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운 May 17. 2021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시기적절, 시의적절... 달리 나온 말이 아니다.

  어깨 관절경 수술을 일주일 뒤로 미뤘다.

석회 사이즈가 4cm나 되고 어깨와 팔이 아팠다 좀 나았다를 반복하기 수 년째이니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해야 하는데도 그랬다. 의사는 석회가 옆의 근육을 이미 ‘다 잡아먹었다’고 표현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고도 했다. 차분하고도 정돈된 말이 있을 텐데 흉악스럽게 잡아먹다니, 아무리 내가 식탐이 있기로서니 어깨 근육까지 잡아먹었을까? 싶었다.


  일주일을 미룬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잔인한 ‘계절의 여왕’, 오월이(5월)가 모임과 행사와 설레설레 한 사람들의 마음을 부른 탓이다. 여느 집이나 5월은 매우 바쁘고 정신없는 달에 속한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각종 행사가 많기 때문인데, 우리 집은 친정 엄마, 나 그리고 아들의 생일까지 대거 포진해 있어 더욱 정신이 없다. 5월이면 그래서, 흩날리는 거리의 꽃잎처럼 금일봉이 든 봉투가 손에서 손을 타고 날아다닌다. SNS 상에서도 커피와 케이크, 꽃다발이 실체는 없지만 똑같이 날아다닌다. 이팝나무 아카시나무 라일락 찔레꽃 장미꽃들이 싱그런 오월의 봄바람과 만나 향기를 전하듯 고마움과 감사함이 퍼지고 또 퍼지는 것이다.


  Party time, 생일 주간(週間)이라고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차와 식사를 대접받느라 바빴다. 바쁘다 바쁘다 하니 바쁜 일은 더 몰리는 법이어서 친척 결혼식에 맞춰 친정 엄마가 주말에 올라오신다 연락이 왔다.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가시라 했다.

 ‘일 복 하나는 제대로 타고났다.’

오전 근무에 오후 모임에 집안 청소와 음식 등을 챙기고 사이사이 아이들 라이딩과 끼니를 챙기자니 아픈 팔이 그야말로 너덜너덜 거덜 날 판이었다.


  “팔도 아프다면서 청소며 음식은 왜 해? 친정 엄마 오신다면서요? 나가서 사 먹고 대충 치워요. 이해하시겠지, 뭐!” 나를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지인들이 한 두 마디씩 거들었다. 친정 엄마니까 편하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럴까도 싶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엄마는 한번 왔다 가시면 내가 사는 모습이 다음 오실 때까지 계속 남아 있는 거란다. 행여 청소도 안 하고 대충 사는 건 아닌지, 먹는 게 시원찮은지, 식구들 건사 못하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는지 내내 걱정이시라, ‘잘 살고 있다’고 표시를 하는 것이 중요한 거야. 잘살고 있고 행복하다고 말까지 하면 더욱 좋아하실 거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제야 지인들은, 그렇기는 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엄마들은 집에 돌아가셔서 가끔 ‘너 왜 그렇게 하고 사냐?’고 보고 간 것을 끄집어내신다고 했다. 부모에게 잘해드리는 것도 효도이지만 걱정을 없이 해드리는 것도 효도라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 며칠간 힘들고 아파도 부지런을 떨며 청승을 떨었다.



  저녁 한 끼 밖에서 사 먹어도 될 것을 굳이 집에서 차돌과 등심을 굽고 민물장어까지 구웠다. 미역국을 끓이고 생일 케이크를 자르며 축하노래를 불렀다. 꿀꺽꿀꺽 마시는 맥주잔만큼 축하와 격려의 돈봉투가 돌고 돌았고 밤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런데, 아이고야, 내일모레가 80이라고 투덜대던 양반이 어찌나 에너지가 넘치는지 아이들과도, 사위와도 잠도 안 자고 쉴 새 없이 이 얘기 저 얘기하며 깔깔대신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눈꺼풀임을 재차 확인하며 에라 모르겠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친정 엄마를 모셔다 드리고 와서도 잠 귀신이 붙은 것 마냥 자고 또 잤다. 실컷 자고 나서 좀 살겠다 싶었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팔이 아파오는 것이 아닌가. 고생 고생할 때는 이를 악물고 버티다가 근심과 초조함을 내려놓자 병이 찾아오는 격이라, 그동안 ‘괜찮아, 참을 만 해, 쉬고 나면 좋아질 거야’ 라며 주위를 안심시키던 것이 수술을 한다고 날을 받고 나니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되어 버린 것.


  몇 년간 병원을 옮겨 다니며 치료를 할 때, 어느 한 의사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주고 큰 병원에서 MRI를 찍어보고 수술을 고려해 보라고 얘기라도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충격파, 수압팽창술, 도수치료를 복합적으로 병행하며 열 번 이상 치료를 해도 병의 차도가 없었을 때, 다른 병원에서 상담을 받아보라 권유하였다면 불면과 고통의 밤은 그리 길지 않았을 것인데... 서운함이 밀려왔다. 빨리 판단하고 대처하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에도 화가 났다. 치료시기가 많이 늦어버렸다고 하지 않는가.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다.

생일이 지나고 축하한다고 해봐야 생일밥은 지나고 먹는 게 아니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돌아섰는데 사랑한다고 말해봐야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중에 부모에게 효도하리라 마음먹었다 하더라도 막상 효도하려 할 때 부모님은 계시지 않을 수도 있다.

병이 커질 대로 커져서는 치료가 더 어렵고 기간도 길어지고 돈도 많이 들고 몸과 마음도 많이 상하는 법이다. 그만큼 타이밍은 중요하다.

시기적절(時期適切), 시의적절(時宜適切)이란 말이 달리 나온 말이 아닌 것이다.


  수술을 앞두고 괜히 두려운 마음이 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간단한 수술이라지만 석회 근처 근육의 손상 정도에 따라 수술이 복잡해질 수도, 재활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 중3 고3 챙겨야 할 아이들도 있는데, 게다가 오른팔이니 생활 속 불편함이 많을 것이다. 코로나 상황으로 혼자 병원에 가서 수술하고 혼자 깨어나 혼자 누워있어야 하는 것도 불안 요소이다. 떨리는 손이라도 좀 잡아주면 좋으련만.


  맞다, 수술을 앞두고 서운한 마음이, 불안한 마음이 자꾸 들고 타이밍 어쩌고 운운하는 것은... 나, 사실 무지 떨고 있기 때문이다.


  “나 떨고 있냐?”

최민수 형님이 얼마나 떨렸을까, 그 심정이 폭풍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물론 경우는 다르지만...)




  

표지 사진) 생일이라고 받은 꽃 케이크 간식 페트리와 친정엄마와 함께 한 저녁상 사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