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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Apr 21. 2022

'미역귀'를 아십니까?

미역귀 초장무침, 미역귀 튀김

 '미역귀'라는 것이 있어요.

아는 사람은 알 테지만 모르는 사람은 미역에도 귀가 달렸나 할 거예요. 미역에 귀가 달린 것은 아니고요, 미역에 제가 귀를 달아준 것도 아니고요, '미역의 대가리'라고 엄연히 국어사전에도 설명돼 있는 명칭이다 이겁니다. 이름 참 재미있지요. 이름은 미역''인데 실상은 미역의 '머리'라니 말이지요.


  누군가라고 굳이 밝히지는 않겠지만, 제가 미역귀 좀 주문해 달랬더니 도대체 미역귀가 뭐냐고 묻는 사람이 있더군요. 그것도 먹는 거냐면서요. 물론 먹는 음식이지요. 미역을 먹을 수 있으니 미역에 달려있는 미역귀도 먹을 수 있을 거예요. 돼지국밥에 들어있는 '돼지 귀때기 살'도 먹는 것처럼요. 게다가 효능도 뛰어나니 효자 중의 효자이지요. 칼로리가 낮고 지방 함량이 낮아 다이어트에 적합할 뿐 아니라 식이섬유가 풍부해 콜레스테롤을 저하시켜주고 식품 중의 중금속을 흡착 배출하는 효과가 있답니다. 물론 말린 미역귀는 맥주 안주로 오도독 오도독 씹어먹으면 짭조름한 것이 아주 그만입니다. 말린 미역귀를 물에 불렸다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무쳐 먹으면 상큼한 것이 앙탈 부리는 막내 같다니까요.


  그 누군가가 말이지요,

 "나는 짝귀, 아귀 소리는 들어봤어도 미역귀는 처음 듣는걸..." 하고 대충 농담으로 눙치려고 하는 겁니다. 미역귀에 짝귀, 아귀를 생각해 낸 것이 기특하다는 듯 뿌듯함을 얼굴 가득 장착한 채 말이에요. 아마 <타짜>라는 영화를 보셨으면 전설적인 두 인물, 짝귀와 아귀에 대해 알고 계시겠지요?

영화 <타짜>의 짝귀(좌), 아귀(우)

  참 공교롭게도, 의도했을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이 라이벌 관계인 짝귀와 아귀는 각각 경상도와 전라도를 대표하는 타짜입니다. 짝귀라는 이름을 듣고는 노름하다 귀가 잘렸나 바로 상상이 되지요? 맞아요, 짝귀는 전라도의 아귀에게 망치로 귀가 잘리면서 붙은 이름이에요. 두 도박 귀신들의 성향도 상이합니다. 짝귀에게 복수할 마음이 없냐고 묻자 짝귀는 "개한테 물렸다고 개를 따라 물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라고 대답합니다.

실제 도박할 때 아귀는 수전노처럼 도박을 하는 인물이었다면, 짝귀는 풍류꾼처럼 즐기기 위해 도박을 하는 인물이라고 고니는 평했고 개평도 많이 주어서 아귀는 손 잘린 후에도 하인까지 두면서 잘 살았지만 짝귀는 유랑을 하며 살았다고 하네요.(출처:위키백과)


  여하튼 미역귀를 논할 적에 아무 연관성도 없는 짝귀나 아귀를 떠올리는 일은 없었으면 해요.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모독 수준이라고 말하고 싶어 지니까요. 제가 어렸을 때 엄청 좋아했고 많이 먹었던 음식이니까요.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은 집에서는 말이에요, 식성 좋은 식구들이 많은 집에서는 말이에요, 부지런해야 해요. 제철에 나는 음식재료들을 햇볕 좋은 마당에 말려 보관하거나 된장 고추장에 꾹꾹 눌러 박아 보관해 놔야 추운 겨울에 꺼내어 먹을 수 있거든요. 봄비가 한차례 내릴 때마다 쑥쑥 자라는 고사리와 취는 뜯어와 말려야 하지요. 무나 무청, 호박, 가지 등 나물 종류는 대개 말려야 해요. 미역도 마찬가지였어요. 생미역이 나오는 철에 한 자루씩을 사서 마당에 말리는 거예요. 미역귀를 잡고 미역을 가지런히 훑어서 길게 널어놓으면 점차 꼬들꼬들 해졌다가 종내는 바삭하게 마르게 되지요. 미역은 보관했다가 미역국을 끓이고 여름에는 시원한 냉국도 해 먹는데 싹둑 잘린 미역귀는 어떻게 했을까요?


우리집에 쌓여가던 500g 짜리 대용량 미역귀에요. 그냥 먹기엔 양이 너무 많아요. 이걸 어떻게 해서 먹을까요?


