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고 싶은 몽골7, Khongoryn els

2주간의 몽골여행기(2016)

by gil




홍고린 엘스 사막 일대에 커다란 물웅덩이가 생길 정도로 비가 내렸다. 게르 주인아저씨에 말에 의하면 지금껏 이런 적이 없다는데 이상기후로 인한 일인 듯싶었다. 덕분에 고비 사막의 극한 더위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예기치 못한 일의 연속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 노래 부르고 싶을 때 노래 부르고, 춤추고 싶을 때 춤추고, 마음 가는 대로 몸 가는 대로 하는 자유가 이렇게 달콤한 것이라는 걸 이때 깨달았다. 2016년 7월 8일 씀.




전날 야생 허브가 깔려 있는 언덕 위에서 해돋이를 보자고 다짐했지만 결국 제시간에 눈을 뜨지 못했다. 서경이가 새벽 6시쯤 겨우 깨워서(안 일어나면 뺨을 맞기로 했기에) 멀리서나마 마주한 아침해. 마치 일몰과 같은 빛깔의 하늘이다. 경건함을 느끼고 싶었지만 졸린 눈을 비비기도 싫었다. 실눈으로 보았지만 아주 아름답구나!



오늘 아침접시엔 맛 좋은 요플레가 있었다. 날씨도 좋은데 돗자리에서 먹으면 좋겠다 싶어 밖으로 나왔다. 우린 정말 게르 안을 안 좋아하나 봐. 기회만 있으면 뛰쳐나오니. 게르는 그저 취침용에 불과했다. 아침을 먹으면 곧 짐을 싸고 떠나야 하는 것을 이젠 몸으로 알기에, 자연스럽게 배낭을 꾸리고 떠날 준비를 마쳤다.



얼마 가지 않아 인근 마을에 도착했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고비 사막을 오를 예정이어서 마실 것을 충분히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조그만 슈퍼에서 냉장 보관이 되어 있던 음료수를 2개씩 샀다. 몽골 시골지역에서 얼음은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고, 냉수조차 구하기 힘들었기에 반가운 찬 음료수. 무조건 첫 입은 벌컥벌컥이다! 그다음부터 아껴 마셔야지.



쉬어가는 타이밍에 우리는 푸르공이 선사하는 그늘로 모여든다. 그리고 서로를 꼬옥 껴안는다. 행복하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 이 공간. 주님께 아무 걱정 없이 보낼 2주를 선물로 받은 느낌이다. 고비 사막 중 남쪽에 위치한 '홍고린 엘스(Khongoryn els)'까지는 꽤 오래가야 했다. 심심함을 달래려 다 같이 노래를 부르다가 마땅한 곡이 사라질 때즈음 고등학교 예배시간에 주로 불렀던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월은 야속하게도 우리의 기억 속 가사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았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신나는 노래였는데 다음 가사가 기억나지 않아서 부르다 말았다. 긴 이동 시간에 차에서 깼다가 잠들기를 반복. 그런데 갑자기 번뜩 미처 떠오르지 않던 가사가 떠올라서 거의 유레카급으로 외쳤더니 그다음 가사를 서경이가 기억해줬다. 다시 신명 나게 노래를 부르며 무료함을 쫓아내었다.



사막 남부로 이동할수록 기온차가 확연히 느껴졌다. 몽골 중부 지역보다 이 남부 지역이 훨씬 덥고 뜨거웠다. 건조함이 매력이었던 몽골 바람이 어느새 습기를 머금으면서부터 갑자기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숨통을 조여 오는 더위에 우리는 게르 안에서 말린 생선들처럼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그 누구도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을 정도로 순식간에 지쳐버렸다. 오늘의 게르 풍경을 찍은 사진이 하나도 안 남아있는 것을 보면 말 다했지. 가만히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 더위 속에서 정말 안 되겠다 싶어 세희와 주인 가족분들이 계시는 게르로 갔다. 딱히 더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그 안에 있는 가족들이랑 고양이랑 놀다 보면 금방 저녁이 돼서 시원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열기로 인해 아지랑이가 끓는 이 사막 지대에 고양이가 어떻게 살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개보다 훨씬 깨끗했고 게르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생활하는 듯했다. 더위에 풀이 죽은 우리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주인아저씨께서 강가로 수영을 하러 갈 거냐고 물어보셨다. 우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결정할 수 있었다. 네!! 어서 가요!!!


