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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Jan 19. 2023

오마카세 바람이 불어

집에서 한우 줌마카세

  바람이라고 다 같은 바람은 아니다. 바람, 하늬바람, 마파람, 된바람과 같이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르기도 하고 바람이 부는 장소나 시간, 세기 또는 바람이 생기는 주변 환경에 따라 갯바람, 실바람, 남실바람, 산들바람, 칼바람, 돌개바람...이라 달리 불리기도 한다.


  바람이라고 부는 바람만 바람이라 부르는 것도 아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비는 마음 바람도 '바람'이다. 피면 안 되는 '바람'도 있고 숙청과 박해의 되알진 '칼바람'도 있다. 한 번 맛들리면 무섭다는 '늦바람'도 있고 들어서 신이 나는 '춤바람'도 있다. 인자 '술바람'이 올라오면 에미애비도 몰라보는 지경에 이르러  '버선 바람'으로 거리를 활보하게 될지도 모른다. 허황된 짓을 꾀하도록 부추기는 것을 '바람 잡는다'라고 한다. 무가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물기가 빠져 푸석푸석해지면 '무에 바람이 들었다'라고 한다. 바람은 무에게만 골탕을 먹일 리 없다. '뼈에 바람이 들었다' 에고 지고 소리 높으면 저 세상에서 날 부르러 올 때가 되었나 짐작하게 하고 '이 사람, 허파에 바람이 들었나?' 소리를 들을라치면 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일이다.


  고놈 바람이란 것은 어찌나 오지랖이 넓고 행동이 종횡무진이던지 공기를 이리저리 흔들고 뒤채어 정신을 못 차리게 하기도 하고 사람 마음에 드나들어 들쑤셔 놓기도, 헛된 생각을 하도록 하는 고얀 구석이 있더라.


  고로, '무슨 마음이 내켜서 또는 무슨 일이 있어서'를 의미하는 관용구, '무슨 바람이 불어서'라는 표현에 걸맞게 작년 말부터 우리 집에 '오마카세'라는 바람이 불었던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편이 저녁식사 비용 1인당 15만 원이나 하는 오마카세 전문점에서 고급진 식사를 하고 온 다음날부터였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단지 그것뿐이라는 듯 '오마카세 바람이 분다, 먹어야겠다' 단지 그것뿐이라는 듯 이렇게 이야기를 해대는 것이었다.

- 오마카세, 그거 집에서도 한 번 해 먹읍시다.

- 회나 해산물은 어렵지만 한우 오마카세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고기 하나는 끝내주게 굽잖아.

- 내가 제대로 해줄 테니 분위기 한 번 내봅시다.


  집에서 일 벌이기 싫어 계속 '다음에'로 회유하는 나의 진짜 속마음을 눈치채고 오마카세 음식점에 데려가 주었다면 폼도 나고 이쁨도 받았을 텐데, 모르는 건지 모른 척하는 건지 오마카세 바람은 도대체 꺾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기세는 날로 등등해졌고 하루가 멀다 하고 줄기차게 몰아쳤으며 돌개바람처럼 거세고 거칠기까지 하였다. 그 바람을 없앨 방법은 바람이 제 뜻을 원 없이 펼치고 펼쳐내어 마침내 스스로 잠잠해지도록 놔두는 방법 밖에 도리가 없어 보였다.


집에서 한우 오마카세, 준비 됐나? 준비 됐다!


  오마카세, 오마카세... 몇 주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를 들으니 도대체 오마카세가 뭐길래 궁금해지기는 하더라. 오마카세 방식의 음식점이 유행이라는 말만 들은 입장에선 사전조사는 필수였다. 대접받을 메뉴의 종류 및 요리방식을 셰프에게 '맡긴다'는 뜻일본어란다. 셰프의 취향과 그날 선택된 식재료에 따라 제공되는 요리가 달리 구성될 수 있다는 건데 쉽게 표현하자면 랜덤 메뉴 식사인 . 주는 대로 먹으라고? 메뉴 선택의 고민은 없겠지만 이런, one way 같은 식사가 있나...


