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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Nov 13. 2020

누룽지와 젓갈

식욕이 곧 '사는 맛'이고 새로운 맛의 발견도 '사는 맛'이라.

  하늘 천  따 지 가마솥에 누룽지 박박 긁어서, 너는 요만큼, 나는 이만큼~


  친구들 놀려 먹었던 이 고약한 노래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웃음이 나올 일이다. 서당에 다니던 시절도 아니니 천자문을 공부할 일도 외울 일도 없었건만 무슨 심보로, 무슨 연유로 이런 노래를 부르고 다녔을까 싶다.

하늘 천 땅 지... 천자문에 '누룽지,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뜬금없는 일이었다.

그럴 때면 누군가의 손에 분명 누룽지가 쥐어져 있었을 것이다. 옆에서는 한 입 얻어먹을 요량으로 침만 꼴깍꼴깍 삼키며 손에 든 누룽지와 가진 자의 얼굴을 애타는 마음으로 번갈아 쳐다보았을 것이다.


  어릴 적에는 누룽지를 간식으로 많이 먹었다. 우리 집은 가마솥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솥으로 밥을 하였기에 밥을 하면 으레 누룽지가 생겼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진지를 드시면 숭늉으로 입가심을 하셨기 때문에 누룽지를 만들기 위해 뜸을 오래 들이기까지 했다.

밥이 다 되면 몫몫의 밥을 푸고 주걱으로 솥을 쭈~욱 긁으면 노랗고 또 한편은 거무튀튀한 누룽지가 돌돌 말리며 긁어졌다. 후~후~ 입김 불어도 전혀 식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후~후~ 입김 불어가며 누룽지를 채반에 올려놓았다.

그러면 너나없이 한 귀퉁이씩을 뜯어 손에 들고 누룽지를 먹었다. 설탕이라도 한 숟가락 뿌려주는 날이면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감동하곤 했다.

"엄마, 감사합니다!" 목청껏 외치고 밖으로 뛰어나가 자랑을 했을 터였다.

'하늘 천 따 지 가마솥에 누룽지 박박 긁어서~'  분명 이 노래도 불렀을 것이고, 일부러 천천히 뜯어먹으며 친구들 약을 올렸을 거였다.


  그런데 요즘은 집에서 누룽지를 만들 일이 없다. 누룽지는 밥물을 좀 적게 잡아 밥을 하고 뜸을 들이는 과정을 거쳤을 때 생기는 것인데 솥밥을 사용하지 않고 전기밥통을 사용하니 누룽지가 생길 턱이 없다. 맞다! 요즘 전기밥통에는 누룽지 기능 버튼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누룽지 해 먹을 일이 없다는 것도 옛말이 돼 버렸네.


  누룽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부러 밥을 프라이팬에 눌려서 누룽지를 만들기도 하는데 솥밥에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누룽지 맛에 비할 바는 못된다.

그래서 돌솥밥에 밥을 해 내오는 음식점을 가면 밥 보다 누룽지에 마음을 뺏기는 것이다. 누룽지가 정히 먹고 싶다면 시중에 파는 것을 사 먹으면 되는데 나는 음식에 관해서는 꽤나 지조가 있으며 변절(變節)은 하지 않는 바, 사 먹지는 않는다.

파는 제품으로 끓인 누룽지를 우연히 얻어먹었었는데 별 맛이었던 기억이다.


단골 초밥집에 놓여있는 황금빛 왕관 모양의 누룽지가 내 손안에 들어왔다. 벌써 아이들이 한 귀퉁이 뜯어 먹었다(우)

  밥통에 밥을 해서 누룽지 생길 일은 없지만 우리 집에는 누룽지가 항상 있다.

단골가게 사장님 덕분이다.  'ㅇ 초밥’이라는 가게는 가끔 초밥을 사 먹거나(우리 동네 맛집이라 우리 아이들은 이 집 초밥만 먹는다) 회 한 접시를 안주 삼아 간단히 술 한 잔 하는 단골집인데 사장님은 초밥을 만들기 위해 밥을 짓고 생기는 누룽지를 단골손님들에게 공짜로 주신다. 혹은 누룽지를 주실 수 있느냐 물으면 굳이 단골이 아니어도 흔쾌히 주신다.

