 쑤셨고, 출발할 때 비가 너무 많이 와 진짜 호텔에서 박혀 일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과 함께 출발했다. 오랜만에 타는 고속버스는 여전히 불편했고, 작았다. (물론 덩치가 있는 사람으로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광주에 도착했다는 알림에 몸을 깨우기 위해 스트레칭을 간단히 하고, 창문을 보니 지금이 아침이 맞는 시간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하늘엔 구름이 가득했고, 빗줄기로 내 시야를 가렸다. 너무 배가 고파 간단히 카페 가서 샌드위치로 허기를 채우고, 시간이 떠서 서류 작업을 시작했다. 점점 사람이 많아져 혹시 비가 안 오나 싶어서 나가보니 비가 깔끔히 개어서 얼른 숙소로 가자라는 생각에 택시 정거장으로 갔다.


요즘 다리가 안 좋아 걸음걸이가 늦는데, 내 앞을 지나처 간 2분이 택시를 먼저 타고 가시고, 난 좀 더 기다려 다음 택시를 탔다. 숙소이름은 잘 모르시길래 자세한 주소를 말씀드리고, 에어팟을 껴 노래를 고르던 찰나에 “경상도에서 오셨소”라고 기사님이 말문을 여셨다.

“어 예 어째 아셨습니까? 티 납니까?”

하니 웃으시며 “부산이요 대구요” 하셨다

“저 부산사람입니다!”

그러곤 웃음과 함께 정적

다시 몇 미터를 가다

“요새도 부산에 항 있어요?” 하시길래

“네..? 있죠”

순간 당황에서 속으로 원래 있는 게 아닌가?

부산 사람이신가?

별에 별 생각이 다 들어 내가 고향이 부산이시냐 여쭤봤다. 그러자 “ 아 그게 아니고 부산에서 배 타고 월남으로 타고 왔다 갔다 했습니다”라고 하셔서

기사님 나이도 좀 되어 보시고 월남이라 하시니 참전용사밖에 생각 안 나서

“어 참전용사십니까..?” 란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웃으시며 기사님은 갔다 왔지요라는 말과 함께 운전을 이어가셨다.


참전용사.

내가 항상 말로만 들었던 우리 외할아버지도 참전용사셨다.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할아버지 살아계셨으면, 널 정말 사랑했을 것 같다”라는 문장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는 외할아버지. 순간 감정이 동요했지만, 슬픈 기억은 없기에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단지 아쉽고 보고 싶긴 하다는 감정뿐.

그래서 대화를 이어 가려고 노력했다.


“저희 외할아버지도 참전용사십니다!”

라는 나의 말에 기사님은 한참 있다가 입을 떼셨다.

”잘 지내고 계십니까 외할아버지는? “

“아니요. 돌아가셨습니다.”

“어디에 계십니까 지금은”

나는 답했다. “아 최근까지 계속 증명하려고 외할머니가 고생하시고 계십니다…확실한 진행 사항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자 기사님은 고생이 많다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냥 공감대 하나로 처음 뵙는 분과 이야기를 하며 외할아버지를 느꼈다. 지금 살아계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과 정말 외할아버지랑 엄청 잘 맞았을 것 같다는 확신. 그런 생각을 처음 뵙는 참전용사 기사님과 대화로 느꼈다.


그렇게 목적지로 도착했고, 카드가 없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며 계좌번호를 알려달라 말씀드렸다.


그렇게 택시비는 5만 원이 되었다.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의 금액이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외할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 준 감사함에 자연스럽게 이체를 했다.


택시에서 내릴 때도 자연스럽게

“국가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택시에서 내려 여행의 첫 단추가 출발 할 때가 아니고 지금이라는 확신과 함께 여행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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