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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Apr 08. 2022

봄과 다이어트

나쁘지 않아, 오히려 좋아!

 봄이다. 햇살 따사롭고 꽃향기 달달한 봄...

이른 아침, 거실 커튼을 걷으며 창 밖을 힐끗 바라만 보아도 뛰쳐나가고 싶어 안달하는 그런 봄, 봄인데 나는 그 흔한 다이어트를 한다고 용을 쓰고 있다. 다이어트는 하기로 마음먹은 그 시점이 중요한 것이지 계절과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봄이라는 계절과는 상관이 없지 않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겨우내 오랜 휴식을 취한 동물들이 잠에서 깨어나고 식물들이 땅으로부터의 기운을 끌어올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계절이다. 깨어나고 약동하고 발아하고 성장하느라 모든 것이 바쁘게 움직이는 계절이다. 굼벵이도 석 자씩 뛴다는 봄이 아닌가. 그런데 하필 이 시점에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하루 한 끼만 먹고 있으니 약동은커녕 조락(落)의 길을 걷는 기분이다. 봄에 가을 길을 걷는 느낌이랄까, 이 기분은 쉽지 않다. 꽃향기를 맡고 꽃을 보면서도 충분한 감흥이 일지 않는다. 몸만 힘이 없어 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도 머리도 작동이 느려지거나 오작동하는 모양이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어떨 땐 멍한 상태가 지속되기도 한다. 먹는 음식의 양이 적어 몸 구석구석까지 활발히 전해져야 할 에너지를 충분히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봄에는 다이어트를 하는 게 아니다. 다이어트 방해꾼이 도처에 숨어 있다. TV를 틀면 죄다 먹방(먹는 방송)이다. 전국의 이름난 꽃 장소를 소개하며 제철음식을 1 + 1 묶어 보여준다.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길가에 보이는 게 쑥과 냉이고 마트에는 각종 봄나물들이 싱그러운 얼굴로 사람들을 반기고 있다. 밝고 화사한 색의 꽃들만 봐도 스위트 해져서 식욕이 동한다. 먹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예년 이맘때 같으면 파김치에 오이소박이를 담가 먹었을 것이고 쑥국을 먹으며 봄의 기운을, 봄동과 달래를 먹으며 봄의 싱그러움을, 곰취와 돌나물을 먹으며 봄의 향기를, 봄나물전을 먹으며 봄의 깊이가 어쩌고 저쩌고 운운했을 것이다. '아, 이게 봄의 맛, 사는 맛이로구나!' 하면서.


 나를 알고 있는 주위 사람들도 다이어트에 도움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차라리 적이다. 다이어트할 때 약속을 잡지 않아야 한다는 것쯤은 다 아는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닌가. 그런데 주위에서는 꽃구경 가자고 아우성이다. 멀리 가기 어려우면 동네 산책길에서라도 만나자 한다. 맛있는 거 먹고 기운 차리고 가볍게 술 한 잔 하며 봄의 정취를 느끼잔다. 다이어트는 나중에 하라고, 지금도 괜찮다며 영혼 없는 말을 한다. 다이어트도 먹어가며 하는 거라고 훈수를 둔다. 이것만 먹고 내일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회유를 한다. 맛있는 도시락을 싸갈 테니 진심 담은 정성을 뿌리치지 말라고 빠져나가지 못할 밑밥을 던진다.


동생이 만들어 온 진심 담은 도시락으로 호숫가 식탁에 차린 브런치. 벚꽃이 피고 있었고 수양버들 잎이 연두 연두 했다.


 아, 걸려들었다. 미끼를 물어버렸다. 오늘은 도시락 맛있게 싸갈 테니 만나자는 말에 홀라당 넘어가 버렸다. 이건 무조건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고맙게 먹어줘야 하는 내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넣은 김밥에 토스트, 샐러드에 커피까지 브런치카페에서 나올법한 풀코스로 준비해 오셨다. 벚꽃이 터지고 있었고 수양버들 잎싹이 연두 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양지바른 호숫가 식탁에 자리를 잡고 '왕후의 피크닉'을 즐겼다. 얼마만에 하는 야외 식사인지, 음식은 봄을 닮아 꿀맛이었다.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더니 기분이 좋아져서 동네를 뱅글뱅글 몇 바퀴를 돌아다녔는지 모른다. 만 보 넘게 걸었다고 만보기가 알려준다. 길가 꽃집에서 진분홍 영산홍과 장미 화분을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해마다 죽이고 사고를 반복하는 나의 고질병이다.

산책길에 데리고 온 연산홍과 장미. 잘 살아 보자.


 사실, 다이어트는 진작에 했어야 했다. 현재 나는 내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기록하고 있다. 나날이 몸무게 기록을 경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음식 앞에서 번번이 무너졌었다. 다이어트 3일 만에 라면 냄새에 미혹되었고 작심 하루 만에 짜장면 앞에서 백기를 들었다. 어디 다이어트 결심을 한 번만 했겠나. 수십 번 결심을 한 것 같은데 매번 흉내만 내고 접었다 폈다 한 다이어트 결심이었다. 그동안 '적당한 행복론'에 빠져 있었던 거다. '불행은 오는 것이지만 행복은 찾는 것'이라는데 건강한 몸 유지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금방 누릴 수 있는 포만감과 행복감에 빠져 만족하고 지낸 것이다. 맛있게 먹으면 '0' 칼로리, 먹는 게 남는 거다, 먹는 낙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나... 이런 생각들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체중조절을 해야 한다. 오래전부터 몸은 조금씩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팔 다리 허리 목 어깨 다리... 안 아픈 곳 없이 피로도가 쌓여왔지만 나이 탓으로만 돌리고 애써 부정하며 경고를 무시했다. 과한 비유지만, 유지관리의 소홀과 폭증하는 교통량으로 인한 피로하중을 견디지 못해 성산대교가 무너지지 것을 보았다. 마찬가지로 내 몸도 유지관리가 필요하며 건강 체크 및 안전점검이 필요한 것이다.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나를 보면 친정 엄마는 "세상에, 네가 이렇게 살이 찔 줄 몰랐다. 게다가 뺄 생각도 안 하고 있으니 그게 더 불가사의한 일이다. 딸아, 그런데 살이 찌면 나이 들어가면서 계속 아프단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을 좀 빼라!"라며 신신당부를 하신다. 엄마 말 들어 나쁠 거 없었다. 오히려 득이 되면 득이 될 것이다. 엄마 말 들으라고 아이들에게 악다구니할 일이 아니라 엄마 말 들어야 할 일이다.


 매 순간, 이걸 먹어? 말어? 하며 다이어트를 한 지 3주 정도가 지났다. 이제껏 이렇게 오래 버틴 건 처음이다. 다이어트할 게 못 되는 봄인데도 말이다. 나 스스로를 방치한 죗값을 주린 배와 허기로 되돌려 받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는 늘어나 있던 뱃구레를 줄이기를 위해 식사량을 줄였다면 이제부터는 식단 조절을 하며 꾸준한 운동으로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주말에는 벚꽃길을 걸으며 마음껏 봄을 음미하고 향기를 마셔야겠다. '봄 다이어트도 나쁘지 않아, 오히려 좋아!' 최면을 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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