이 집을 갈 때마다 나는 누가 가져갈까 봐 노심초사하며 항상 누룽지부터 '찜'해 놓는데 욕심을 내는 이유는 밥을 지을 때 다시마를 비롯 사장님 만의 비법을 더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다른 집보다 색깔도 노르스름 예쁘고 맛도 고소하고 구수하다.

어떨 때는 누룽지 때문에 일부러 초밥을 하나 포장해 오기도 한다.


  이 집 누룽지 사랑이 이러하니, 우리 집에 손님이 오시면 나는 으레 이 초밥집에서 대접을 한다. 사장님은 항상 누룽지를 주시기 때문에 손님에게 가져가시라 하면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친정엄마가 오셨을 때도, 시어머님이 오셨을 때도, 다른 친구들이 왔을 때도 이 집에 가서 초밥을 먹고 누룽지를 싸서 보내면 그 어떤 선물보다 좋다고 입을 모은다. 얌체처럼 생색내기 그만이다.


  어제도 나는 누룽지를 얻어왔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듯이, 누룽지가 내 손안에 들어온 것이다.  


명란젓, 창난젓, 오징어젓 3종과 깍두기 파김치 멸치... 아침으로는 환상적인 조합이다.

  누룽지는 아침으로 해 먹기 수월하고 소화도 잘된다. 누룽지는 맛이 슴슴하기 때문에 김치나 젓갈류와 먹으면 안성마춤인데, 비로소 젓갈은 밥도둑 아닌 ‘누룽지 도둑’으로 다시 탄생한다.

시어머님이 젓갈을 세 종류나 사서 보내셨기에 누룽지는 오늘 그 진가를 제대로 발휘한다.


 누룽지를 확보하기 위해 어제 초밥집에서 한 잔까지 했으니 해장을 해야 하는데 누룽지는 해장으로도 그만이다. 이래저래 이 핑계 저 핑계... 오늘은 ‘누룽지 & 젓갈 day’ 일 수밖에 없다.


<누룽지>

     

시작은 같았다.

가마솥에 담겨 밥이 되기 전까지는.     

너는 위로의 삶을 지향했고

흰쌀밥이란 생명으로 살아났다

나는 낮은 곳으로 향했고

깔리어 누른 밥으로 태워졌다     

힘든 시간을 겪어낸 것의 표정에는

밝은 빛이 담기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 번 타오르고 끓어올라

힘든 하루를 산 자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뭉근하고도 나즈막한 위로였다.     

천천히 다시 살아난 것의 얼굴 위로

추억이 소환되고 기억으로 박힌다.   

  

그리고

다시 아래로, 더 아래로 침잠하여

살아가는 맛과 용기를 단전에 모으고

분연히 일어난다, 살아난다.


  게다가 어제 먹다 남은 민어조림까지 더하니 금상첨화다. 누룽지 한 입에 무조림 한 입! 먹다가 울 뻔했다. 전혀 새로운 맛의 조합에 무슨 위대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유레카'를 외쳤다. 이 또한 맞는 궁합이로세! 아침부터 생선조림이라니, 해장한다며 무슨 반찬이냐 했는데 신박하다.


  아직까지도 새로운 것이 있더냐? 새로운 맛이 있더냐? 사는 재미가 있더냐? 나에게 묻는다.

S가 생각이 났다. 얼굴이 왜 이리 반쪽이야? 물으니 식욕이 없어서...라고 말했었지.

S가 또 말했다.

"식욕이 있다는  좋은 거야. 그게 사는 맛이고 재미지. 살려고 먹는 밥이 무슨 맛이겠어요... 맛있게 음식을 먹은  언젠지 모르겠어. 언니, 맛있게 많이 드셔~"


  그래, 오늘 누룽지로 맛있는 식사 했단다.

 

  그나저나, 술 먹은 다음 날에도 한결같은 밥맛을 제공한 누룽지와 젓갈에게, 깍두기와 파김치에게 무한 감사를 전하며, 또한 사는 재미를 일깨워주는 ‘나의 식욕’에게도 심심한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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