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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영 Jan 09. 2022

음악과 양자역학


우연히, 양자역학에 대해 설명해주는 유튜브 채널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뼛속까지 문과인인 사람으로서 처음 듣는 주제였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세상을 설명하는 이론에 빠져들게 되었다.


[출처: 정영진 장항준의 편의점 클라쓰e]


양자역학은 쉽게 말해 원자를 이루는 핵과 전자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물은 왜 투명한가?’, ‘종이는 왜 쉽게 잘리는가?’ 등 질문을 통해

우리의 생활을 구성하는 수많은 물건, 현상들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간다.


이후 양자역학은 전자공학의 뼈대가 되었지만 초창기에는 쉽게 수용되지 못했다고 한다.

원자와 같은 아주 작은 미시 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은 거시 세계의 관념과는 매우 다른 곳이었다.

관측된 여러 기이한 현상들을 하나하나 설명할 순 없지만

어찌 되었거나 경험과 상식에 근거해 만들어진 인간의 언어는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벽이자 올가미로 작용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고 끝내 우리는 언어로 두려 하기 보다

관측할 수 있는 미시 세계의 현상 자체를 언어로 기록하고 정리했다.

이를 반도체와 프로그래밍 등으로 응용하면서 기존과는 차원이 다르게 번영된

21세기 문명을 세계를 살 수 있게 되었다.


양자역학을 받아들이고 변화된 우리 삶의 흐름을 보다 보니 왜인지 모르게 음악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고 느껴졌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접한 발라드부터 팝송 등 기존에 많이 들어본 노래들은 대다수 가사가 있는 노래였다.

유려한 멜로디에 얹힌 가사는 프로듀서와 가수가 전달하고 싶은 감성과 의도를 정확히 느낄 수 있게 해 줬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상대를 만나기 위해 걸어가는 길이랄지’, ‘이별  느끼는 쓸쓸한  안의 풍경이랄지

노래를 들으면 감정 이입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지고 더 나아가 내가 겪었던 비슷한 일들을 상기시켜 추억 속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


그런데 LP 듣기 시작하면서 재즈라는 장르를 접했고 새로운 차원을 느끼게 해 줬다.

알다시피 재즈는 보컬이 어우러진 노래들도 많지만 가사 없이 악기들만의 연주로 시간을 채우는 경우가 빈번하다.

트럼펫, 드럼, 피아노, 베이스 모두 각자의 자신 있는 선율을 내보내며  곡을 완성시킨다.


악기들의 조화는 각자 단순히 자랑을 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자유를 억압당한 사회에 대한 분노,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에 대한 의문 등을 가사 없이 선율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가사를 사용할 때보다 오히려 훨씬 자유로운 방식으로 표현한다.

분노를 ‘화난다말하지 않고 사정없이 드럼을 두들기고

사랑을 ‘사랑한다말하지 않고 피아노의 템포가 부드러워지고

행복을 ‘행복하다말하지 않고 트럼펫이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의 한계를 벗어나자

음악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 우정, 행복, 환희, 절망 등을 더욱 새로운 방식으로 알리고 있었다.

비단 재즈 장르뿐만 아니라 클래식, 뉴에이지 모두 그럴 것이다.


감히 양자역학과 음악이라는 안 어울리는 이들을 동일 선상에 놓고 보니 같은 결론이 나왔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이지만 동시에 우리를 가두는 한계이기도 하다.


규정할  없지만 정의해   없지만 언어의 세계를 잊고 다른 차원을 있는 그대로 보려 노력한다면

양자역학이나 재즈, 클래식처럼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언어라는 제한을 넘어서면 펼칠 수 있는 세계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이 물음은 내 안에서 어떤 싹을 피워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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