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를 못 참는 나의 겨울나기 잇템들.
나는 말복에 가까운 한여름에 태어났다. 소위 엄마 고생 좀 시켰을 거라는 얘기다. 하기야 찌는 듯한 더위가 아니더라도 몸조리 없이 바로 생활전선으로 내몰렸던 엄마는 여름만 되면 몸이 아팠다. 내가 거기에 일조를 한 셈이니 미안한 마음이 큰 것도 사실이다.
얄궂게도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다. 여름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는 이 순간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은 건 아마도 여름내 해답 없이 시름시름 한 엄마의 모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정말 참아내지 못하는 계절은 겨울이다. 가끔 나는 곰으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긴긴 겨울 동안 동굴 속에 숨어 들어가 잔뜩 비축해둔 지방을 소모하며 잠을 자는 곰이 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겨울은 지리하게도 길다. 꽃샘추위가 도사리는 이른 봄과 트렌치코트만으론 몸으로 느끼는 한기를 막아낼 재간이 없는 내게는 가을 역시 그저 겨울의 연장선일 뿐이다. 그러니까 내게는 일 년의 절반이 겨울인 셈이다.
겨울은 일상의 다양한 것들을 변화시킨다. 일단 최대한 외출을 하지 않는다. 겨울엔 뭔 놈의 행사가 그리 많은지 줄여도 줄여도 밖으로 나갈 일이 생기니 겨울의 만남은 즐거움이 아닌 걱정거리가 되고 만다. 그러다 보니 손님을 집으로 초대하는 횟수가 늘어나는 계절이기도 하다.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 없이 내 동굴로 불러들이자는 일종의 궁여지책이다.
겨울 스포츠는 아예 꿈도 꾸지 않는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스케이트나 스키를 타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아이와 함께 눈썰매장을 가본 적도 없다. 눈놀이를 유난히 좋아했던 딸아이는 스키캠프를 보내거나 아빠와 단둘이 눈썰매장을 가야 했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사람이 한 명 또 늘었다. 그렇다고 첫눈에 대한 설렘이 없거나 눈 내리는 풍경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첫눈 오는 날은 매년 기다려지고 눈부시도록 하얀 세상은 생각만 해도 근사한 풍광이다. 분명 낭만적이고 아름답지만, 그저 밖으로 나가길 꺼리는 나에겐 창밖의 풍경일 뿐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설사 평생 눈을 보지 못한다 해도 춥지만 않다면 나는 기꺼이 눈을 포기할 것이다. 겨울왕국에 사는 엘사가 부럽지 않은 이유다. 어쩌면 그 정도 추위쯤 아무렇지 않은 것이 부러울 수도 있겠다. 집 안 온도가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나의 겨우살이는 바깥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집이라는 안락하고 따뜻한 동굴 생활은 그렇게 겨울나기에 적합한 환경으로 채워진다.
겨울엔 딱딱하다 못해 꽁꽁 얼어버린 구두 안의 발가락이 감각을 잃고, 칼바람으로 인해 흘러내리는 눈물로 정성을 다해 아침 시간을 투자했던 화장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기 일쑤였다. 나름 멋 좀 알았던 젊은 시절조차도 겨울은 그야말로 패션의 혹한기였다. 잠시 외출이라도 하려면 이것저것 껴입어 굴러다녀도 될 판이었다. 더군다나 '얼어 죽어도 코트'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도 일할 땐 정장을 입어야 했던 탓에 바람 숭숭 통하는 커피색 스타킹에 하이힐을 신어야 했으니 그쯤 되면 '추위 고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외출만 하면 발이 얼어서 이러다 동상에 걸려 발가락을 잘라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공포감이 생길 정도였다.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수족냉증이 한몫했을 것이다.
혜성처럼 등장한 수면 양말은 신세계를 선물했다. 일 년의 절반을 차지하는 겨울(앞서 말했지만 절기와 상관없는 내 기준이다)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
그 소중한 패션 아이템은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24시간 나와 함께 생활한다. 서랍은 부클부클한 수면 양말로 채워진다. '겨울 패션 아이템 어워즈'가 있다면 단연코 수면 양말이 영광의 트로피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수면 양말이 없던 시절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돌이켜보니 견디지 못한 게 맞다.
초등학교 시절, 발이 얼어서 학교에 못 가겠다고 버스정류장에서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엄청나게 울었는데 엄마한테 호되게 야단을 맞아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끊어질 것 같은 언 발가락 때문이었다. 발이 시려 학교에 못 가겠단 딸이 엄마는 또 얼마나 황당했을지는 굳이 얘기하지 않겠다.
나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표현할 때 '수면 양말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온몸으로 느끼는 한기를 단번에 해결해주는 수면 양말 같은 사람. 고작 양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내는 최고의 찬사라는 점을 알아주길 바란다.
뜨끈한 국물로 온몸에 온기를 전해주는 먹거리는 또 다른 겨울 필수 아이템이다. 그중 단연 으뜸은 어묵탕이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포장마차를 지나치지 못하게 만드는 어묵의 향을 나는 그 어떤 향수보다 좋아한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냉동실엔 어묵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아무렇게나 숭덩숭덩 무를 썰어 청양고추로 알싸하게 국물을 낸 어묵탕이 저녁 밥상에 올라온다. 따끈한 정종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다. 때론 국물에 가락국수를 말아먹기도 하니 가장 저렴하게 만찬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반찬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나는 어묵에서 배어나는 특유의 비릿한 냄새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묵을 좋아한 건 우습게도 임신 때부터였는데, 임신하면 입맛이 달라진다더니 진짜 그랬다. 수많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나는 어묵에 꽂히고야 만 것이다. 왜 하필 어묵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버스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있던 포장마차에서 코끝으로 전해지는 슴슴한 어묵 향을 참아낼 방도가 없었다. 남편과 함께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매일 두 꼬치씩 먹어댔다. 딸도 어묵을 좋아하는 걸 보면 음식 취향도 유전이 되는가 싶기도 하다.
지금은 사라진 길거리 포장마차 어묵이 그리울 때면 어묵탕을 끓인다. 추운 겨울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먹는 어묵탕은 어느덧 가족의 힐링 푸드가 되었다.
이제는 겨울 외출에도 차를 이용하니 꽁꽁 얼어버린 발을 동동거릴 일도 없고 길거리 포장마차의 어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나는 겨울이 오기 전엔 수면 양말로 서랍을 채우고 냉동실 가득 꼬치 어묵을 쟁여 놓는다.
최강의 한파가 왔던 올겨울에도 여전히 시린 발을 감싸주는 수면 양말과 후후 불어가며 먹는 저녁 만찬의 어묵탕이 있고 거기에 사랑하는 가족까지 더해지니 이보다 더 따뜻할 수 없다.
내가 싫어하는 건 어쩌면 겨울이라는 계절에 따라붙는 추위라는 녀석이지 겨울 그 자체가 아닐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