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어둠으로 물든 저녁. 내 눈은 한 마리의 나방이 되어 홀로 빛나는 스마트폰을 따라 움직인다. 눈알이 뻑뻑하니 시력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잠들기 전 유튜브를 보는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으니...
그렇다고 해서 딱히 보고 싶은 영상이 있던 것은 아니었기에 내 눈은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따를 뿐이다. 이놈의 알고리즘은 간혹 이해할 수 없는 영상을 추천해주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내가 자주 보던 영상과 관련된 영상을 추천해준다.
그 탓일까?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영상이 끝나자마자, 익숙한 드립이 내 귀를 파고들었다.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 하나만 얘기해봐요.”
“돈키호테입니다.”
“돈키호테 저자가 누구죠?”
“예?”
“저자”
“그 엮은이는 아는데요. 김경식씨...”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편에서 이제는 그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그 전 녀석’의 목소리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는 하나 이 목소리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무한도전은 나의 학창 시절뿐만 아니라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추억을 책임졌던 프로그램인데 말이다.
그런데 이 레전드 예능이었던 무한도전도 결국에는 종영되었다. 종영일은 2018년 3월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대학로의 설렁탕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중이었고 식당 벽면에 켜져 있는 TV를 힐끗거리며 무한도전을 보고 있었다.
“무한!”
“도전!”
무한도전 멤버들의 마지막 외침이 식당을 울리자 손님들이 고개를 들었다. TV에서는 마지막 무한도전을 외친 멤버들의 감정이 하나 둘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멤버, 울음을 참는 멤버, 덤덤히 있는 멤버 등.
사실 무한도전의 종영은 상상하지 못했다. 무한도전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도 수능을 보고 재수를 하던 때에도, 성인이 되어 군대를 갔을 때도, 그리고 전역했을 때도 무한도전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끝났다. 가슴 한 켠에 느껴지는 아련함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유튜브의 무한도전 관련 영상 조회수가 최소 수백만에 달하는 게 보인다. 수많은 최신 댓글들도 올라 온다.
‘이곳에 잠시 스쳐 지나간 우리 모두는 같은 감정을 공유했을까?’
무한도전 영상 하나로 늦은 밤 사색에 빠지는 자신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내가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고? 사실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는 무한도전을 그렇게 챙겨보지 않았거든. 내가 무한도전을 매주 챙겨봤던 때는 10대 시절까지였다. 그나마 군대에 있을 때나 간혹 챙겨봤을까? 성인이 된 이후로는 방송을 챙겨 볼 겨를조차 없었다. 대학생 때는 술 먹고 게임 하는 게 무한도전을 보는 것보다 더 재미있었다.
그런 주제에 무한도전을 논하고 있는 자신에게 괴리감이 느껴진다. 그렇게 대단한 애청자도 아닌 주제에 무한도전의 종방을 상상하지 못했다느니, 아련하다느니... 아주 입만 살았잖아. 그런데 왜일까? 스스로가 가증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 공허한 감정은 왜 느껴지는 걸까.
‘내 20대를 함께 보낸 무한도전은 정말 컸다... 언젠가 멤버 모두 유튜브 같은 곳에서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 기계적으로 댓글을 내리고 있던 내 손가락이 한 댓글에 닿았다. 그래. 내가 느끼는 공허함의 근원은 이거였다. 이 댓글처럼 무한도전을 봤던 그 시절의 나. 같이 늙어갔던 무한도전. 그 모든 게 그리웠던 거다.
이게 같은 시대를 살아온 세대일까. 물론 나도 저 댓글처럼 그 멤버들이 모두 모이는 모습 또한 보고 싶기는 하다. 그 장면을 보면 더욱 생생한 옛 추억이 떠오를 것 같거든.
허나, 그런 말을 내뱉기에는 염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저 멤버들이 13년 동안 견뎌온 부담감, 온몸을 던졌던 노고를 감히 내가 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모되고 마모된 그들에게 또 다시 도전을 해달라 말하지 못할 것 같다.
그저 온몸을 던져가며 우리들의 추억을 만들어줬던 그들의 도전에 감사함을 느낄 뿐이다. 그 당시를 회상할 수 있는 수많은 추억거리는 이미 우리들의 마음속에 깊이 스며들어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