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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May 31. 2021

죽음을 배우는 시간

친정 엄마의 '연명 치료 거부 사전의향서' 작성을 보며...

  #죽음을 배우는 시간-연명치료 거부 사전의향서


  “얼마 전에 연명치료 거부 사전의향서에*1) 사인하고 왔다, 그렇게 알고 있어."

친정 엄마가 대화 끝에 하신 말씀이다.

 "요즘, 어르신들 그거 많이 하는 것 같기는 하던데... 갑자기 무슨 생각으로 하신 거예요?"

 "건강하게 오래 살면 모를까 목숨줄만 붙여놓고 오래 끌어봐야 나도 고생이고 너희들도 고생 아니냐? 의식 없이 누워만 있는 게 살아있는 거라고 할 수 있겠니? 사람이야 다 오래 살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고, 나이가 들어가니 살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해지더라만 '그렇게라도 살아야겠다' 아등바등하는 건 욕심이지 싶어서..."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느냐도 중요하다고 덧붙이셨다. 이제는 ‘잘 죽을 준비’를 해야 한다며

 “죽음을 배우고 있어, 내가 요즘...” 하셨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치매보험, 수목장


  친정엄마는 이처럼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다.

몇 년 전에도 뜬금없이,

 "내가 치매보험이라는 거를 들었거든, 그렇게 알고 있어." 하셨다.

어쩜 맨날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끝맺음을 하시는 건지. ‘모르고 지낼 거야, 난 몰라’하고 발뺌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러시는지 모를 일이었다.


  또 누구 꾐에 넘어가 보험을 든 거냐고 물었더니

 "너희도 알다시피 너희 할머니, 아버지 모두 치매로 얼마나 고생을 했니? 아주 치매라면 지긋지긋하다. 너네들도 몰라보고 헛소리 하는 판에 내가 어디에 있든 무슨 상관이냐? 어차피 아무 생각 없을 텐데 섭섭한 게 있겠니, 고통스러울 게 있겠니? 내가 옆에서 지켜보니 그렇더라. 옆에 사람만 고생이야. 그러니 깨끗하게 보험 깨고 재산 정리해서 좋은 병원 보내달라고 하는 소리다. 너네 사형제끼리 네가 모시네, 네가 왜 안 모시네 서로 싸우지 말라는 소리야." 하셨다. 죽음을 얘기하는 순간에도 자식 걱정이라니...


   “치매에 걸려 고생할 일도 없겠지만 그런다 한들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인데 벌써부터 혼자 고민하고 그러셔요?."

섭섭한 듯 투덜거렸지만 엄마가 하시는 말씀 이외에 뾰족한 수가 달리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선뜻, ‘내가 모시면 되지’ 소리를 하지 못한 게 후회가 되었다. 항상 자식 걱정하는 부모 앞에서 자식은 부모의 발치 끝도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죽거들랑 수목장이란 게 있던데, 그렇게 거창할 필요도 없고 멋진 나무 밑에 그냥 뿌려주면 좋겠어.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련다.”

하고 덧붙이셨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계영배


  술잔에 술을 따르기 위해, 혹은 술잔을 서로 부딪치며 하는 말들이 있다.

 "사랑하는 만큼 술잔을 채우는 법이다."

 "술잔은 넘치게, 술잔은 동등하게..."

그래서 항상 술은 넘치지 않지만 가득 채운다.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토록 충만하오.' 얘기하듯 말이다. 술잔의 7할이나 8할 정도를 채우면 으레 '따르다 마느냐?'라든지, '나에 대한 애정이 식었냐?'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그러니 넘치든 말든, 넘칠 듯 말 듯 일단 찰랑찰랑 따라야 하는 것으로 알고 따른다.(찰랑찰랑 노래는 여기서 유래되었다는 속설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그러나 가득 채운 잔은 부담스럽다.

한 잔을 나누어 마시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원샷 원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술잔을 잡고 건배를 하면서도 아까운 술은 넘치는 경우가 잦고 한 번에 마시기는 거북하고 부담스럽다.

그럴 때면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친정 엄마 역시,

  “인생은 계영배 같은 것이라 생각하면 되는 거다.”

하셨던 기억이 난다.


  계영기원 여이동사(戒盈祈願 與爾同死)라는 말이 있다.

‘가득 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며,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라는 뜻으로, 소설 <상도(商道)>에서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이 가지고 있었다는 계영배에 새겨진 문구이다. 잔의 7할 이상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버려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속뜻이 있는 계영배는 과욕을 하지 말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물이기도 하다.*2)


#죽음을 배우는 시간-삶과 죽음의 과욕을 경계해야 한다.


