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몽골 여행기(2016)
눈 앞의 찬란한 풍경도 풍경이지만, 몽골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들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 또한 얼마나 즐겁고 매력적인 일인지 모른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전달되는 진심은 마음으로 통한다. 오늘 머무를 게르에선 나담 축제를 맞이해 놀러 온 수많은 몽골인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워낙 땅이 넓다 보니 사람 냄새를 맡기 힘들었는데, 그래서 더 반가웠나 보다. 이들을 보고 있자니 우리 가족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오늘 밤엔 몽골의 예술적인 경치보다는 사람들이 머릿속에 진하게 남아 잠 못 이룰 것 같다. 2016년 7월 11일.
이른 아침부터 오색찬란한 날씨를 뽐내는 몽골. 날씨는 사람의 기분을 완전히 좌지우지 하나보다. 어제 밤새 놀고 마시고 떠드느라 몇 시간 못 잤지만 기분은 아주 산뜻했다. 원래 아침을 잘 먹지 않는 나의 습관처럼 이곳에서도 자연스레 아침 식사를 스킵하고, 눈 뜨자마자 바로 출발 준비를 한다. 내가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은 1. 바깥 풍경 살피기 2. 마주치는 누군가가 있다면 굿모닝 인사 3. 병째로 물 꿀꺽꿀꺽 마시기 4. 가방과 침낭 정리 5. 물티슈 세안 6. 출발 준비 끝이다.
자연인 그 자체의 모습이지만 푸르공이 멈추는 순간마다 내려서 사진을 찍었다. 텔레토비 동산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맑고 밝은 날씨 때문!
윈도우 시작화면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림 같이 선명한 하늘과 통통한 뭉게구름. 물가에 비친 하늘의 모습에 감탄하며 오늘이 또 한 번 최고의 하루로 갱신되는 날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에 휩싸였다. 사진은 순도 100% 아이폰 사진인데, 아무리 화질이 좋은 편이라고 해도 이렇게 또렷하게 잘 담길 정도면, 실제론 얼마나 쾌청한 날씨였는지 알 수 있다.
식당에 도착하자 우리 셋은 에르카가 친 장난이 떠올라서 어떻게 복수하면 좋을까 작전을 짰다. 어젯밤 에르카는 우리에게 디마가 곧 떠나야 하니까 어서 작별인사를 하라며, 갑작스러운 회사의 지시라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한다고 했다. 대신 여자 가이드가 오고, 그 가이드는 아주 엄격하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처음엔 우리 모두 그 말을 믿고 놀라서 안 가면 안되느냐고, 이렇게 보낼 수 없다고 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을 보고 거짓말임을 눈치챘고, 분했다. 또 뻥이라니!
요리는 아직 준비 중이니 작전을 짤 시간은 충분하다. 이때 서경이가 게르에 핸드폰을 두고 왔다고 말하는 게 어떻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거다! 곧바로 우리는 연기에 돌입했다. 세희랑 나는 괜히 심각한 표정으로 서경이에게 잘 찾아보라고 말했고, 갑자기 정색하고 무게를 잡았다. 우리가 자리에 앉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에르카와 디마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다가왔다. (됐어!) 곧바로 이실직고(하는 척)하자 게르 주인에게 연락해보겠다며 바로 핸드폰을 꺼내 드는 에르카. 이때 조금 당황했지만 티 내지 않고 침착했다.
-우리 다시 돌아가야 하는 거지..? 먼 길 왔는데 어떡하면 좋아. 미안해.
-아니? 우선 전화해보고. 찾으면 국제택배로 보내줄 수 있으니까 걱정 마.
에르카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전화를 하려 하자 우리는 뻥인데~~라고 말하며 꺄르르 웃었다. 약간 어깨 흔들며 춤춘 거 같기도 한데. 그들 때문에 우리가 더 얄궂어졌다.
요리가 완성되길 기다리며 오늘부터 열리는 몽골의 민속 스포츠 축제인 '나담(Nadam)' 생중계를 보기 위해 TV를 켰다. 나담축제는 몽골인들에게 있어서 명절과 같이 온 가족이 모여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시기다. 매년 7월 11일 정도에 이틀에서 삼 일간 열린다. 우연히 나담 시기와 맞아떨어진 우리는 경기를 직접 보고 싶었지만 방송을 보니 TV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나 아빠가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며 보시는 모습이 설날에 큰아빠의 모습과 똑 닮아 있었다. 서경이랑 함께 찍은 사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인데, 저것 역시 명절에 찍은 가족사진같이 너무 보기 좋다. (그냥 아빠랑 딸 아니냐.)
