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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Feb 21. 2018

우프(WWOOF) 일기 1-3

FRANCE


Roddy를 보면서 몇 가지 느낀 게 있다. 그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안다는 것 그리고 반복되는 하루를 가볍게 지나치지 않는다는 것. 나는 이곳에서 그와 한집에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그의 행동을 관찰하게 되었다. 하루의 반은 노동을 위해 쓰고 나머지 반은 자유시간을 보낸다. 그럴 때마다 그는 마치 그 누구도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은 진지한 모습으로, 고양이 두 마리를 안고 혹은 오로지 홀로 앞을 멍하니 바라보며 오랜 시간 생각에 잠겨 있다. 낮에도 밤에도 그에겐 중요한 시간처럼 꼭 사색을 한다. 한 번은 그에 대해 물어보니 자신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했다.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일종의 명상 같은 거라고. 내가 혼자 있을 때 찾아오는 고독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도 그는 소위 '멍 때리기'를 해보라고 했다. 평소에 잘 하지 않는 엉뚱한 생각도 좀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그가 별안간 '오늘도 또 다른 아름다운 하루가 시작됐구나!'라고 한마디 툭 내뱉었을 때, 덩달아 나의 기분도  좋아졌다. 이곳 풍경을 보고 있자면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기는 하지만, 직접 말로 하니 더욱 감사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나도 일상이 질리고 별 볼 일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속으로 외쳐본다. '오늘도 또 다른 아름다운 하루가 시작됐구나!'


Peille


 어제의 하루 대부분을 올리브 따기에 전념했는데도 바구니를 가득 채우지 못했다. 그래서 아침을 먹자마자 다시 올리브 나무로 가서 일을 시작했다. 집 근처에 무성히 자라고 있는 주인 없는 올리브 나무에서도 열매를 따오려는데, 고양이 Mango가 나를 따라온다. 뭔가 든든한 친구 한 명이 있는 것 같아서 힘이 났다. 그런데 아무런 장비를 갖추지 않고 하다 보니 나무에서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 신발이 찢어지고 말았다. 일부러 막 신어도 되는 신발을 신고 있었던 터라 슬프지는 않았는데 앞으로 우핑이 한번 더 남아있기에 걱정이 됐다. 중간에 신발을 새로 살만한 데가 있으려나? 우선은 하던 일을 빨리 끝내고 싶어 옷에 있는 모든 주머니에 올리브를 잔뜩 담았다.


 올리브가 가득 든 바구니를 Roddy에게 보여주니, 양동이와 끓인 소금물을 가져다준다. 이곳에 올리브를 잠시 넣어두었다가 칼로 구멍을 몇 번 내주면 저장 준비가 끝난다고 했다. 내가 생 올리브를 두었다가 그 자체로 먹을 수 없냐고 물어보니, 맛이 떫을 거라며 소금물에 발효를 시켜야 제맛이 난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올리브 저장법이구나! 나는 족히 200개는 넘을 올리브를 하나하나 손질했다. 시간이 갈수록 내 손에 올리브 물이 붉게 들었다. 나는 맛볼 수 없겠지만 Roddy와 다음 손님인 그의 아버지와 친구에겐 소중한 식량이 되겠지?



 오늘도 마을 산책은 빼놓을 수 없다. 어제 걸어 올라갔던 방향과 반대로 오르니 출구 쪽에 먼저 다다르게 되었다. 이곳에 산악자전거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도 꽤 많이 마주쳤다. 점심시간 즈음이어서 그런지 몇 군데의 식당도 문을 열었다. 내부가 보이지 않아서 눈으로는 확인을 못했지만 사람들이 식사를 하며 떠드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릇에 팅-하고 부딪히는 식기의 소리가 정답게 느껴졌다. 화창하고 청명한 날씨가 마을에 생동감을 부여해주는 듯하다. 짧은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물 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노래를 틀어놓고 했는데, 노동요의 힘은 크다. 경쾌한 노래와 함께하니 매일 하던 일이 더 재밌게 느껴졌다.  


 Roddy가 저녁을 만들어줬다. 귀리와 야채를 볶고 치즈를 녹여 만든 요리였다. 리조또의 맛과 흡사해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러다 혹시 내일은 내가 요리를 해도 되겠냐고 제안했다. 우리의 마지막 식사이니만큼 그에게 한식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장을 봐야 했는데 마침 내일 그가 모나코로 과외를 하러 가기 때문에 그곳에 있는 대형마트에 데려다줄 수 있다고 했다. 가는 김에 모나코 구경은 덤이라며.



 다음날 이곳 Peille 마을에서 차로 달리니 1시간도 안 걸려 모나코에 도착했다. Roddy가 말하길, 모나코는 이탈리아 귀족 기반으로 세워진 나라라서 현재까지도 부자인 사람들이 많이 산다고 했다. 거리를 5분만 걸어봐도 알 수 있을 거라며 그는 나에게 잘 구경하고 2시간 뒤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어제 잠들기 전에 검색을 해보았을 때 모나코는 바티칸 시티 다음으로 가장 작은 나라라는 것과 F1 그리고 카지노로 유명한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모나코의 첫인상은 '깨끗함' 그리고 왠지 모를 '호화로움'이었다. 보고 들은 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거리의 사람들도 하나같이 우아함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언뜻 보기에 특별히 머물고 싶은 장소가 없었기에 곧장 Carrefour로 가서 불고기 재료를 찾아보았다. 불고기 양념 대신 데리야끼 소스를, 불고기용 고기는 얇게 저민 소고기를, 당면 대신 굵은 쌀국수 면을 찾는 식으로 최대한 비슷한 재료를 찾기 위해 열심히 찾아다녔다. 대파와 버섯, 양파, 당근을 끝으로 장보기 완료! 참기름을 찾을 수 없어서 무척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만족하며 Roddy가 오기를 기다렸다. 다음번에 외국 나갈 때는 참기름을 꼭 챙겨야겠다. 고추장 다음으로 중요한 한식 재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에게 요리를 대접하는 일, 특히나 그것이 한식이라면 마치 내가 국가대표라도 된 마냥 긴장이 되기 마련이었다. 내가 한 요리의 맛에 따라 한식에 대한 인상이 형성될 것이므로, 반드시 잘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Roddy가 한국 음식에 대해 잘 몰라서 부담감이 더 컸지만, 한번 먹고 나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게 바로 한식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나의 최고의 레시피 네이버 블로그를 여러 개 완독 한 뒤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완성된 소스를 샀기 때문에 이미 요리의 절반은 됐다고 볼 수 있지만, 집에 있던 간장과 꿀 그리고 후추를 더 첨가해 맛을 냈다. 야채를 먼저 볶다가 소스를 넣고, 고기를 넣은 후 마지막에 미리 삶아둔 면을 넣어 몇 분 더 끓여냈다. 요리가 완성된 후엔 Roddy의 반응을 살피느라 사진을 찍는 것도 깜박 잊었다.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Amazing이라는 표현을 썼고, 레시피를 꼭 알려주고 가라고 했다. 그리고 접시를 싹싹 비워냈다! 나도 오랜만에 먹어보는 한식이라 배 터지게 먹었다. 사실 적당한 양을 잴 줄 몰라서 거의 4인분을 하고도 재료를 남겼다. 벌써 마지막 밤이라는 게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첫 우프를 잘 끝낸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 첫 우프 호스트로 Roddy를 만난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영어로 소통이 가능했고, 그랬기에 생각을 나눌 수 있었고, 서로에게 배웠으며, 우정을 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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