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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Jul 31. 2020

친절한 여름 쌈밥

입맛 없을 때는 4인 4색 쌈밥이 최고!

 

4人 4 色


  뽀송뽀송한 감성을 최대한 끌어올려 보아도 좀체 마를 것 같지 않은 축축한 빨래처럼 기분이 누글누글하다. 장마가 오래갈 모양이다.


 날씨도 기분도 회색빛이니 무슨 음식인들 맛이 있을까?

보글보글 찌개는 생각만 해도 등줄기에 땀이 찬다.

생선 굽는 연기는 눅눅한 공기와 만나 낮은 포복으로 온 집안을 기어 다닐 것이다.

나물비빔밥 쓱쓱 비벼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 방법도 있겠으나 나물 네댓 가지는 있어야 비빔밥 체면이 서니 그 품을 팔기가 애초에 꺼려진다.

그러다 보니 간단히 한 그릇으로 끝낼 음식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게다가 이런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기를 구워 먹고야마는 육식 공룡이 셋이나 되니 원기회복 야채를 조달해야 하는 나의 임무는 더욱 막중해진다. 그래서 준비했다, 친절한 야채쌈.

준비하는 사람은 수고로우나 먹는 사람은 이 보다 편할 수 없다.


 사실, 여름철엔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한다. 쌈 싸 먹을 채소가 많으니 쌈 싸 먹을 밖에 도리가 없다.

잎이 좀 넓적하다 싶으면 모두 다 쌈 재료로 쓸 수 있다. 상추, 깻잎, 호박잎, 고춧잎, 알배추, 미나리, 양배추, 쑥갓, 고추냉이잎, 아주까리잎, 참나물, 취나물, 머위잎, 콩잎에 다시마, 미역쌈까지.

때로는 날것으로, 때로는 쪄서

수육이나 구운 고기와 함께 먹으면 안성맞춤이다.



아빠는 초록의 진한 향이 일품인 깻잎쌈

따님은 묵은지로 만든 아삭아삭 김치쌈

아드님은 씹을수록 단맛 가득한 양배추쌈

나는 시골쥐스럽게 구수한 호박잎쌈

4人 4 色, 친절한 여름 쌈밥 대령이요~




 쌈밥에는 쌈장이 생명이다.

쌈장만 맛있어도 8할의 승률이 보장된다. 호박이나 버섯을 넣어 자글자글 강된장 하나 끓여놓으면 밥도 비벼 먹고 맛있을 것이나 오늘은 그냥 쌈장만 만든다. 귀차니즘  주의보에서 경보로 바뀌었다.

된장에 파 마늘 청양고추 깨소금 설탕 고춧가루 참기름 고추장 한 숟갈 넣어 쌈장을 만든다. 여기에 식초 몇 방울 떨어뜨리는 센스를 발휘한다면 세상 맛있는 쌈장 보장이다.

 양배추, 호박잎, 깻잎은 쪄서 준비한다.

씻어서 바로 먹는 채소쌈도 맛있지만 나는 이렇게 한 번 손이 간 쌈 종류가 더 맛있다.

정성과 수고로움이 음식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해가 떨어져 비교적 시원한 저녁 무렵, 채소들을 쪄서 식혀 냉장고에 넣어 놓으면 두고두고 꺼내 먹을 수 있어 그다음부터는 쌈밥 해먹는 게 수월해진다.


 바쁜 아침에 돌돌 말아놓으면 한 입씩 쏙쏙 먹기 편하고, 그냥 건너뛸까 고민되는 점심 때도 야무지게 한 쌈 싸 먹으면 차가운 쌈이 더위를 식히는데 도움이 된다. 저녁 때도 고기를 굽거나 포장해 온 음식이 있다면, 뭐 쌈밥은 두말할 필요 없는 훌륭한 사이드 메뉴가 된다.

나들이 갈 때도 후다닥 쌈밥을 만들어 가면 아주 좋은 요깃거리가 되지 않을까...


 묵은 김치는 씻어서 굳이 양념을 하지 않는다. 잘 익어 살짝 콤콤한 냄새가 밴 김치 맛이 더 매력적이다. 곰삭은 젓갈처럼.

후레이크는 종류가 다양하게 나와 있으므로 취향과 입맛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이 얼마나 친절한 쌈밥이란 말인가? 찾아가는 서비스가 이런 것이다.

 오늘은 김밥 대신 쌈밥을 돌돌 말자.

앞머리 대신 쌈밥을 돌돌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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