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간과 이 시간이 당신에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기를
안녕하세요 그간 <이구십팔>이라는 개인 에세이를 끄적이다가 다시 영화+패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브런치상에서야 워낙 좋은 글들이 많아서 제 글을 비할 곳이 못되지만 주변 지인들이 영화 속 패션의 글을 읽어주시면서 계속 연재했으면 하고 말씀들을 많이 하셔서 다시 준비해보게 되었습니다. 더 많은 분들께 좋은 글과 좋은 정보가 되는 그 날까지 열심히 연재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준비한 영화는 아름다운 파리의 모습과 아직도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수많은 작품들을 탄생시킨 1920년대의 예술인들을 만나볼 수 있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준비했습니다.
첫 장면부터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는 파리의 모습들이 보이며 영화는 시작됩니다. 주인공 길과 이네즈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로 결혼 준비를 앞두고 이네즈의 아버지 사업차 가족들도 함께 파리 여행을 오게 됩니다. 길은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이미 평판이 나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길은 그러한 상업적인 시나리오보다는 낭만적이고 자신의 고유의 감성이 담긴 소설을 쓰는 것이 유일한 꿈입니다. 그래서인지 길은 파리가 이사 오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도시였죠. 이네즈에게 결혼 후 이사 와서 살 것을 제안해보지만 미국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이네즈의 냉정한 대답만 돌아옵니다. 이네즈는 길과 달리 어쩌면 꽤 이성적인 사람입니다. 가슴 설레는 포인트가 다른 부부라고 해야겠습니다. 모네의 아뜰리에에 반하고 콜 포터의 앨범을 앤티크 샵에서 찾으며 설레는 길이 있는 반면, 명품 거리와 온갖 허세에 가득 찬 친구의 남편이자 길의 표현으로 '현학적인 남자' 폴에 설레는 이네즈 이렇게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서 결혼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행 중에 우연히 이네즈의 친구 부부인 캐럴과 폴을 만나게 됩니다. 이후로 네 사람은 함께 파리의 명소들을 함께 관광하면서 폴의 허세 가득 찬 파리 투어가 시작됩니다. 가이드를 동반하는 투어에서도 폴은 자신의 생각이 맞다며 고집까지 부려가며 콧대를 세우고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길은 몇 번이나 태클을 걸어보지만 이네즈의 싸늘한 반응만 돌아올 뿐입니다. 그들은 저녁 식사 후 춤을 추러 가자며 제안하는 폴 부부에 이네즈는 적극 동의 하지만 길은 그저 파리의 낭만적인 밤거리를 걸으며 시간을 보내자고 합니다. 이네즈는 길의 제안을 거절하고 결국 폴 부부를 따르고 길은 홀로 걸어서 호텔을 가겠다고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호텔을 걸어가다가 길을 잃게 되고 잠시 돌계단에 앉아 쉬던 찰나 클래식한 올드 푸조가 다가와서는 사람들이 얼른 타라며 길을 태우고는 알지 못하는 장소로 데리고 가버립니다.
모두가 신나게 파티를 즐기는 이 곳에서 넋이 나간 길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누군가와 통성명을 주고받으며 더 넋이 나가게 됩니다. 그들의 이름은 젤다 그리고 피츠 제럴드라고 소개를 하자 길은 웃으며 이렇게까지 동명이인이 있을 수 있나 갸우뚱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오히려 넋 나간 길을 더 재미있어합니다. 그 이후로 길은 피아노 치며 노래 부르는 콜 포터, 악수를 청하는 피츠제럴드, 신나는 파티는 장 콕토를 위한 자리였고 또 자리를 옮겨서는 달리, 헤밍웨이, 피카소 등을 만나며 1920년대의 예술인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평소에 길이 너무나도 사랑했던 예술인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동시대에 있다는 그 순간을 즐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글을 쓰는 작가라고 길 자신을 소개하고부터 예술인들에게 자신의 작품까지 보여줄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까지 갖게 됩니다. 그 와중에 피카소와 마티스의 뮤즈인 아드리아나를 보게 되고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이후 계속해서 아드리아나와 데이트를 즐기며 그녀에 대한 애정은 더 커지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길은 아드리아나를 위해 귀걸이를 사서 데이트를 하고 그녀에게 선물을 건네게 됩니다.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확인하는 그 시간, 한 마차가 그들 가까이로 오면서 그들을 태워갔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아드리아나가 그렇게도 갈망하던 1890년 벨 에포크의 시대로 가게 됩니다.
벨 에포크 시대의 막심 레스토랑에서 그들은 로트렉, 드가, 고갱까지 만나게 됩니다. 벨 에포크 시대에 완전히 빠져버린 아드리아나는 길에게 현재로 돌아가지 말고 이 시대에 머물러 살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길은 그 순간 한 가지를 느끼게 됩니다. 모두에게 황금시대(Golden Age)는 다 마음속에 존재하며 누구나 현재의 삶이 지루하고 만족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아드리아나에게 길은 말합니다.
