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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Jul 01. 2021

‘내일의 오늘’을 확인해 보세요

작당모의(作黨謨議) 2차 문제(文題) : 딩동!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1>

   '과거 오늘 있었던 일을 확인해 보세요',

메시지가 뜬다. 메시지 창을 열면 '과거의 오늘 있었던 추억들'이라는 문구 아래 몇 장의 사진과 글들이 얇은 민소매 원피스 옷감에 비치는 속살처럼 훤히 드러난다.

'과거'만 오롯이 남은 글자가 아닌 '과거의 오늘'이라는 글자에 유독 눈길이 머물렀다. 금세 기억에서 잊힐 일상의 조각들을 그러모아 기록해 놓은 덕에 '과거의 오늘'은 과거임에도 살아 퍼덕이는 생선 비늘 마냥 신선하고 생생히 전달됐다.

 '과거의 오늘이었던 그 순간이 오늘의 일이었으면 좋겠는걸...' 하고 정숙은 생각했다.

박꽃처럼 하얗게 웃는 사람이었구나, 나는.
막걸리 한 잔에 시뻘건 깍두기를 베어 물며 칼칼한 자유를 맛보기도 했구나, 나는.



2>

   과거의 사진을 보며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왠지 모를 쓸쓸함과 허전함도 뒤따라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격한 고통으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 지독한 류머티즘, 웬수 같은 놈...’


   약을 한 움큼 털어 넣고 정숙은 침대에 몸을 뉘었다. 심한 탈모를 가리기 위해 쓴 가발도 벗어던졌다.

생각 하나가 머리를 스쳤고 일을 벌이면 재미가 솔솔 하겠다 싶었지만 애써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모든 것이 엉망일 예정이다. 버텨봐야 승산 없는 싸움, 정숙은 순순히 백기를 든 채 잠에 빠져 들었다.


  정숙은 지쳐 있었다.

지난 2년간 유튜브를 통해 매일 사주 강의를 업로드하며 개인 상담과 오프라인 교육을 병행해 왔다.

처음 유튜브를 시작할 때만 해도 5년간 공부해 온 것을 정리해 보자는 취지였다. 사주를 알면 인생살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컸다.

정숙은 인생의 허기와 갈증에 타들어 가던 때, 사주를 배우고픈 강렬한 이끌림과 마주했다. 허기와 홀림이 동시에 찾아왔다.

 ‘이런 걸 운명이라 한다지?’


   평생을 이렇게 아프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하늘에 그 이유를 묻고 싶지는 않았다. 캠퍼스 커플로 오랜 연예를 거쳐 한 결혼 이건만 시댁과 남편과는 자꾸만 어긋나고 틀어졌다. 정숙과 아들, 민은 충돌이 잦았다. 딸은 사회생활이 걱정될 만큼 지나치게 내성적이었다. 잘 나가던 공부방도 이사로 인해 접은 상태였다.

 ‘내 인생 후반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고민은 깊었고 의문은 많았다. 인생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설명할 수 없는 기(氣)와 운(運)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던 이유는 많았다.


  다분히 개인적인 취미로 시작한 유튜브였다. 돈을 좀 벌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많이 벌 자신은 없었다. 이미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놓고 터를 잡은 사람들은 넘쳐났다. 경쟁은 이 바닥에서도 예외 없이 치열했던 것이다.

그러나 의외의 선전(善戰)이었다. 2개월 만에 구독자 수, 5천 명이 넘더니 6개월 만에 1만 명을 넘어버린 것이다. 매일 강의를 올린다는 것이 유튜브 초짜에겐 힘든 일이었지만 일정한 시간에 문을 열고 닫는 가게를 사람들이 신뢰하고 찾듯 조회수, 라이킷 수, 구독자 수가 꾸준히 상승했다. 광고도 붙었고 돈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화로 사주를 문의하는 사람들도 늘었고 강의 문의도 잦았다.


  3개월 간 1천만 원이 넘는 수익을 냈다. ‘말로 일을 하면 사람들이 떼로 몰려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정숙의 사주는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술장사 아닌 말장사, 즉 말로 벌어먹고 살 팔자였던가 생각했다.


  그러나 정숙이 겪어야 할 고충도 늘어났다.