  원래 시작은 일본의 어시장 밥집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시장이 파하는 시각에 안 팔리고 남는 생선을 헐값에 가져다 요리를 한 것인데 그날그날 남는 재료가 다르기 때문에 손님이 먹는 음식도 복불복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오마카세가 고급 코스 요리라고 알려진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통영, 인천, 전주, 여수 가맥집 등 해안 지역 음식점 중 '다찌집'이라 불리는 가게에서 해산물로 가득한 식탁을 차려내고 있는데 오마카세 음식점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종로 뒷골목에도 이런 다찌집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키면 안주 10종, 한 주전자를 더 시키면 안주 10종 추가, 이런 식이었다. 낙지탕탕이, 문어숙회, 가오리찜, 회와 메로구이, 장어구이에 조림과 탕까지 배가 불러 술을 못 마실 정도였다.


육회를 시작으로 한우 특수부위, 등심, 장어, 버터징어, 복숭아구이, 냉면에 케이크 까지... 숨가쁜 코스 요리에 와인이 빠지면 섭섭하지. 건배! 짠!!

  아하, 셰프가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그냥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것이 오마카세로구나! 메뉴가 정해져 있는 코스 요리라면 중식당이나 서양식 레스토랑에서 흔히 보았고 우리나라 한상 한정식은 순차적으로 나와야 할 음식이 한 상에 차려진다는 것일 뿐 오마카세랑 다를 것도 없어 보였다.

거, 별거 아니네. 오마카세, 그까잇 거 뭐. 소원대로 바람대로 해 먹어 보자 싶었다. 술안주를 주인장 개성껏 코스로 제공하는 실비집을 유행 따라 '이모카세'라든가 '할매카세'라고 부른다니 집에서 한다면 '줌마카세' 쯤 될 것이었다.


  남편의 말대로 회나 해산물은 전문 요리사가 아니니 힘들겠고 육식 공룡들을 위해서라면 당연 '한우 오마카세'지. D-day는 한 해의 마지막날인 12월 31일로 정했다.

메뉴 구성은 이러하였다.

1. 보름달 품은 육회는 유쾌하니 전채 요리로.

2. 아페리티프 스파클링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을 주로 마시지만 고기에는 레드 와인이다.

3. 살치살, 치마살, 토시살, 안창살, 갈빗살 특수부위부터 등심까지 고기 폭탄.

4. 장어구이와 오징어를 버터에 구운 일명, '버터징어'는 사이드 디쉬.

5. 통조림 복숭아 구이(처음엔 대파구이로 정했었는데 육식공룡 둘의 반대로 메뉴 변경)와 시원한 냉면이 1차 후식.

6. 홍대 코만스 티라미수 4종 컵케이크가 2차 후식.


  그런데 거하게 오마카세 흉내를 내며 가족파티를 즐겼는데 다음 날 가만 생각해 보니 평소 고기 구워 먹는 우리 집 주말식사 내용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 배가 좀 더 많이 불렀다는 것, 분명 살도 쪘을 것이라는 것, 설거지 거리가 산더미 수준이었다는 것, 준비는 서너 시간이었지만 식사시간은 고작 1시간에 불과했다는 것, 준비하고 먹다 지쳐 깜빡 조는 바람에 제야의 종소리도 못 들을 뻔했다는 것...


  허한 명성이고 헛된 바람이었구나. 바람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고요와 적막이 남았으니 유행이라는 바람잡이에게 휘둘리지 말 것이며 마음에 바람이 들어 전전긍긍 하지도 마시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익히 알고 있던 것이고 보통의 것, 익숙한 것이 가장 마음 편한 것이니, 평소 하던 대로 먹던 대로 '줌마카세' 집으로 오시오. 엄한 데로 새지 말고 냉큼 오시오. 무슨 무슨 바람은 사절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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