만약 당신이 여기에 머문다면 이 시대는 당신의 현재가 될 것이고 얼마 뒤엔 또 다른 시대를 꿈꾸게 될 거예요. 상상 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런 거니까
그렇게 아쉬움 가득 남기고서 길은 현재를 아드리아나는 결국 과거에 머물기로 하고 마지막 인사와 함께 이별합니다. 현재로 돌아온 길에게는 또 다른 이별이 있었습니다. 이네즈와의 골은 더 깊어가고 결국 서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만들게 되며 결혼을 없었던 걸로 하자며 냉정하게 서로를 돌아서게 됩니다. 길은 홀로 멍하니 생각에 빠져있다가 혼자서 세느 강을 따라 산책을 하던 도중 앤티크 샵의 직원을 발견하면서 또 다른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며 길의 새로운 파리의 삶이 시작되고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찾아볼 패션은 바로 1920년대 여성들의 패션입니다. 1920년대는 제1차 세계 이후 많은 것이 변화되었던 시기입니다. 특히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던 때였고 그로 인해 여성들이 참정권을 갖게 되고 일을 하고 경제적 독립이 가능해지던 시기였습니다. 신여성으로서의 면모가 패션에 한껏 드러나기 시작하던 때입니다. 또한 당시에는 재즈시대라고 하여 춤추고 즐기는 가무 문화에 심취해있었고 재즈음악에 맞춰 댄스를 즐기는 여성들의 반짝이는 보석과 찰랑이는 비즈의 동적인 패션 아이템들이 한창 트렌드이던 시절입니다. 당시 이러한 패션으로 인해 생겨난 여성 이미지 중 하나가 바로 플래퍼 (Flapper)입니다.
플래퍼 (Flapper) :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의 사회참여로 인해 생겨난 신여성을 일컫는 말이지만, 그 전형적인 모습은 짧은 치마를 입고 담배를 물고 색소폰 소리에 몸을 흔들어대는 '노는 여자'였다
사회적인 분위기는 그러하였고, 1920년대부터 30년대까지의 예술사조와 양식은 아르데코였습니다. 아르데코는 아르누보와는 달리 공업적 생산 방식을 결합한 기능적이고 고전적인 직선미를 추구하며 강렬한 색채 대비가 특징입니다. 그러한 아르데코적인 영향 또한 당시 패션에서 많이 살펴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직선 라인의 편안하고 활동성 좋은 실루엣을 지닌 드레스와 페미닌 한 장식성이 많고 화려한 패션 아이템들과 액세서리들을 자주 볼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남성과 동등해지려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구조가 변화되면서 페미닌 하면서도 남성적인 직선적인 라인이 겹쳐지며 중성적인 스타일링이 더해지는 시대입니다. 당시 이렇게 패션을 바꿔놓았던 대표적인 디자이너가 바로 가브리엘 샤넬입니다. 편안하고 실용적인 패션을 추구하고 세상에 내놓으면서 많은 여성들의 지지를 받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뿐만 아니라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서도 1920년대의 패션을 잘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주제로 한 글은 오래전에 쓴 적이 있으니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렇듯 1920년대의 패션 트렌드는 현대에도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구찌의 2012년 s/s 컬렉션에서는 찰랑거리며 직선적인 라인의 원피스를 선보이기도 했고,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1920년대의 패션을 선보이면서도 프라다가 영화의 의상 팀으로 작업하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활용할만한 패션 제안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리한나의 스타일링에서도 1920년대의 패션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패션은 돌고 도는 것이기에 1920년대의 아름다움은 잊혀지지 않고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재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골든 에이지는 과연 언제입니까. 왜 우리는 모두 "지금 이 순간"이라고 말하지 못할까요. 길의 말처럼 우리가 꿈꾸는 각자의 골든 에이지로 갈 수 있다고 해도 거기에서 사는 순간 다시 그 현재는 우리에게 지루함을, 다른 골든 에이지의 꿈을 꾸게 할 것입니다. 결국 여행과 같지요. 여기를 떠나 그곳으로 가면 너무나 설레지만 그곳이 여기와 같은 내 삶이 되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그곳을 꿈꾸듯이 공간도 시간도 내 삶에 일부가 되는 순간, 오늘도 내일도 기약 없이 계속 공존할 것이라 예측되는 순간, 애정은 사라질 것입니다. 결국 내가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갈망이자 어쩌면 인간이 가진 욕심 때문일 것입니다.
길의 선택도 아드리아나의 선택도 잘되고 못되고의 선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언젠가는 만족이라는 행복감을 느끼는 삶이 이루어지길 그리고 언젠가는 숨 쉬는 그 공간과 시간이 골든 에이지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당신에게 골든 에이지는 지금 당신이 숨 쉬는 이 땅, 지금 당신 옆에 함께 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