강의 준비와 녹화가 문제가 아니었다. 낮이고 밤이고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핸드폰이 문제였다. 특히 밤에 걸려오는 전화는 평범한 수준을 넘어섰다. 술을 먹고 신세한탄을 주절주절 하는 사람, 풀어준 사주가 맞지 않는다고 따지는 사람, 물어볼 게 있었는데 이제 생각났다며 질문세례를 퍼붓는 사람 등 다양했는데 가장 난감한 것은 다짜고짜 울어버리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이놈의 좀비들은 잠도 없어? 인내력 테스트하는 거야, 뭐야!’

잊을만하면 다시 전화했고 시간을 가리지 않았다. 정신의학과 의사도 다른 의사에게 상담을 받는다더니 정숙 역시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로의 상태가 돼 버렸다.

 ‘요즘 유행하는 가스 라이팅? 할 건 다 하는구먼...’



3>

   그러던 중 뇌리를 스쳤던 것이 ‘어제의 오늘'이라는 문구였다.

어제의 추억을 꺼내보며 잠깐이라도 미소 지을 수 있었고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미래의 특별한 어떤 날을 잠깐 엿볼 수 있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물론 명확히 일어날 일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오늘의 운세>를 살피며 하루를 점쳐보는 사람 마음의 이면에는 오늘은 좋은 일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깔려 있듯, ‘미래의 오늘’은 <미래의 운세>처럼 어떤 기대와 희망을 품게 되지 않을까?


   그것은, 보지 않아도 미소 짓는 상대방의 얼굴을 상상할 수 있는 일, 그 얼굴을 상상하며 나 역시 미소 지을 수 있는 일이었다.


아우트라인은 이런 것이었다.
1. 미래의 어느 날, 있을 법한 이야기를 구상한다
2. 미래, 어느 날짜의 일기를 쓴다
3. ‘미래의 오늘’ 이란 제목으로 메시지로 보낸다



  딸의 취업이 고민이었던 상담자에겐 이런 메시지를 띄우는 거다.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이 꿈을 향해 노력하라는 격려의 메시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내일의 오늘’ 있을 추억>
샌프란시스코로 연수를 간 딸에게 소식이 왔다. 바쁜 일정이 마무리되어 모처럼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고 한다. 내년에는 엄마와 꼭 오고 싶단다. 오냐오냐, 약속의 새끼손가락을 흔들어 주었다.
<2023년 7월 1일>


   진창 같은 힘든 일상 속에서도 기쁜 나날을 갈구하듯 정숙은 미지의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날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일이 나에게도 기쁜 일이 될 것 같았다.

조그만 의도가 무심코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고, 그 마음의 한가운데서 삶의 불씨가 지펴져서 그 힘으로  매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 다른 사람에게 ‘인생은 살아봄직하지 아니한가!’ 환희를 안겨주고 싶었다.

정숙도 그랬다. 살고 싶었다.



4>

   깊은 생각의 끝에는 친구, 신하(新夏)가 있었다.

여름의 어느 날처럼 싱그럽고 푸르른 사람. 그녀와 만나면 여름 햇살처럼 선명하고도 명확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이었다. 

안양천변에서 서로의 입김을 확인하며 둘은 걸었다.

궂은 날씨 탓인지 천변을 걷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처음 돈이 막 들어올 때는 이 길이 내 길이다 싶었어. 이 사람은 어떤 인생의 모양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신기하기도 했고. 그런데 돈을 버는 일만으로 사는 게 재미있지는 않더라. 좋아서 배우게 된 일이 중노동이 되어 버렸어. 내 생활도 없어지고 다른 사람들 인생 들여다보는 것도 넌더리가 나. 신 내린 무당이 아니라 그런가? 내가 꼭 이 일을 해야 하는 당위성도 없고 말이야."

정숙은 신하에게 하소연했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유튜브를 내리고 전화번호도 끊어버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상도의(商道義)라는 게 있는 거니까. 시작은 쉬웠으나 끝은 쉽지 않았다.


 "그러니까, 며칠 전 전화로 얘기한 그 미래의 오늘인지 뭔지를 하고 싶다는 거잖아. 생각은 더없이 좋아, 아주 아름답고 센티하고 멜랑꼴리 해. 그런데 말이야, 미래의 그 시간이 되어서 보내준 메시지가 현재와 맞지 않는다면, 너에 대한 신뢰가 깨지는 일이야. 일하는데 지장 없겠어?  미래의 일도 못 맞히면서 무슨 용기로 사주 풀이한다고 야단이냐고 할 게 뻔하잖아...”

