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을 수집하는 취미 유목민

하루를 소소하게 채워주는 즐거움들

by 단비

얼마 전 들었던 강의 때 자신만의 핵심가치를 찾는 미션에서 '즐거움'이라는 단어가 최종적으로 남았다. 수많은 핵심가치 중에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즐거움'임을 처음 알게 되었다.

물론 서브로 '열정'과 '성장'이라는 두 단어가 더 등장하기는 하지만 나의 자존감을 높이고 긍정성을 뒷받침하는 핵심가치는 '즐거움'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늘 '즐거운 일'을 찾아 동분서주 움직인다.

잠시도 멈추지 않는 즐거움에 대한 욕구는 평소엔 일 그 자체가 즐거움이기에 채워졌고, 일이 없어 한 가해지는 때는 새로운 즐거움을 기어코 찾아내곤 했다.

문제는 즐거움을 주는 그 행위들이 지속하지 못하고 안면 박대하듯 쉬이 떠나버린다는 것이었다.

자율이 아닌 당위로 바뀐다거나 일과 깊숙한 연관이 생긴다거나 나를 죄어오는 사슬이 되는 순간 즐거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결혼 초에 십자수를 배웠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아기용품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고 싶어 시작했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상상 속의 나는 헬로키티가 수 놓인 턱받이를 한 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있었다.

그것을 내 손으로 만들다니.

소름 돋을 만큼 즐거운 일임이 틀림없지 않은가.

십자수를 때려치운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번 손을 데면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 탓에 어깨가 망가지건 손이 부르트건 개의치 않고 작품 하나가 완성될 때까지 밤을 새워가며 한 것이 원인이었다. 베개커버와 턱받이, 쿠션 두 개를 만드는 것을 끝으로 십자수는 일상에서 사라졌다. 병원을 한 달 동안 다녀야 하는 귀찮은 숙제만 남았다. 그때 생긴 승모근이 아직도 두둑한 느낌이다. 십자수는 지금까지도 하지 않는다.


5년 전 겨울에 나는 팝아트라는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조직 활성화 강의나 셀프리더십 강의에 활용하기 좋은 콘텐츠라는 그럴싸한 이유도 한몫했다. 일 년 가까이 아뜰리에에 가서 작가들을 만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일에 지친 내겐 휴식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팝아트 강사 자격증을 따고 본격적으로 강의에도 접목하기 시작했다.

일과 연관되었지만 흥미로운 작업이었고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그린 작품과 감동을 함께 가져가는 호응도 높은 강의가 되었다. 이미 미술치료도 접목하고 있던 터라 더없이 좋은 콜라보였던 것이다.


나를 스치고 지나는 취미는 셀 수 없이 많이 생겨났고 또 사라졌다.

이미 질려버려 다시 시작하지 않는 것들도 있고 혹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는 것들도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하나 된 공통점이 있었다.

그 순간엔 즐겁고 행복한 내가 있었다는 것이다.


고교 시절 악기 시험을 치르기 위해 한 달간 속성으로 배웠던 통기타는 나에게 낭만을 선물했었다.

기타를 치며 '겨울 아이'를 불렀던 악기 시험에서 악기가 아니라 노래로 다 하려 했다며 웃으셨던 음악 선생님의 후한 점수가 아직도 추억에 묻어 남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은 외우는 코드도 서너 개밖에 되지 않지만 말이다.

조금 늦게 시작한 운동은 땀을 빼야만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시원함을 알게 해 주었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어느 무더웠던 여름날, 영화 '시티 오브 조이'의 상영 시간을 기다리며 호암아트홀 앞 카페에서 더위를 삼켜 줬던 모닝 맥주에 행복했고, 강의와 관련된 책만 읽다 휴양지 썬 베드에 누워 보던 에세이와 소설은 여유로움을 알게 해 주었다.

일 년에 10달 동안을 미친 듯이 일하고 떠나는 겨울의 여행은 빼놓을 수 없는 나의 취미이자 힐링이 돼버린 지 오래다. 여행 안에서도 운동과 독서와 모닝 맥주는 계속됐다.

사진이 젬병이라고 늘 친구에게 욕먹는 게 싫어서 잡지사에서 기획한 사진 강의를 들었던 지난봄의 추억도 소중하다. 장비도 없이 달랑 핸드폰 하나 들고 북촌 한옥마을의 풍경을 담아내고 동대문 DDP의 야경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내 실력에도 구도가 좋다고 칭찬해 주신 사진작가님의 배려심에 감사했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겠다며 다녀온 속초살이는 나의 내면 아이를 만나는 기회를 준 소중한 시간이지 않았는가.

테이블 위의 꽃을 바꾸고 날짜 맞춰 화분에 물을 주고 벽을 장식했던 그림을 바꾸는 일 같은 작은 일상들과 소소하게 장식되는 테이블 위의 세팅들, 그것들을 돌보는 나의 손길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즐거움이다.

한 가지에 정착하지 못한 유목민 같은 나의 취미생활은 그랬다.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그 모든 것들은 삶을 살아가는 내게 주는 초콜릿 상자 같은 것.

변덕도 심하고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진득함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취미 유목민은 내일도 한 가지에 정착하지 못하고 또 다른 즐거움을 찾기에 혈안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스치고 지나쳤던 기억 속의 즐거움도 현재 진행 중인 즐거움도 모두가 나의 소중한 오늘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선물이기에 감사하다.

취미 유목민이 되어 즐거움을 찾아 나서는 것.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나만의 수집 생활이 나는 마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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