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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표 Feb 19. 2023

우리는 SNS로 질투를 등가교환한다

나는 마케터다. 최근 트렌드를 모두 꿰뚫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뒤처지지 않을 수 있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 SNS와 각종 커뮤니티는 필수다.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누가 어떠한 연유로 각광받고 있는지 그리고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을 만큼 파급력 있는 밈이나 노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속속히 알아야 한다.


모든 세상사를 눈에 담다 보면 알고 싶지 않은 것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바로 지인들의 소식이다. 가깝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멀다고 할 수도 없는 애매한 관계들. 그중에는 한 때 싫어했던 사람도 있었고 누구보다도 가장 친했던 시간을 공유한 이들도 있다.


현실에서 연이 더 이상 닿지 않게 되었다는 건 아무래도 그 관계의 유통기한이 짧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비자 기한은 더 길듯 직접 만나지는 않지만 SNS로만 이따금씩 안부를 주고받는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접속한 SNS 홈피드에는 대학생 시절 알고 지냈던 동기들의 화려한 사생활이 가득 담겨 있었다. 누구는 가족과 유럽을 여행 중이었고 또 누군가는 초호화 호텔에서 호캉스를 즐기고 있었으며 그 누구의 누구는 연인과 함께 기념일을 맞아 행복한 하루를 자랑했다.


단 몇 장의 사진 가지고 그들의 인생을 판단할 수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었지만 나에겐 그 몇 장의 사진조차 올릴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기에 과분한 인생사 참 속 편하게들 산다며 깊은 고민 없이 멋대로 재단했다.


SNS를 살피다 보면 비단 지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나로서는 알기 힘든 새로운 세상에 사는 것 같다. 모두가 고급스러운 아파트에 거주하고 몇 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백을 가볍게 걸치고 다닌다.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맛집을 탐방하며 드높이 치솟은 비행기값에도 아랑곳 않고 해외여행을 떠난다.


아무리 나의 인생을 잘 가꾸어나가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을 해도 스치듯 마주한 이름 모를 누군가의 삶은 참 쉽게 절망을 선물한다. 그 이면이 어떤 모습으로 가득 차 있을지는 모르나 보고 느낄 수 있는 세상은 나 자신이 전부였으므로 비교를 통한 박탈감은 피하기 어려웠다.






우연히 한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드디어 취업해 경기권에 원룸을 마련했다고 했다. 1호선을 타면 한 번에 서울로 올라올 수 있다며 짬을 내어 만나자고 제안했다. 마침 주말에 시간이 비어 딱히 할 게 없던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일을 시작한 초반에는 정규직으로 전환되기 위해 애쓰느라 나 자신을 돌볼 여력도 없었으므로 나의 한 때를 차지했던 사람들을 만날 엄두를 못 냈다. 그래서인가. 옛 친구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설레었다.


오랜만에 본 친구의 모습은 만나지 못했던 긴 시간의 간극을 증명하듯 꽤 낯설었다. 그 친구 특유의 활발한 성격 덕분에 우리 사이의 어색함은 금세 풀어졌으나 서로에게 서로가 없던 시간들을 매우듯 그간의 안부를 한가득 주고받았다.






테이블 위에 따뜻한 캐모마일과 차가운 아이스아메리카노처럼 각자가 달려온 길의 온도는 정반대였다. 같은 학과를 나왔음에도 전혀 다른 형태의 꿈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참 신기했다. 그렇게 한참 대화를 나누다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속마음을 툭 털어놨다.


나 사실 처음에 너 때문에 인스타그램 지웠다?


생각지도 못한 얘기였던 탓에 순간 사고회로가 멈췄다. 당황한 날 발견했지만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너도 너만의 사정이 있기야 했겠지만 가끔 회사 관련 스토리 올라올 때마다 아직도 취업 못한 내 자신이 한심해지더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저히 고를 수 없었다. 딱히 답변을 바란 것도 아니었는지 질투나 하는 이런 자신이 싫어 SNS를 지웠다는 말을 덧붙였다.


너 밉다고 얘기하는 거 아니니까 어우 야! 그렇게 딱딱한 표정 짓지 마. 동기부여되었다고. 덕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뭔지 깨닫고 현실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어. 결과적으로 좋은 직장에 취업도 하고 이렇게 너도 만나러 왔잖아.


대화를 하면서 회사 생활 때문에 내가 이렇게나 힘들어했는지 전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하며, 초반에 살짝 밉게 생각해서 미안하다고도 얘기했다. 나만 SNS를 통해 박탈감을 느낀 줄 알았는데 그런 보잘것없는 나 자신에게서 또 다른 박탈감을 느낀 가까운 이가 있었다니. 예상치 못한 전개에 약속 후 돌아온 집에서 켜지 않은 휴대폰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친구의 계정을 다시 살펴봤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일본 오키나와에서 싱그러움 한 껏 머금은 미소를 봤던 것 같은데 사실은 탈락의 고배를 숱하게 마시다 기분 전환 겸 여행을 떠난 것이었다니. 나는 자유로워 보이는 너를 부러워하고, 너는 조금 먼저 앞서간 나를 질투했었다. 결국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불행을 주고받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 한 예능은 사랑을 싣고 그리운 사람을 찾아준다는데 몇 년 새 급변한 시대답게 이 시대 새로운 예능인 SNS는 질투를 싣고 모두를 시험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시험에 낙방해 어두 침침한 마음으로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을 때 누군가는 질투와 부러움을 동력으로 삼아 원하는 방향으로 본인을 성장시켰다. 이건 필시 의지의 문제라고 감히 판단하고 싶다. 함부로 불평불만을 내뱉을 수도, 미워할 수도, 비난할 수 있는 자격도 없다는 말이다.


작은 화면에는 비치지 않았던 뒷면의 그림자를 서로 나누던 날, 스크롤을 한참 내리며 한 껏 뽐내는 이들의 사진을 봐도 더 이상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저들도 보통의 사람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은 까닭이다. 타인에게 공유하는 삶인데 화려하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지 누가 어울리지 않는 궁상이나 떨고 싶겠는가. 생각이 정리되니 요동치던 기분도 잔잔해졌고 쌀 한 톨 크기 같던 내 마음도 어느 순간 태평양처럼 관대해진 것 같았다.


의도했든 안 했든 우린 서로에게 수많은 영향을 끼치며 살아간다.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각자의 의지와 가치관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다. SNS상에는 아무 생각 없이 자랑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동시에 각고의 노력과 수많은 시도 끝에  퍼스널 브랜딩에 성공한 노력형 인간들도 수두룩하다. 그러니 마냥 부러워하고 질투하기에는 내가 무엇 하나 도전해 본 것이 없지 않나. 부럽다는 감정을 넘어 질투에 밤 잠이 설쳐지면 지금 당장 일어나 행동으로 실천하면 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각기 다른 모습의 삶일 뿐 그 본질은 같으므로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의 일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SNS는 내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잘 이용할 수도 끌려다닐 수도 있다. 이제 나에게 SNS는 그저 마케터로서 살아남기 위해 이용하는 수단에 그칠 뿐 숨겨진 불행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 내 일이나 하자.
사람 사는 세상 다 똑같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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