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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Sep 07. 2022

돈마호크, 이건 못 참지!

우연히 알게 된 행복의 맛

  외식의 기준은 명확하다. 집에서 해 먹을 수 없거나, 조리과정이 복잡하거나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재료를 사용하거나 조리시간이 길게 소요되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이다. 명확하지만 다소 까다로울 수 있는 조건이다. 게다가 전제가 되는 조건들은 계속 늘어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 모두가 참석해야 한다'는 외식의 의미인데 주말 아르바이트하는 딸, 주말에 귀가하는 아들 덕에 함께 식사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 고물가 시대인 요즘에는 가격까지 착해야 외식을 할 수 있다는 조건 하나가 더 붙었다. 이것저것 따질 게 많다 보니 외식하는 횟수는 현저히 줄었다.


  '외식을 언제 했더라?' 식구들 각자의 기억 속에서도 외식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그렇다고 사 먹는 음식 없이 오롯이 내 손을 거쳐야 하는 음식만 먹고살 수는 없다. 아니,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끼니 후 다음 끼니를 걱정하고 끼니를 위해 녹초가 되는, 집밥 AI로 살 수는 없다.

 "그래도 나는 집밥이 최고로 맛있는걸!" 딸의 아양끼 섞인 말을 단칼에 자르며 "그런 생각은 하는 게 아니야, 생각 자체를 하지 말어, 버려!"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래서 가끔 외부 음식, 완제품을 사들인다. 전화를 걸어 포장 주문을 한 후, 음식을 찾으러 가는 거다. 배달비를 아끼기 위해서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천둥 번개가 치나 찾으러 간다. 배달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분께는 죄송하지만 배달비라도 아껴야 음식 사 먹는 일에 약간의 양심을 건질 수 있어서다. 사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 흔한 이유식, 죽, 냉동식품 등을 사보지 않았고 치킨이며 탕수육, 햄버거, 피자, 돈가스 등을 사 먹이지 않았다. 거의 모든 음식을 다 끓이고 튀겨서 직접 만들어 먹였다. 정성을 쏟는 일은 당연한 것이었고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여름철 벼 자라듯 쑥쑥 커버렸고 집 밖의 음식을 먹다 보니 간편하면서 자극적인 음식, 인스턴트 음식, 퓨전음식 등 다양한 먹거리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게다가 우리 집 외식 장소라 해봐야 고깃집 아니면 회집이므로 아이들 소원은 생일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칼질을 하며 외식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이 무슨 쌍팔년도 올림픽 성화 봉송하는 소리냐 하겠지만 사실이다. 그래서 한 번은 큰맘 먹고 '**백 스테이크 하우스'라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시그니쳐 메뉴인 토마호크*먹으러 가자며 호기롭게 집을 나선 적이 있었다. 불과 3년 전 일이다.

 "그까짓 거 얼마면 되는데?" 큰소리치면서.


  잘못 들어왔구나, 메뉴판을 보면서 후회했다. 머릿속 계산기로 이리저리 투닥거려봐야 견적 안 나오는 결과만 도출됐다. 할인되는 카드와 할인율을 계산해 보고 1인당 먹을 최소의 양(g)을 가늠해 보고... 그때서야 하등 필요 없이 높였던 목소리 톤을 낮추고 낮은 자세로 아이들에게 소곤거렸다.

 "소고기야 집에서 구워 먹는 게 최고지, 마음껏 먹을 수 있고. 그러니 오늘은 런치세트와 베이비 백 립을 먹자꾸나. 런치 세트에 나오는 스테이크도 소고기란다."

아, 이 얼마나 모냥(모양)빠지는 일인가.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그게 뭔 상관이란 말인가. 내 코가 석자인 것을.

그날 이후 지금까지 패밀리 레스토랑 근처에는 절대 가지 않고 있다.

 

돈마호크 2개씩 진공 포장해 판매한다. 허브를 좀 더 뿌려 바로 굽거나 버터를 살짝 발라 에어프라이기에 넣고 구워도 좋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동네 축산물센터에서 재미있는 '물건'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모양과 형태가 있는 물건이 아닌, '거, 참, 그 녀석 물건이야!' 할 때의 그 물건 말이다. 비닐 겉포장에 선명히 찍혀 있었다, '돈마호크'. 어라? 토마호크도 아니고 돈키호테도 아니고 돈마호크라고?...아, 돈()마호크! 모양새는 도끼 모양의 토마호크와 똑같았다. 구워 먹기 좋게 각종 허브가 뿌려져 있어 별도의 손질이 필요 없겠다. 크기도 제법 커서 한 사람이 하나씩 먹어도 모자람이 없을 듯해 보였다. 무엇보다 구매욕을 자극하는 것은 착한 가격이었다. 100g에 500원, 두 조각에 15,000원 정도다. 그렇다면 30,000원에 우리 가족이 스테이크를 썰게 생긴 것 아닌가. 망설임과 주저함 없이 구매해서 에어 프라이기에 넣고 요리를 했다.


  "맛은 괜찮았느냐고요? 숨 가쁘게 물어 뭐해요,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엄청났어요. 메가 스톤급이었다니까요..."

나에게 누가 돈마호크의 맛이 어땠냐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아이들도 흥분된 어조로 입을 모았다.

 "오호호... 이건 못 참지! 완전 짱!"

 "이건, 결코 참을 수 없는 맛이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아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묵직함, 돈마호크의 맛이란 겉바속촉 육즙 작렬 사근사근 꼬소롬하고** 그 위에 소스를 듬뿍 얹어 먹으면 새큼달큼 달곰하다.*** 아이들이 그토록 원하는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칼질하며 먹는 식사' 기분을 느끼게 하는 음식이기도 해서 우리 집 냉동실에는 마호크가  항상 대기 중이다.


돈마호크 위에 케찹과 허니머스터드, 우스타소스를 뿌려 먹는 우리집 스타일^^


  행복은 흔히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빈도에 있다고들 한다. 행복이란 감정이 잊히기 전, 다른 행복이 찾아오고 자주 찾아온다면 '대체적으로 나는 행복하다'라고 느낄 수 있으니 맞는 말이겠다. 그러나 행복이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찾아온다면 행복의 강도는 크고도 짜릿하다 하겠다. 우연히 발견한 토마호크의 맛이 그렇고 길을 가다 그리운 옛 친구를 만나게 될 때도 그렇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서 밝고 환하게 빛나는 달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달빛을 한 아름 안고 집으로 온 어제도 나는 참 행복했다.



치~즈, 해피스마일... 가족들과 맛있는 식사하시고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 토마호크 ; 과거 인디언들이 사용하던 묵직한 손도끼 이름인 토마호크에서 유래된 스테이크. 소갈비뼈를 따라 뼈와 고기를 길게 도려내 갈비뼈가 망치 손잡이와 흡사하여 '망치 스테이크'라고도 불립니다. 소 한 마리에 7대만 나오는 최고급 부위로 꽃등심과 새우살, 늑간살 세 가지 부위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습니다. <지식백과 참고>


** 사근사근 꼬소롬하다; 씹히는 맛이 연하고 몹시 고소한 맛이 있다.

*** 새큼달큼 달곰하다; 조금 신맛이 나면서 달착지근하며 감칠맛 있게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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