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 앞에서 삶을 노래하다.
양평 내 방 창밖엔 묘지가 있다.
한 달에 두어 번 양평 부모님 댁에 머무르곤 하는데 2층 내방 창문 밖으로 무덤이 보인다. 엄마는 늘 창에 커튼을 쳐 두셨다. 유난히 겁이 많아 그쪽 창문 쪽으론 눈길도 주지 않으셨다. 내가 창문을 열어 놓을 때마다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재빠르게 닫아 놓곤 한다. 사실 난 별 감흥이 없다. 묘지가 보이는 것이 불편할 이유도 없거니와 무서운 건 더더욱 없다.
그렇다고 묘지를 좋아한다는 말은 아니다. 세상에 천지에 묘지를 좋아한다는 것은 뭔가 어색하지 않은가. 그저 온통 푸르기만 한 그곳의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게 덩그러니 놓인 무덤과 명절 때면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집 마당을 가로질러 성묘를 하러 가는 후손들이 밉상일 뿐이었다. 산 아래에서 올라가는 길이 있지만, 우리 집 마당을 가로지르면 더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긴 하다.
성묘객에게, 그것도 겨우 일 년에 두 번 돌아오는 명절 때 앞마당을 흔쾌히 내어주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들이 얄미운 이유는 단 한 번도 그 행위에 대한 양해나 부탁도 없었다는 것이다. 성인 무릎 정도 높이의 대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앙증맞은 작은 문이라 설까? 그들은 제집인 양 걸쇠까지 열고 드나들었다. 지나가는 그들에게 뭐라고 한 적은 없지만, 간단한 눈인사 정도만 했어도 굳이 얄밉다는 표현까진 쓰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대체로 우리가 생각하는 묘지의 이미지는 을씨년스럽다. 자주 가지도, 가고 싶지도 않은 그곳은 무섭고 음산한 기운이 넘치는 가까이하기엔 어려운 곳이다. 왠지 처녀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다. 어릴 적 봤던 ‘전설의 고향’에선 왜 한을 품은 건 늘 처녀 귀신일까? 총각 귀신이면 좀 덜 무서웠으려나?
여하튼 묘지를 좋아한다는 사람을 딱히 본 적이 없는 것 같긴 하다.
묘지를 낭만 가득한 파리 여행 일정에 넣은 파트너가 처음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루브르도 아니고 샹젤리제도 아니고 에펠탑도 보기 전에 묘지라니. 자유여행이라 굳이 코스 따윈 없었지만, 그날은 비가 와서 공동묘지가 어울린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로 첫 코스로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를 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공동묘지에 가 본 적이 있는가. 묘지를 무서워해 본 적 없는 나조차 유쾌한 기분이 들진 않았다.
눈 앞에 펼쳐진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는 예상과는 달리, 마치 도심 근교에 정갈하게 조성된 주택가 같은 느낌이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무덤들은 꽤 정성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유명인들의 무덤엔 그들을 기억하는 수많은 현생의 사람들이 전하고 간 꽃다발로 넘쳐났다. 오스카 와일드, 쇼팽, 로시니, 짐 모리슨, 프랑스의 국민가수 에디트 피아프도 그곳에 있었다.
왜 이곳이 예술가들의 무덤으로 불리는지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그들은 죽어서도 충분히 대접받고 있었다. 섬세하게 꾸며진 묘지 사이로 산책하듯 걷고 또 걸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묘지라니.
사진도 수십 장 찍었는데 갑자기 양평 창밖 무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스쳐 가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다.
유럽에서는 묘지 투어가 일상화되어 있고 '묘지 해설사'라는 직업도 있다고 한다. 우리와는 다르게 묘지를 '신들의 땅'이라고 가르치는 기독교 문화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겐 그저 귀신이 사는 곳인데 말이다.
내친김에 우리는 고흐의 묘지가 있는 ‘오베르 슈르 우아즈 공동묘지’도 방문해 보기로 했다. 오베르 슈르 우아즈는 고흐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시골의 소박한 마을이다. 잔뜩 기대를 품고 오베르로 행했고 기대가 곧 슬픔이 될 거란 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오베르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묘지로 향했다. 그림을 통해 만났던 성당의 모습이나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풍경은 찬란하게 빛났건만 어쩐지 현실에서는 고즈넉하다 못해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다.
화려하게 장식된 파리의 공동묘지와는 다르게 소소하게 꾸며진 ‘오베르 슈르 우아즈 묘지’는 유명인이라고는 고흐와 그의 동생이자 유일한 후원자였던 태호의 무덤뿐이었다. 그들의 무덤 앞에 섰을 때의 가슴 저림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것은 엄숙함이 아니라 차라리 애달프다고 하는 쪽이 맞는 것 같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화가 고흐의 무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의 무덤은 슬프다 못해 처량했다. 파리 '페리 라셰즈'에서 보던 화려한 묘비도,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흔하게 꽂혀있던 조화조차 없는 그의 무덤 앞에 한동안 멍하니 서서 먹먹한 가슴의 통증을 온몸으로 느꼈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와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기라]'을 가르치는 곳이 무덤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문화가 비로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안타깝게도 고흐는 생전에 단 한 번도 명성을 얻지 못하고 쓸쓸히 죽어갔다. 초라하다 못해 슬프기까지 했던 고흐의 묘지 모습은 왜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죽음 역시 삶의 일부로 느끼고 앞서간 이들의 생을 통해 현재의 삶에 충실 하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파리에서 가장 먼저 만났던 묘지는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를 봤을 때보다 샹젤리제의 화려한 거리보다 더 많은 여운을 남겨 주었다.
우리는 삶과 죽음, 어느 것에도 초연하지 못하고 지나간 것에 대한 아쉬움만 가득 담고 살아간다. 문득 나의 묘지명엔 과연 어떤 글을 남기게 될까 생각해 봤다. 후회 없이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에 충실한 하루하루가 쌓였을 때만이 가능할 것이다.
죽은 이의 무덤은 그들의 지난 삶을 온전히 보여주며 슬프고도 찬란한 인생을 오늘도 그렇게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