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이 없어서 행사를 포기했다.

더 이상 크리스마스가 악몽이 되지 않길.

by 단비

어릴 적 나는 교회를 다녔다.

동네 친구들이 같은 교회를 다녔는데 교리 시간마다 나오는 간식은 주일 오전 9시를 기다리게 했던 [들장미 소녀 캔디]를 과감히 포기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찬송 연습이며 연극 연습을 하는 통에 방학 내내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간식이라는 달콤한 유혹이 주요 원인이긴 했지만 나에겐 또 다른 즐거움도 있었다.

찬송을 불러도 연극을 해도 주인공은 내 차지였기 때문이었다.

떨리긴 했지만 난 어릴 때부터 분명 남 앞에 서는 것을 즐기는 타입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 달 내내 '저 들밖에 한밤중에'를 연습했고 나는 메인 소프라노-모두가 같은 음으로 부르는데 왜 파트를 나눴는지도 모르겠다-여서 클라이맥스 때 앞으로 나가 독창을 하는 거였다.

그런데 연습을 너무 많이 한 탓일까?

추운 겨울 날씨 때문일까?

머피의 법칙처럼 크리스마스 바로 전날 감기에 걸렸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 것이었다. 결국 메인 자리는 다른 아이에게로 넘어갔고 울면 안 되는 크리스마스에 지독히도 울어댔다. 뭐가 그리 서러웠을까.


어른이 된 후의 크리스마스는 그저 친구들과 놀고 즐기는 축제 같은 것이었다.

결혼 전 연애를 안 해본 것도 아닌데 해마다 크리스마스엔 혼자였다. 잘 사귀다가도 겨울이 되기 전에 헤어지는 바람에 그저 친구와 술 마시고 수다 떠는 게 전부였다. 그러고 보니 내 친구들 역시 크리스마스를 남자 친구와 보낸 친구는 몇 안됐던 것 같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도 될는지.

여하튼 예수님 생일을 핑계 삼아 하루라도 더 놀기를 바랐던 젊은 날이었다.

왜 그런 건지 몰라도 그날은 자정을 넘겨 집에 들어가도 부모님께 면죄부를 받았다.

어릴 때처럼 교회를 간 것도 아니고 평소 엄하기로는 동네에서 손꼽을 정도인 아빠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술에 절어 들어오거나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밤새 요란을 떨어도 그날만큼은 눈감아 주셨다.

무교인 아빠가 신앙심 때문에 그럴 리도 만무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20대의 크리스마스는 축제의 밤이었다.


결혼 후 나는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고 세례를 받은 이후부터는 크리스마스는 미사를 드리는 날이 되었다.

친구들과 즐기는 광란의 크리스마스는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해 크리스마스 행사 때 시낭송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어릴 때도 그랬지만 나는 무대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강사라는 직업은 늘 남 앞에 서야 하는 일이라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시낭송을 준비하며 이번만큼은 어릴 때처럼 어처구니없는 감기 따위엔 걸리지 않으려고 목 관리에도 특별히 신경을 썼다.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정도 남긴 어느 날 아침.

겨울의 아침이 늘 그렇듯 상쾌하다 못해 서늘했던 그 아침을 깨우는 전화벨이 울렸다.

행사를 담당하는 분이셨는데 시낭송 때 한복을 입어 달라고 하셨다.

나는 한복이 없었다. 결혼 때 맞춘 한복은 이미 십 년도 넘어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도 모르는지라 정장을 입겠노라 했더니 무조건 한복을 입어야 한다며 없으면 대여를 해서 입으면 되지 않냐고 하셨다.


왜 꼭 한복이어야만 했을까......


언제부터 하느님 취향이 한복이었단 말인가.

그분 말대로 한복을 대여하면 됐겠지만 당시엔 한번 입을 한복에 돈을 들일만큼 내 형편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 봐도 이해되지 않는 한복에 대한 고집스러운 강요는 결국 내가 시낭송을 포기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로 인해 상처 받았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한복을 마련할 돈에도 벌벌 떨어야 했던 가난한 나의 자격지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건이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을 악몽으로 바꿔 버린 것은 지금도 화가 난다.

뭐 그런 걸 가지고 악몽까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크리스마스가 돌아오면 한복이 생각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은 한동안 지속됐다.

미사를 제외한 모든 행사에 참여하지 않게 되었고 같은 종교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당연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으로 괴로워해야 했다.

여전히 나는 그 날의 의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어도 무대는 화려하고 한복은 빛이 났을 것이다.

이제는 한복 한벌 정도 구할 형편도 되었지만 난 여전히 행사 참여는 거절하고 있다.

삐딱한 좀생이 아줌마라 해도 변명하진 않겠다. 다만 난 그들이 정해놓은 프레임을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잣대에 누군가를 끼워 맞추려 안간힘을 쓴다.

자신에겐 옳을 수 있으나 정답 일리 없는 그 잣대는 누구나에게 통용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어찌어찌 한복을 구했다 해도 그래서 그 빛나는 무대에 섰다 해도 마음 한구석을 차지한 그 질문은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을 입든 무엇으로 제단을 장식하든 중요한 건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의 본질이 아니었을까?

겨울이 오고 크리스마스의 계절이 되면 저절로 따라오는 한복에 대한 기억은 언제쯤이면 지나간 추억 정도로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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