오늘 같은 날씨엔 도저히 안에 못 있겠다 싶어서 밖으로 나왔다. 어쩜 이렇게 하늘도, 공기도, 바람마저도 청명할 수 있을까! 이때 나는 자유로운 여행자의 기분을 맘껏 느낄 수 있었다. 세희와 풍광을 느긋하게 바라보다가 식당으로 들어가니 요리가 완성돼 있었다! 양고기 볶음국수인데, 삼삼한 간에 양고기를 얹은 맛이었다.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지.
작은 마트에 들르면 꼭 빼놓지 않고 구매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물티슈, 컵라면, 과일. 물티슈는 물이 귀한 몽골에서 생존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고, 컵라면은 양고기로 고통받는 우리들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육식 위주의 몽골 음식이 부담스러울 때나 조금 출출할 땐 과일만 한 게 없다! 복숭아나 자두 같은 과일을 씻어서 한 입씩 나눠 먹을 때 참 즐겁고 정겹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니 바로 옆쪽에 몽골 국기가 아닌 다른 깃발이 걸려 있는 건물이 있었다. 디마에게 저건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한 정당의 깃발이었고, 저곳은 당원들이 모이는 당 사무실이었다. 이때 흥미로웠던 건 디마가 설명해줄 때 '한국의 한나라당, 민주당 같은 곳 있잖아. 그런 거예요.'라고 말한 것! 그가 한국에 일하러 간 때는 2002년도니까 당명이 바뀌기 한참 전이지. 그는 한국의 뉴스를 보면 양당의 이름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왔다고 했다. 디마의 훌륭한 한국말에 박수를.
시원한 우유를 마시며 폭포로 출발! 몽골 우유는 한국의 우유에 비해 더 연하고 부드럽다. 우유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반가운 맛이었다.
가는 길에 야크 무리를 만나고, 폭포의 하류 부근에서 잠시 멈춰 섰다. 계곡이 흙탕물 색깔이어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울퉁불퉁한 길을 한참이나 가다가 멈춘 거라 차에 내려서 스트레칭하고, 경치를 감상했다.
오늘 묵을 게르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소낙비가 세차게 내리는 바람에 폭포는 내일 보러 가기로 했다. 오늘은 전통 양요리인 허르헉을 먹기로! 우리의 일등 요리사 에르카가 조리 과정부터 하나하나 보여준다며 구경하러 오라고 했다.
한쪽에서는 허르헉을, 다른 한쪽에서는 호쇼르를 만들고 있었다. 나담 축제 기간에는 대가족이 한데 모여 호쇼르를 나누어 먹는다고 한다. 이곳도 며느리들이 요리를 도맡아 한다. 쭈그려 앉아서 같은 모양의 만두를 튀겨내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명절날 우리 집안 여자들이 겹쳐 보였다. 어딘가 짠했지. 우리가 먹을 허르헉은 양고기와 감자, 양배추, 당근 등과 구운 돌을 함께 넣어 익히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몽골식 바비큐라고도 할 수 있는데, 냄새가 일품이었다.
눈 앞이 예술인 이곳에서는 실내에 있기가 너무 아깝다. 우리는 바깥에 있을 틈만 주어진다면 돗자리를 충실히 폈다. 아까 마트에서 산 초콜릿 와인도 꺼내어 허르헉과 함께 냠냠. 역시 양고기는 입에도 못 대고 거의 채소만 먹었지만 마음이 뻥 뚫리는 시원한 풍경과 사랑스러운 친구들이 함께라서 맛있었다. 초콜릿 와인도 너무나 훌륭해! 이 와인 역시 디마와 에르카도 같이 나눠 먹었다. 어느샌가부터 서로의 술친구가 되어주는 우리. 오늘 밤에는 몽골인 가족들과 함께 어울려 놀기로 했다. 푸르공 안에서 보드카를 마시다가, 야외에서 벌어지는 춤판에 껴서 신나게 춤을 췄다. 사진을 못 찍은 게 아쉽지만 오늘 하루 또한 절대 잊지 못할, 그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