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도. 내가 25살 때, 태권도 도장에서 교범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던 것은 태권도 도장이 사실상 어린이집이라는 것이다. 태권도 교범의 핵심 역량은 앞차기가 아니라 애들 달래기와 학부모 상담이니까.
그 날도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노란 스타렉스를 끌고 학교로 가서 애들을 태워왔다. 애들이 떠드는 소리를 BGM 삼아 도장 건물에 도착하여, 다 같이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3층에서 문이 열리자 애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리고 이제 내가 나가려는 순간.
전 타임을 마치고 집에 가던 초등학교 2학년 민준이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런데 그 아이가 울고 있었다.
"왜 울어?"
깜짝 놀라서 물었더니 아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친구들이... 안 놀아줘요..."
더 자세히 물어보니, 오늘 친구들끼리 도윤이의 집에 놀러 가기로 했단다. 그런데 갑자기 도윤이가 이 아이를 못 오게 막았다고 한다. 다른 친구들만 초대한 셈이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둘은 항상 붙어 있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같은 도장에 다니며, 심지어 학교에서는 같은 반이었으니까.
일단 달래주고 도장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어이없게도 도윤이가 친구들과 도장 한 켠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우는 친구를 홀로 보내고, 집으로 초대한 다른 친구들과 따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모양이다.
조용히 도윤이를 불러서 사정을 물었다.
"도윤아, 왜 민준이만 빼고 놀아?"
그래. 이유가 있겠지. 우리 모두는 사람이니까. 나랑 맞지 않은 친구랑 놀고 싶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도윤이는 아주 해맑은 얼굴로 의외의 답변을 뱉었다.
"엄마가 걔랑 놀지 말래요!"
"..."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이 아이한테 뭐라고 해야 하지? 엄마 말을 어기라고?
이 나이대 아이들에게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라고 말하는 국룰 인사가 있는 데도?
그래. 도윤이 어머니도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
"왜?"
"몰라요!"
...몰라? 모른다고?
머릿속으로 민준이를 떠올렸다. 가끔 미운 구석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근데 그렇다고 왕따를 당할 만큼 ‘문제가 있는 아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무난무난하게 잘 지내는 편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무언가가 있는 걸까?
‘뭐라고 말해야 하지.’
당시 내 나이 고작 25살.
내가 뭐라고 인간관계에 대한 대단한 통찰을 일찍이 구축했겠는가. 나도 남들과 다를 바 없는 20대 중반일 뿐이었는데... 그저 아이들 앞에서 '교범님' 소리를 들으니까 어른처럼 굴고 있었을 뿐이지.
그러니 이 상황에서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냥 대충 넘어갈 방법은 많았다. 우리가 아이들 싸움 중재할 때 흔히 쓰는 그거 있잖은가. "자, 악수해! 사과해!" 이거 말이다. 아니면 더 간단한 방법도 있었다.
‘윗 사람한테 떠넘기기.’
나는 고작 교범이었다. 윗 사람인 사범님한테 떠넘기면 그만이다. 욕좀 먹으면 되지 뭐.
근데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말만큼은 꼭 하고 싶었다.
"있잖아. 부모님이 우리한테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인 건 맞아. 근데 부모님이 항상 정답인 건 아니야. 부모님도 우리랑 똑같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거든.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해. 그러니까 부모님 말씀을 전부 다 따를 필요는 없어."
말하고 나서 바로 후회했냐고? 아니, 후회는 없었다. 아닌 건 아니니까. 이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겠는가. 근데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거 나중에 학부모 귀에 들어가면 나 진짜 큰일 나는 거 아닌가?'
다행히 연락은 없었다. 중간에 사범님이 알아서 차단을 했는지 아니면 그 아이가 집에서 입을 다물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우려했던 일은 터지지 않았다.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가 생각난다.
그 엄마가 어떤 설명도 없이 "걔랑 놀지 마"라고 내뱉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 5초? 10초? 그리고 그 말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혼자 눈물을 훔치는 민준이었다.
더 기가 막힌 건 도윤이다. 그 아이는 잘못한 게 없다. 그저 엄마 말을 들었을 뿐이다. 우리가 늘 아이들한테 하는 말, '부모님 말씀 잘 들어야지' 그걸 충실하게 따랐을 뿐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대체 누구한테 뭐라고 해야 했던 걸까. 도윤이한테? 민준이한테? 그 엄마한테?
모르겠다. 근데 한 가지는 안다.
어른이 흘린 말 한 마디가, 이유도 모른 채 아이한테 스며들어, 또 다른 아이를 울린다는 것.
편견은 유전되지 않고 그냥 전달될 뿐이었다. 그것도 아주 무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