이 게르에 살고 있는 몽골인 가족들과 에르카네 일행, 디마네 일행이 모두 가려면 차가 2대 이상이 필요했다. 처음엔 우리 푸르공 짐칸에 디마랑 에르카가 탔는데 너무 불편해 보여서 우리가 그곳에 탄다고 했는데 극구 사양한다. 이때 우리 6명 말고도 영국인 커플도 같이 탔는데 왠지 더러운 차 안이 부끄러웠다. 마치 우리 집에 갑자기 손님이 들이닥친 기분이랄까. 그래도 오랜만에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한창 브렉시트로 시끄러울 때라 데이비드에게 영국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찬성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그렇게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치 우리나라 해안에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하면 다른 나라에서 더욱 떠들썩하게 보도하고 우려하는 것처럼, 이 일도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자국민은 오히려 덤덤하다.



차로 10분 정도 이동하니 사막의 신비로운 풍광이 눈 앞에 놓여있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보드라운 모래 결이 발목을 스친다. 사막을 진정으로 목도하니 몽골이 가진 색채는 측정이 불가하다는 것을 느꼈다. 때론 중앙아시아답기도, 동남아시아스럽기도, 아프리카 같기도. 하늘색과 모래색. 두 개의 색만이 아득하게 뻗어 있을 뿐이다.



계획에 없던 강가에서의 수영. 뜻밖의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이번 몽골 여행의 정수는 사막 투어였기에 물을 만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이 강가는 최근에 비가 와서 생긴 것으로,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주인아저씨께서도 처음이라고 하셨고, 디마 역시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고 했다. (아저씨들이 더 신나 보였던 건 기분 탓이겠지?) 수영복도 없고, 사람이 들어가도 되는 물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뛰어들었다. 부드럽게 일렁이는 물결이 나를 감싸안았다. 영국 언니 카린은 물 안에 이상한 해초가 많다며 질겁하시고 발만 몇 번 담그다 나가셨다. 그런데 나는 이런 곳이 너무 신기하고 무엇보다 시원해서 얼굴까지 담가 버렸다. 서경이랑 세희를 빠뜨리기도 하고, 해초를 던지기도 하고, 잠수 시합도 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나게 놀았다. 특히 주인아저씨께서 물속에서 건넨 보드카는 잊지 못한다. 만국공통으로 물과 술은 떼려야 뗄 수 없구나.. 감사했지만 이 땡볕에 물 안에서 음주를 하는 건 두려웠기에 먹는 척하고 슬쩍 물에다 뱉었다. 내가 물을 오염시켰어...



수영하고 돌아와서는 태양빛과 자연바람에 몸을 말렸다. 돗자리에서 저녁으로 몽골식 파스타를 먹고 주인아저씨가 키우시는 낙타를 타기로 했다. 여행 오기 전에 알아본 바로는 몽골의 '쌍봉낙타'는 메르스와 전혀 상관이 없어 안전하다고 한다. 그간 낙타를 눈으로는 많이 봐왔는데 드디어 직접 타 본다! 긴 옷과 운동화를 신고, 요상하리만큼 뾰족한 혹을 지닌 낙타에게로. 한 손으로는 뒷사람의 낙타 끈을 나머지 한 손으로는 나의 낙타를 잡는 식으로 일렬 서기를 했다. 내 뒷사람은 서경이었는데, 서경이 낙타가 자꾸 나에게 들이대서 너무 무서웠다. 특히 서경이 낙타 눈에 이물질이 많았는데 속으로 닦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그런데 정말로 내 생각을 읽은 양 나의 옷에 눈을 연신 비벼대는 게 아닌가.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큰 소리를 내면 낙타가 놀란다고 하여 조용히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이 낙타를 신경 쓰느라 언제 그만 탈까, 내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했다. 이제 좀 돌아가나 싶었는데 갑자기 저 앞에 차들이 멈춰 서서 우리를 찍었다. 다큐멘터리 촬영인 듯싶었는데 '고비 날다'라는 글씨를 읽었다. 어딘가 방송됐으려나? 결국 돌아왔을 땐 낙타의 눈이 맑고 영롱해졌다. 이물질은 모두 내 옷에. 그 옷은 몽골 사막 한복판에 버려졌다는 소문이 있다..