  무병장수(無病長壽)라는 옛말을 요즘 흔히 유병장수(有病長壽)라 한다. 의학기술이 발달하여 죽을 만하면 병원에서 살려내고 죽을 뻔한 순간의 고비를 넘겨 살려내어 평균 수명은 결국 늘었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생기는 병은 의학기술의 발달로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병은 있으되 치료를 위해 거동할 수 있을 정도의 병이면 괜찮은 편이다. 그런데 목숨을 겨우 이어가도록 연명 치료(延命治療)를 하는 경우는 침상에 누워 있는 사람이나 지켜보는 가족들에게는 고달픈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미리 밝혀두어야겠다고 결심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의 기로에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고투(苦鬪) 중인 환자나 가족들에게는 연명이 아니라 다른 동아줄이라도 잡으며 살기 위해, 살기만 하라고, 살려달라고 눈물로 밤을 새울 것이기에 ‘연명치료 거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라며 가당찮은 소리 하고 있다 생각될 것이다.


  그러기에 연명치료를 하거나 연명치료 거부를 하거나 선택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의 의사에 준하는 것이지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다.


연명치료 거부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CPR),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2019년 3월 28일부터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 치료가 포함)과 같은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의사가 더 이상의 치료나 처치가 어려운 연명치료라고 판단되면, 미리 작성한 ‘연명치료 거부 사전의향서’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하게 되는 것이다.

 

  “계영배 잔이 말이다, 잔의 7할 이상을 따르면 술이 아래로 흘러 과한 술을 경계하는 의미인데, 이게 사는 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꾸짖는 의미기도 하거든. 넘치는 술, 과한 욕심은 부질없다는 뜻이야.”

무려 20여 년 전 방영되었던 드라마 <상도>에 나오는 계영배를 보며 친정 엄마가 하신 말씀이다.


  “욕심이 부질없긴 왜 없어? 욕심을 가지고 살아야 잘 살지. 넘쳐흐른 술은 아래에 담기게 되어 다시 따라 마시면 되고... 모자라는 게 문제지, 남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라고?”

나는 볼멘소리를 했었다.


  “넘쳐흐른 술을 다시 따라 마시며 ‘내 헛된 욕심이 이만큼이나 되었구나’ 하고 느끼라는 뜻이다, 이 어리석은 것아!”

친정 엄마는 내 머리통을 ‘꽁’ 쥐어박았었다.


  아...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구나. 나는 아직 한참을 더 살아야 인생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겠구나 하고 낙담했었다. 어리석은 중생이었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 혹시?...


  삶에 대한 깨달음과 통찰이 있다 해도 그렇지.

죽음을 준비하고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태어날 때, 자유로이 이 세상에 나와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하였듯이 죽을 때도 자유롭게 저 세상으로 가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참 잘살다 가신다, 다른 곳에서도 잘 사시라’ 웃음 띤 얼굴로 배웅받으면 얼마나 행복하겠니?”

신념과 확신에 가득 찬 엄마의 얘기는 구구절절 옳은 말이고 귀감이 되는 말이었다.


  배울 것 앞에 또 배울 것 천지다. 우리 집에 모처럼 오셔서 딸인 나에게 숙제만 잔뜩 안겨주고 가신 셈이 되었다. 가물에 콩 나듯 한 번씩 오셔서는 숙제란 숙제는 죄다 안겨놓고 가는 것은 무슨 경우인지...

다음에 우리 집에 오셔서는 또,

‘무엇을 보았노라, 배웠노라, 깨달았노라!...’

나에게 화두를 던지고 가실지, 벌써부터 가슴이 쫄깃, 다리가 후들후들 거리는 것이다.


  혹시?... 저... 장기기증... 뭐, 그런?...

  ‘엄마, 쪼오~~~ 옴!’

  

  





*1) 연명의료 거부 사전의향서’는 건강할 때 19세 이상의 성인이 거주지에서 가까운 보건소에서 충분한 상담을 받은 후 사전의향서를 작성하고, 연명의료정보처리 시스템에서 작성하고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고 보고한다.

2016년에 ‘연명의료결정법’이 공표되고, 2018년 2월 4일부터 ‘연명의료 결정제도’가 시행됐다.


*2) 네이버 지식백과 : 계영배 


** 글을 발행하고 반나절이 지나 검색을 하다 보니 <죽음을 배우는 - 시간>이라는 책이 있네요. 제목을 다른 것으로 수정할까 하다 그냥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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