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영남 알프스 3봉 무박 산행
| 영남 알프스란 한 편의 영화
9월의 마지막 날, 알레 버스를 타고 영남 알프스 산행을 갔다. 10월의 첫날 새벽 3시 반쯤, 울산에 도착해서 영남 알프스 3봉 무박 산행을 시작했다. 울산의 새벽 하늘은 고요하고 으스스했다. 구름 한 점 없이 검은 하늘 속에서 별이 보였다. 별이 윤슬처럼 빛나서 감길 뻔했던 눈이 떠졌다. 남들보다 이른 하루를 시작해서 고생이라고 별이 응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별의 응원을 받고 힘을 얻어 부푼 마음으로 등산화 끈을 정리하고 몸을 풀어줬다. 몸의 긴장이 느슨해졌다고 느껴졌을 때, 영축산의 품으로 들어갔다. 영축산에 가는 길은 어두웠다. 헤드랜턴에만 의지해서 한 방향을 향해 가야 하는데, 여러 길이 보여서 어느 길이 맞는지 모르기에 무서웠다. 카카오맵을 보며 몇 분 고민했다. ‘어디로 가야 맞는 걸까?’ 그때 잠깐 근처에서 불빛이 보였다. 누군가의 헤드랜턴 빛이었다. 그 불빛을 본 순간 안심하며 누구인지 모를 빛과 발자취를 믿고 나아갔다. 은은하게 불던 새벽바람이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맞다고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로 이야기하는 듯했다.
야간 등산을 하며 노하우가 생겼다. 바로 마주치는 사람과 팀처럼 행동하는 것이었다. 나는 등산 대절 버스 서비스인 ‘알레 버스’를 일행 없이 신청했지만, 영남 알프스 알레 버스를 함께 탄 사람들과 같은 시각에 등산을 시작하며 암묵적으로 팀이 되었다. 헤드랜턴만 의지하고 길을 찾으며 혼자 머리를 싸매고 오르다가, 멀리서 빛나는 헤드랜턴 빛을 보면 안심이 됐다. 적정 거리를 두고 그 불빛을 따라갔다. 불빛이 가까워졌을 때, 서로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되어 동료가 됐다. 일부러 등산 스틱 소리를 명료하게 내거나 돌멩이를 거세게 굴리고 걸음 템포를 맞췄다. 잘 걷다가도 머리를 젖혀 하늘을 보며 다른 곳에 있을 사람에게 빛을 보여줬다. 어느 길이 맞을지 헤매고 있을 사람에게 나의 불빛이 나침판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행위였다. 새벽이 지나고 해가 떠오르며 어둠이 있기라도 했냐는 듯 밝아졌다. 길이 보여서 혼자서도 걸어갈 수 있을 때, 또 다른 등산은 시작됐다.
이 날의 영남 알프스 산행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영축산에 가는 길, 신불재를 지나 신불산에 가는 길, 간월재를 지나 간월산에 가는 길은 모두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특히 신불재에서 능선을 지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명장면이었다. 오전 6시에 영축산 정상에 올라 일출 명장면을 기대했는데 곰탕처럼 뿌연 하늘만 봐서 아쉬움이 가득했었다. 그런데 오전 7시쯤 영축산을 지나 신불재를 지나고 있을 때, 영남 알프스는 곰탕 같은 커튼을 젖히고 괌의 투몬 비치처럼 투명한 하늘을 보여줬다. 때가 묻지 않은 아이처럼 맑은 하늘을 본 순간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껴서 행복했다. 그 부푼 마음을 안고 신불산을 지나 간월재로 향해 오전 8시 반쯤 간월재의 억새 풍경을 마주했다. 바람따라 흩날리는 억새는 바람을 동료로 하며 춤을 추는 댄서들 같았다. 이 억새 풍경은 하마터면 부스럼으로 남을 뻔했던 야간 등산을 찬란하게 미화시켜 줬다. 안 그래도 어두운 새벽에 더 어두운 곳으로 발걸음을 내디디며 힘겹게 올랐던 시간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 겪어야 했던 시간이었다.
한 편의 영화 같은 영남 알프스 무박 산행은 여러 깨달음을 줬다. 그 깨달음은 어느 길이 맞는 길인지 확인해야 할 때는 ‘*알바 산행’이라고 불리는 행위에 과감해야 한다는 것, 새벽에 불빛을 따라가다가 동료를 만났듯이 오롯이 혼자만 존재하는 일은 없다는 것, 등산하며 예상치 못한 비가 왔지만 영남 알프스 3봉(영축산, 신불산, 간월산)을 완등한 것처럼 좋은 일이 오기 전에는 힘듦이 있다는 것이었다. 오늘도 나는 이 깨달음을 되새기며 인생의 예측 불가능함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믿어본다. 새벽에 어두운 곳으로 과감하게 발걸음을 내디뎠던 것처럼 오늘도 그러려니 나아가자고 나에게 말을 건다.
(*알바 산행: 등산로를 찾기 위해 길을 헤매는 일, 등산로가 아닌 엉뚱한 길을 행하는 일을 칭하는 등산 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