바람에 부딪히는 모래 소리가 마치 노래하는 것처럼 들려 '노래하는 모래 언덕'이라고 불리는 홍고린 엘스의 사막 언덕을 올랐다! 언덕 초입에서는 다 같이 파이팅을 외치며 힘차게 출발했지만, 오늘의 고된 여정에 이미 체력이 바닥난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패기를 잃고 말았다. 홍고린 엘스는 처음에 두 발로 오를지언정 나중엔 네 발로 기어 올라갈 정도로 경사진, 만만치 않은 모래사막이었다. 한국에서 등산 경험이 꽤 있었지만 여긴 그곳에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푹푹 빠지는 발을 억지로 들어내며 올라가는 도중에 너무 지쳐서 몇 번이나 주저앉고,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사실 처음에 선두로 올랐다가 결국 낙오자 수준으로 뒤처진 나와 서경이.



우리가 하도 안 오니까 정상에 1등으로 도착한 세희가 소리를 지르며 우리를 불렀다. 신기한 게 거리가 엄청 먼데도 소리가 잘 들린다. 소리를 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그런가? 문과생은 과학적 신비에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그런데 세희가 정상에 올라 만난 사람들마다 우리 얘기를 했나 보다. 정상을 찍고 내려오던 잭 아저씨네 가족과 한국인 분들 모두 세희가 우릴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빨리 가보라고 했다. 둘째 날 게르에서 만났던 잭 아저씨 가족을 다시 만나 정말 반가웠는데.. 그들의 응원에 힘입어 다시 영차영차! 는 무슨. 또 금방 주저앉았다. 나의 저질체력이 여기서 드러나는구나. 세희는 여전사의 체력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는 완주를 위해 계속 나아가야 했다. 결국 에르카와 디마가 기다리다 못해 나와 서경이를 데리러 내려왔다. 에르카가 내 손을 잡고 위로 끌어 주었는데 인간 엘리베이터 그 자체였다. 그런데 갑자기 서경이를 잡아주던 디마와 경쟁이 붙어서 우리를 무자비하게 당기기 시작했다. 아 우린 천천히 가도 되는데!! 그래도 그들 덕에 금방 정상에 도착했다. 오르는 여정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탓일까, 생각보다 감탄이 나오진 않았다. 또 언제 내려갈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고 말았다. 우리 때문에 다시 밑으로 내려와 준 에르카와 디마에게 미안해서 애써 감탄하는 척 했던 것 같다. 숨 한번 돌리고 꼭대기에서 저 멀리까지 펼쳐진 고비 사막을 찬찬히 바라보니 일말의 성취감이 들기도 했다.



오늘 하루 정말 많은 일들을 했다. 무척이나 피곤했지만 우리 한국인 동생들과 디마, 에르카 모두 모여 보드카를 마시기로 했다. 요즘 유행하는 술 게임과 함께 보드카 파티를 벌이고 결국 새벽 네시가 이르러서 잠에 들었다. 몽골에서 보드카 경험은 매번 새로웠다. 특히 그들의 주도는 독특하기 짝이 없다. 잔 하나로 돌아가면서 마신다. 다음 사람에게 술을 주기 위해서는 잔을 얼른 비워야한다. 아주 높은 도수 때문인지 술잔이 두 바퀴만 돌아도 얼큰하게 취한 기분이 들더라. 세상이 팽글팽글 빠르게 도는, 소주와는 다른, 또 다른 느낌의 취기였다. 부모님이 이 글을 보시면 내 등짝을 때리실지도 몰라!











애증의 낙타(부들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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