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편지를 언제쯤 받아볼 수 있을까?
지금 만나러 가면 좋겠다.
저마다 소중한 만남이 있을 것이다.
어릴 적 소꿉친구, 세상 전부인 줄 알았던 학창 시절 친구, 사회에서 만난 직장 동료, 아이와 같은 학교 엄마들, 어쩌다 보니 친하게 된 이웃사촌. 정기적으로 모임을 통해 만나기도 하고 단체로 대화방을 만들어 안부를 전하거나 소소한 수다를 떠는 사랑방 모임도 있을 수 있겠다.
나에겐 알고 지낸 시간이나 소중함으로 따져도 단연코 최고인 친구들이 있다. 삼십 년을 훌쩍 넘어서는 우리의 인연은 세상이 친구와 친구 그리고 친구로만 이루어졌었던 고교 시절에 시작됐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멈춰버린 우리의 올망졸망한 키 덕에 교실의 맨 앞자리에서 만나 어느덧 33년이라는 세월을 함께하고 있다.
그 시절 우리는 매일 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듣고 원태연 시집을 이야기하고 라면땅을 함께 끓여 먹었다. 왕가위 감독의 ‘열혈남아’를 밤새 돌려보며 눈물 콧물 빼기도 했고 시험 때면 함께 공부하자고 모여 놓고 결국 수다로 밤을 새우다 다음날 시험을 망치기도 했다. 생일엔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곤 했는데 노란 장미를 좋아하던 내게는 노란 장미 백 송이를 선물했었다. 정성스레 말려둔 장미를 엄마가 버리는 바람에 몇 날 며칠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삶은 알 수 없는 것투성이고 세월은 모든 것을 그대로 흘러가게 놔두지 않는다. 세월이 할퀴고 간 시간 속에서 우리는 결혼을 하고 한 친구는 부모님을 따라 인도네시아로, 핀란드 남편을 따라 평생 구경도 못 할 것 같은 스칸디나비아반도로 떠난 친구도 생겨났다. 더러는 각자의 고단한 사연으로 인해서 모임에 몇 년을 빠지기도 했다. 부끄럽게도 그중 한 명이 나다. 자연스레 몸 거리는 멀어지고 늘 함께였던 우리는 서서히 삶의 일부만을 차지하는 데 그치며 지분을 잃어갔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라는 말은 과연 맞는 말이었을까?
마음만 변치 않으면 물리적 거리가 문제될 게 있겠냐고 했지만,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 사느라 놓쳐버린 많은 시간은 조금씩 마음의 거리에도 틈을 만들어 버렸다. 30년이란 시간을 관통하면서 미처 채우지 못한 것들을 우린 옛 추억으로 메우고 있었다.
'친구의 생일을 확인해보세요!'
채팅방의 알림 덕에 그나마 생일엔 서로에게 문자를 해주고 어느 해부터 생일 용돈을 보내준다. 아들이 군대 가거나 대학에 합격했거나 생일에 축하를 전하는 것 외에는 우리의 단톡방은 침묵하는 날이 더 많았다.
가장 길게 주고받는 대화는 '그때는~'으로 시작되는 옛이야기들이다.
" 우리 그때 화장실에서 생일 노래 녹음했던 거 기억나?"
" 우리 그때 영퀴(영화 퀴즈) 방 하면서 영화 엄청나게 봤었잖아."
" 우리 라디오에 사연 나왔을 때 정말 너무 좋았었는데...."
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고 과거를 사는 사람처럼 그때의 추억 속에 멈춰 있었다. 그 안에 현재의 우리는 없었다.
그땐 ....... 좋았다.
우리는 왜 매번 추억앓이만 하는 것일까? 조금만 움직여도 닿을 거리에 있는 우리가 지금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단순히 삶의 버거움 때문인 걸까?
육아 때문이라기엔 이미 아이들은 다 커버렸고 딱히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친구도 없다. 습관처럼 시간 되면 보자는 말을 되풀이하지만, 정작 우리의 시간은 만남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날이 더 많고 늘 그 이유는 차고 넘쳐났다. 그러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친구라고 믿는다.
나 역시 그 시절이 그립다.
마음껏 기뻐하고 슬퍼하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했던 그때는 모든 것에 솔직했다. 어쩌면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감추고 있던 그림자를 서로 보듬을 수 있어 더 간절한 우리였는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서로 사랑했던 우리는 어느 순간 자신을 숨기는 데 온 힘을 쏟고, 치부라 생각되는 것들을 포장하느라 바빴다. 지나칠 정도로 감성적이고 애틋했던 사춘기 시절의 우리 모습은 더는 찾아낼 수 없다.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나이가 되고 자신을 감출 줄 아는 어른이 된 것이 철없던 그때보다 더 나은 모습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 아픔을 함께 나눌 사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음에도 내 안에 숨겨 놓은 이야기를 쉽게 꺼내 놓기 어려운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로 알고 지낸 햇수만으로 우정을 측정하진 않는다. 우정은 명사가 아니라 영원히 움직이는 동사라고 했던가. 30년 전에서 멈춰버린 우리의 시계를 다시 돌리고 싶다.
우리가 서로 얼굴을 맞대지 않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에도 소홀하면서 그저 생일 때 보내는 용돈만으로 우정을 이어가는데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고릿적 추억이 아니라 지금의 이벤트를 만들고 싶은 나의 욕심은 어쩌면 그네들의 상황이나 처지를 이해 못 하는 이기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만나야 한다. 만나서 아픔이든 기쁨이든 꺼내 놓고 서로 마주보아야 비로소 '함께'가 될 수 있다.
얼마 전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있는 친구가 손글씨로 우리에게 편지를 썼다고 했다
.
편지를 하나하나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올렸다
.
붓 펜으로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편지엔 격려의 말이 나를 응원하고 있었고 무심하게 흘러버린 시간에 대한 회한이 담겼다
.
나는 그 흔한 연애편지 한 통 받아본 적이 없어 아이가 유치원 때 서툰 솜씨로 전해준 편지
이후
얼마만의 편지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감동적이란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순간이었다.
"다음에 만날 때 직접 전해 줄게."
수십 년 만에 받아보는 손편지로 단톡방은 한동안 술렁거리며 활기를 되찾았지만, 다시금 시계는 30년 전으로 돌아갔다. 친구가 배우고 있다는 캘리그래피 얘기도, 사회적 거리 두기로 미술학원을 닫고 있는 친구에 대한 안부도 꽁지를 내리며 사라지는 혜성처럼 그저 스치며 몇 마디 오갔을 뿐 주제는 역시나 ‘그때는’이 되었다.
그렇게 또다시 우리의 현재는 소환된 추억담으로 채워졌다.
지나간 추억에 매달려 과거의 회상만으로 유지되는 우리의 우정이 나는 시리도록 아프다. 어쩌다 우리는 현재의 나를 드러내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 버렸을까?
모든 인연이 떠난다 해도 우리만은 서로에게 남을 것을 확신한다는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있기만 하다면 ‘우정 유지보험’이라도 들고 싶은 심정이다. 해묵은 우정이 아니라 앞으로 오랫동안 함께 할 우리가 되려면 지금을 공유해야 한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엔 어깨를 맞대고 함께 울고 말똥만 굴러가도 웃을 거라던 얘기에 더 깔깔거리며 웃었던 것처럼 목젖을 보이며 웃어보면 좋겠다. 그것이 나는 지금이고 싶다. 현재가 없는 과거는 그저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친구야. 다음에 만나서 준다는 그 편지 말이야.
언제 받아 볼 수 있을까?
'다음에'가 아니라, 지금 만나러 가는 우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