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고 싶은 몽골9, Ongi 폐허

2주간의 몽골 여행기(2016)

by gil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형용할 수 없는 풍경을 보았다. 견고한 강을 따라 펼쳐진 푸른 들판과 고풍스러운 건물이 조화를 이루며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어느 방향으로 보아도 찬란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공기 중에는 상쾌한 향기마저 희미하게 감도는 것 같았다. 푸른 창공엔 말간 구름이 유유히 떠다니고, 강렬하지만 뜨겁지 않은 햇빛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했다. 굽이진 강 건너 너른 들판에 덩그러니 자라고 있는 커다란 나무. 소설책에서 묘사됐을 법한, 내가 꿈꾸던 세상이 현실로 다가왔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영혼이 충만해지는 느낌이었다. 저 나무 밑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오늘만이라곤 할 수 없지만 오늘만큼은(!) 평생 잊지 못할 날로 기억될 것이다. 2016년 7월 10일.




푸르공을 타고 고비 사막의 북쪽으로 한참을 달렸다. 그러자 어느새 또 다른 느낌의 사막에 당도해있었다. 노오란 빛깔의 모래사막과 파란 하늘의 조화는 실로 아름다웠다. 이것 또한 몽골이 가진 매력의 다양한 색채 중 하나일까. 서걱서걱한 질감의 모래를 힘차게 밟아가며 언덕을 향해 오르고, 또 올랐다. 홍고린 엘스와는 달리 이 사막은 질퍽하고 좀 더 굵은 모래를 가지고 있었다.



차에서 졸다가, 수다 떨다가, 멍 때리기를 반복하니 오늘의 게르 캠프에 도착했다. 그런데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형용할 수 없는 풍경을 보았다. 가슴이 터질듯한 감각을 뒤로한 채 친구들에게 어서 와서 여기 좀 보라고 외쳤다. 견고한 강을 따라 펼쳐진 푸른 들판과 고풍스러운 건물이 조화를 이루며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어느 방향으로 보아도 찬란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공기 중에는 상쾌한 향기마저 희미하게 감도는 것 같았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살아 숨 쉬는 자연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곳에서는 잠시도 낮잠을 자거나 게으름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 푸른 창공엔 말간 구름이 유유히 떠다니고, 강렬하지만 뜨겁지 않은 햇빛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했다.



게르 안팎을 구석구석 살피고 강가 언저리에 홀로 앉아 풍경을 감상했다. 굽이진 강 건너 너른 들판에 덩그러니 자라고 있는 커다란 나무. 소설책에서 묘사됐을 법한, 내가 꿈꾸던 세상이 현실로 다가왔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영혼이 충만해지는 느낌이었다. 저 나무 밑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행복한 생각에 잠겨 있을 때쯤 혼자 보기 아까운 이 풍경을 보러 온 여행자 무리를 만났다. 호주에서 온 할머니들과 몽골인 가이드였다. 난 감격에 젖어 몽골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다. 호주 할머니들도 공감을 하시며 나처럼 이곳을 꽤나 마음에 들어하셨다. 몽골인 가이드는 내가 입을 떼자마자 한국인인 것을 알아보셨다. 생김새와 말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보인다고 하셨다. 신기함과 더불어 사실 나는 그도 한국인인 줄 알았다. 내가 지금껏 봐온 몽골인의 느낌은 영 없었고, 익숙한 느낌의 인상이셨기 때문이다. 그는 호탕한 웃음과 함께 이런 얘기를 종종 들었다고 했다. 역시 사람 보는 눈은 다 비슷해. 대화의 심도가 깊어질 때 즈음 서경이와 세희 그리고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 구사하는 또 다른 몽골 청년까지 다가와 함께 하게 되었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이 몽골 청년도 몽골인의 느낌보다는 일본인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몽골 가이드가 일본인이지 않냐고 거의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물어봤다.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인종에 대한 것으로 흘러갔고, 몽골 청년은 몽골인,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에스키모, 인디언, 터키족 등이 모두 동계 혈족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조상의 씨가 같기 때문에 몽고반점을 지니고 태어나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호주 할머니들은 이 사실을 굉장히 흥미로워했고, 나 역시 인디언과 터키족까지 같은 혈족이라는 게 무척 놀라웠다. 몽골 청년의 뛰어난 영어 실력과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보면서 언어의 위대함도 느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느끼고 배우는 것이 참 많다.



식당은 중세 유럽의 오래된 성과 같은 모습이었다. 안에 들어서자 가볍게 먹을거리를 팔고 있었다. 우리는 주전부리를 사 들고 식탁에 둘러앉아서 어제 배운 모쉬크와 또 다른 몽골식 카드게임을 하고 놀았다. 이때 디마와 에르카의 짓궂음이 절정에 달해서 우리도 어떻게 앙갚음(?)을 할까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장난은 장난으로 응수해야 하는 법!



