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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웅 Jul 23. 2023

<비닐하우스> 야속한 우연

영화에 대한 단상

영화 <비닐하우스> 네이버 포토 스틸 컷
비닐하우스[Greenhouse](2022)


묻지 마 범죄의 가해자가 피해자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듯. 무고한 가해자 '문정'의 파국 또한 그녀의 의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 보인다. 한순간에 범죄의 온상에 놓인 '문정'은 가해자를 찾아 응당한 처벌을 원할수도,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누구도 탓할 수 없다. 욕실 배수구에 물이 빠질 때 생기는 소용돌이처럼 마치 자연스러운 현상인 양, 그녀에게 일어난 사건들은 모든 것이 의도치 않게 비극의 구렁텅이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비닐하우스> '문정'(김서형)의 모습은, 소년범으로 전락한 외손자를 데리고 남몰래 속죄하며 간병일로 먹고사는 <시>(2010)의 '미자'(윤정희) 같기도, 뒤틀린 모성으로 아들을 감싸도는 <마더>(2009)의 엄마(김혜자) 같기도 하며 그녀의 눈빛에서는, 비닐하우스에 불을 지르는 <버닝>(2018) '종수'(유아인)의 깊은 욕망 속에 응집된 혼란이 비춰진다.


홍등가 같은 비닐하우스, 영화 <비닐하우스> 네이버 포토 스틸 컷


비닐하우스를 덮은 자동차의 시뻘건 브레이크등이, 그곳을 홍등가처럼 부끄럽고 천한 장소로 표현한 듯 보인다. 남편은 죽고, 엄마는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아들은 소년원에 있는 '문정'은 자신이 비극적일지언정 책임과 수치를 제 한 몸 받아내며 버텨낸다. 도덕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며 집을 마련해 아들과 함께 사는 것처럼 목표가 뚜렷하며 '완치' 하기 위해 이곳저곳 제 발로 찾아갈 정도로 (우울증으로 보인다) 삶의 의지가 충만한 인물이다.


하지만 '문정'은 어머님 '화옥'(신연숙)의 목욕을 돕다가 사고가 생긴다. 치매가 있는 '화옥'이 말썽을 피우다 욕실에서 넘어져 머리가 깨진 것이다. '문정'은 신고를 하려다 '소년원에서 나가면 엄마와 같이 살고 싶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선 사건을 은폐하기로 결심한다.


'태강'(양재성)의 모습, 영화 <비닐하우스> 네이버 포토 스틸 컷


치매에 걸려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일찍이 제 손으로 생을 마감하려는 맹인 '태강'은 바뀐 '화옥'을 알아차리지 못해 살해하고, '문정'이 호의를 베풀었던 '순남'이 집에 찾아와 사건의 은폐를 방해하거나 '문정'의 조언대로 선생을 살해하는 상황들이 불쾌한 서스펜스를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태강'은 본인의 극단적 선택을 변호하듯 "지금 내 선택이 옳은가, 틀렸다면 왜 틀린 것인가"라며 신중한 선택을 하라는 유언을 손자들에게 남긴다. 선택을 통해 삶을 통제하고자 했던 '문정'은 억울할 것이다. 그녀에게 다가온 우연의 야속함은 철저한 필연성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고를 빌었다. 하지만 한없이 무력한 '문정'의 선택들처럼 눈앞에는 그저 앙상하게 타들어가는 비닐하우스가 뼈대를 드러내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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