이건 행복한 편지, 온기 우편함 같은 얘기가 아니라고 신하는 얘기했다. 좋은 의도를 나쁘게 해석하는 사람들은 주위에 많았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득이 되기는 힘들어도 해를 주기는 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다면야 어쩌겠냐? 내가 능력을 발휘해야지. 돈 많이 번다면서 알바비나 많이 챙겨줘라. 이것도 엄연히 정신노동이고, 욕먹을 각오하고 써야 하는 거니까. 야근수당 위험수당 생명수당 붙인 보험 들어준다고 생각하고, 알았지?”

신하의 판단은 항상 빨랐고 행동은 거침이 없었으며 거래는 정확했고 말과 글에는 재치가 넘쳤다.


 ‘저런 애가 왜 작가로 아직 못 뜬 거야? 돈 복도 있고 말년 복도 나쁘지 않았는데, 신하의 사주가...’

정숙은 신하의 사주를 짚어보았다.


 “음... 신하야, 내년에 좋은 일이 있겠다. 생각했던 게 잘 풀릴 것 같아. 이름도 좀 날리겠는데?”

 “오호, 그래? 내일의 오늘, 이게 잘돼서 이슈에 오르려나? 이건 어디까지나 알반데... 아님, 내 이름 박힌 책이 나오게 되려나?... 야, 그나저나 저 앞에 저 남자처럼 어깨 축 쳐져 안양천변을 걷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어라? 좀 전에는 하하하 웃으며 전화받고 있었는데... 쉬운 일이란  없는 법이지. 그래서 위로라는 게 필요한 거야, 그지? "

 "이왕 이렇게 천변에 나왔는데, 어때? 달리기 한 판 해? 말어?"

 "왜 아냐? 해야지. 달려~"


   진눈깨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고 옅게 퍼지기 시작한 햇살은 가장 어두운 시간을 통과한 여명의 빛과 닮아 있었다.




5>

   <딩동! '내일의 오늘'을 확인해 보세요>


   내일의 오늘 메시지는 몇몇 사람들에게 제공되기 시작했다.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취지를 설명했고 반드시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미래의 일이지만 희망을 가지고 인생을 살다 보면 반드시 좋은 일은 일어날 수 있다는 내용도 함께 발송했다.

믿어도 되는 일이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런 서비스는 필요 없다고 거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장난하느냐며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고 인생 참 편하게 산다며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양한 말들과 의견이 두루마리 휴지처럼 술술 양산되었지만 메시지를 받고 한동안 웃을 수 있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내일의 오늘 서비스는 삐걱거리면서도 대충 굴러갔다. 일은 이렇게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에너지에 의해 굴러가는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희망에 기대는 사람들이다.



6>

    <딩동! '내일의 오늘'을 확인해 보세요>


   정숙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신하로부터 날아온 메시지였다.


<‘내일의 오늘’ 있을 추억>
일주일에 한 번 영상 업로드, 잘한 결정인 것 같다. 사주 수업은 민지에게 맡기길 잘했고 ‘사주카페’를 연 것도 잘했다. 어쩜... 모든 일이 잘 되었고 삶의 질이 달라졌다. 모든 게 신하 덕분이다. ‘내일의 오늘’도 대박이 났고, 신하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오늘은 신하를 업어줬다.
<2022년 7월 1일>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습니다'는 피천득 님의 <인연>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인연이라...

'내가 사주카페를 열어볼 생각인 것을 어떻게 알았지? 이것이 나를 또 웃게 하네'

정숙은 좋은 인연에 감사했고 또 한 번 웃었고 잠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내일의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정숙은 아직도 정확히 인생의 이치를 깨닫지 못했다. 신하 덕분에 사주카페를 해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긴 것은 분명했다.


   정숙은 천천히 자신의 사주를 들여다보았다.

‘내일은 좋은 일이 생기겠는걸...’

혼자 중얼거렸다.





*) 표지 사진 : 출처 @gazeroshin

< 이 글은 초간편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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