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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웅 Jul 19. 2023

<벌새> 굳게 닫힌 철문들 앞에서

영화에 대한 단상

영화<벌새> 네이버 포토, 스틸 컷
벌새 [House of Hummingbird] (2019)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 (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 얼굴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어머니의 심부름을 다녀와 열쇠가 없는 은희는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본다. 하지만 조용하다. 저 문 너머 안쪽에는 엄마가 있기는 한 걸까? 열릴 생각을 안하는 대문앞에서 한 없는 무기력함을 느낀 은희는 답답하고 불안함 속에서 애꿎은 철문에 화를 낸다. 살며시 올려다보면 그런 은희를 비웃듯 현관문패에 조그맣게 적혀있는 902호. 호수를 잘못 찾아간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한 은희의 집은 사실 1002호 였던 것 이다.


카메라가 뒤로 빠진다. 은희가 지나가다 익숙히 봐왔던 친숙한 복도식 아파트의 여러 굳게 닫힌 철문들은 함부로 접촉할 수 없는 미지의 것으로 보인다. 수백번을 들락거린 익숙한 집을 잘못 찾아가기도 하는데, 처음가본 곳, 처음 만난 사람의 마음에 다다르며 안을 엿보기는 쉽지 않을 것 이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어른이 되어가는 아직은 조금 어리숙한 중학교 2학년 은희에게 다가오는 세상,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나는 '남'들 속에서 겪는 어려움을 영화 벌새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익숙한 모습으로 둔갑하여 생생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보여준다.


한문 선생님 김영지는 그런 은희에게 선명하게 길잡이로서 머물다 간다. 갑작스럽게 생겨난 귀 밑의 혹 처럼 이유없이 나를 좋아해줬던 사람들,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은 내게 다가왔던 것 처럼 아무 이유없이 떠나가기도 한다. 벌새처럼 너무나도 조그마하고 한 없이 약하기만 해서 아무것도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아 허무스러울 때 가만히 앉아 손가락을 들여다보면 내 의지로 움직여지는 그 모습에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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