강을 꼭 한번 건너보고 싶었는데 디마와 에르카가 가자고 해서 정말 기뻤다. 물살을 헤집고 커다란 나무 밑에 뭉툭한 돌을 의자 삼아 앉았다. 게르에 살고 있는 꼬마 아이도 우리를 따라왔다. 아이와 카드로 숫자 세기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도 배웠다. 닉 호요르 고롱.. 3까지만 알면 됐다. 디마와 에르카는 무언가를 시킬 때 꼭 고롱을 외친다. 나중엔 우리가 알아서 외쳤다. 여기 고롱 비어요! 이곳에서도 한국 게임과 몽골 게임을 번갈아 가면서 하고 놀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다가 디마가 하늘을 보더니 곧 먹구름이 다가온다며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반신반의했지만 정말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찬 소나기가 내렸다.



식당으로 돌아와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은 한시라도 가만히 있고 싶지 않은 좋은 날이었기 때문에 요리도 돕고 싶었다. 결과적으로는 옆에서 요리를 하고 있던 네덜란드 가족의 가이드, 엠마를 도왔지만. 이 가족은 베지테리언이라 콩으로 만든 고기와 감자로 요리를 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중간중간에 냄비 속 고기가 잘 익도록 휘휘 저었다. 가까이서 지켜보니 엠마와 에르카는 요리를 정말 능숙하게 잘 한다. 다들 한창 저녁 준비에 몰두해 있었는데 별안간 창문을 때리는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스콜처럼 내리더니 오래가지 않아 그쳤다. 아까 디마가 구름으로 날씨를 예측한 것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강가에서 계속 놀고 있었으면 쉽사리 다시 못 건너 올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조금 섬찟하기도 했다.



비가 그친 후 밖으로 나간 네덜란드 청년이 우리를 부르길래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세상에. 오늘 몇 번이나 감탄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비가 갠 하늘에 쌍무지개가 떴다. 난생처음 보는 두 개의 무지개에 나는 어린아이가 된 것 마냥 방방 뛰었다. 몽골은 마법의 땅이 맞는 듯하다. 말도 안 돼.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만큼 마음에 감동을 안겨준 쌍무지개였다.



감탄스러운 경치에 흥분한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저녁을 먹었다. 소고기여서 또 한 번 행복했다. 저녁을 먹고 오늘의 투어 장소인 'Ongi 폐허'로 가기 전에 그림 일기장과 데미안을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오늘의 명장면을 기록해두고 책을 읽고 싶었다. 여행의 순간에서 책을 읽는 행위는 일상을 들여오는 것처럼 느껴져서 좋다.



'Ongi 폐허'엔 게르에서부터 15분 정도 걸어가니 도착할 수 있었다. 옛 사원 터와 어워가 있어서 세 바퀴를 돌고 기도를 했다. 기도의 순간엔 그저 감사하다는 말만 반복한 것 같다. 진실로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고 감사했기에. 우리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 휩싸여 우리만의 이야기를 했다. 서경이는 갑자기 핸드폰에 저장해뒀던 발라드 노래를 듣다가 감성에 젖어서 울었다. 우리에게 고맙다며.. 그러자 세희도 울고 나도 눈물이 찔끔 났다. 서경이는 원래 잘 안 우는데 슬픈 거보다는 좋은 거 볼 때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랬더니 세희가 좋을 때 우는 거 좋다고 말했는데 정말 동감이었다. 좋을 때 흘리는 눈물은 왠지 차갑게 식지 않을 것 같은데. 셋 다 울컥하는 마음을 쉽게 주체하지 못하고 한창 감성에 젖어드려는데, 서경이가 한 마디 한다.

-나 그래서 무한도전 젝스키스 편 볼 때 되게 울었어

-.....?(공감 실패)

세희랑 나는 실소했다. 갑자기 나오던 눈물이 쏙.(ㅋㅋㅋㅋㅋ)

그렇게 우리는 눈물마저 유쾌하게 떠나보내고, 서로의 소중함을 또 한 번 느낀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희와 서경이가 아니었다면 이만큼 행복하고 하루 종일 웃음이 끊이지 않았을까 정말 모르겠다. 눈 앞의 풍경도 풍경인데, 사실은 친구들로 인해 몽골이 더 좋게 기억될 것임에 틀림없다. 돌무리에 걸터앉아서 일분일초가 행복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 여행도 점점 끝을 향해 가고 있음을 느껴서 벌써부터 매우 슬펐다. 과분한 행복이 이제 좀 살결로 와 닿는 데 말이다.


게르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한 한적한 풍경
나무야 사랑해
알고보니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라는 뜻
가나 아빠에게 알려드린 하트 손, 저희 마음이에요


꿈같았던 하루가 저물어 간다. 하루의 마무리는 역시, 서경이 세희 그리고 디마 에르카와 함께 한다. 아마도 우리는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각자의 사연 담긴 이야기까지, 나누고 또 나눌 것이다. 오늘만이라곤 할 수 없지만 오늘만큼은(!) 평생 잊지 못할 날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