  미역귀의 용처와 행방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잘 들으셔야 해요. 요게 아주 요물이란 말이지요. 잘 말려진 미역귀 하나를 집어 들어요. 커다란 꽃송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검은색 꽃은 본 적이 없으니까 쟈켓에 장식으로 다는 '검정 코르사주' 쯤으로 해둘래요. 꼬불꼬불 커튼 주름처럼 잡힌 미역귀 한 켜 한 켜를 떼어내 바사삭 오물오물 씹어 먹는 거예요. 처음에는 거칠고 짠맛이 있어 움찔할 수도 있지만 침과 섞여 말랑말랑 해지죠. 저의 간식이었어요. 축축하지도 끈적이지도 않아서 들고 다니면서 오래 먹을 수 있었어요.

 

  미역귀를 튀겨 설탕을 적당히 뿌려주면 간식도 되고 반찬도 되지만 주 역할은 아버지 술안주였어요. 비슷한 부류로 다시마 부각, 김부각이 있지만 얘들은 할 일이 많잖아요. 다시마로는 쌈도 싸 먹고 국물 육수 낼 때 주로 쓰이고 김은 굽는 족족 사라지는 인기 반찬이라 부각을 해 먹을 수 없었죠. 그러나 미역귀는 달리 쓸모가 없으니 안주감이 없을 때 튀겨지는 것이었어요. 달콤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죠. 아버지 약주 드실 때 옆에서 와드득 와드득 많이 뺏어 먹었어요.


  그리고 남는 미역귀가 많으니 그건 물에 불렸다 데쳐서 초고추장에 무쳐 먹었어요. '미역귀 초장 무침'이라고 불러야 할 거예요. 미역초무침과 사촌관계쯤이려나요, 맛이 비슷하거든요. 그렇지만 꼬들꼬들함은 당연 앞서는지라 먹는 재미를 주는 음식이었어요.


  그러니까 그 미역귀가 말이지요,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난 거예요. 그 누군가가 좋아하는 오징어를 주문할 때 미역귀도 끼워서 주문을 했지요. 생전 이런 걸 먹어본 적 없는 그 누군가도 맥주 안주로 먹어보니 맛이 꽤 괜찮거든요. 그래서 오징어를 주문할 때마다 함께 주문을 한 겁니다. 미역귀를 찾는 사람이 없는 데다 가격도 저렴하니 포장단위가 무려 500g 씩이에요. 아무리 맥주 안주로 좋다손 어디 미역귀만 먹겠어요? 다른 안주도 먹어야지요.


미역귀를 30분 정도 물에 담가 불린 후, 데친다(위), 미역귀 튀김(아래,좌), 초장무침과 미역귀도시락(아래, 우)


  그러니 이 미역귀가 쌓이는 겁니다. 맥주 안주로도 질려갈 무렵이었지요. 도시락을 한 번씩 싸가는 그 누군가가 이걸 다시마처럼 먹을 수 없냐고 묻더군요. 식감이 비슷하니까요. 왜 아니겠어요, 안될 게 무업니까? 미역귀를 불려 데쳐 먹기 좋게 잘 잘라서 초장과 함께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었죠. 에그머니, 세상에, 이게 뭐라고요, 여기저기서 뺏어 먹었다는 겁니다. 중고등학생 시절도 아니고 어른들이 말이지요. 고기반찬도 아닌데. 다들 다이어트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라 이걸 다시마 정도로 생각하고 다이어트에 좋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암요, 다이어트에도 좋으니 많이 드시라고 싸주고 또 싸주고 있는 중이지요.


  이게 뭐라고, 맛있다고 난리입니다. 이런 서울 촌놈들, 부잣집 도련님들 같으니라고! 몸에 좋은 건 귀신처럼 알아가지고 말이지요.


  미역귀는요, 미역의 포자가 방출되는 생식기관인데요, 바다 밑바닥에 딱 붙어서 거친 바다의 해류를 견디며 미역을 자라게 하고 지켜온 저력의 산물이란 말입니다. 강한 생명력을 가진 것은 좋은 에너지를 전할 것입니다. 1996년 일본 암학회의 발표를 비롯해 지금까지 수많은 논문들은 미역귀에 있는 '후코이단' 성분이 암세포를 자살로 유도한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귀하신 몸으로 신분상승되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분말로 만들어 먹기도 하고, 얼굴 팩으로도 사용한다네요.


  몸에 좋은 음식, 피부에 양보하라는 광고 문구도 있었지만요, 사람도 생긴 대로 살듯 우주 만물은 본디 생긴대로의 것을 최대한 그대로 유지, 보존한 채 취(取)하는 것이  순리라 여기는지라 양보가 안되더라고요. 게다가 갑상선 관련 가족력이 있고 결절을 가지고 사는  저로서는 많이 먹을 필요도 없으니 굳이 갈아먹을 것까지는 없지요. 가끔 생각나면 한 번씩 꺼내 오도독 맥주 안주하고요, 도시락 싸주는 김에 무쳐 먹고 그렇게 할래요. 곶감 빼먹는 맛, 아시잖아요?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요, 자주 보면 정든다잖아요? 자주 보면 질릴 때도 있거든요. 그럴 땐 가끔 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애가 타고 그립고 절절해질지도 모르니까요.

 

  오늘 먹은 미역귀 맛이 그랬어요. 절절한 맛이었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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