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몽골 여행기(2016)
현재 극히 일부만 남아 있다는 'Erdenezuu' 사원을 둘러보면서 그 어떤 나라도 굴곡진 역사를 지니지 않은 나라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갈등과 차별, 그리고 편견은 피할 수 없는 존재인 것 같기도 하다.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희생되었을 수많은 사람들. 비극의 참상을 마주하니 경건한 마음을 지니지 않을 수 없었다. 2016년 7월 12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제 못 간 'Orkhon' 폭포까지 말을 타고 가기로 했다. 이 게르 캠프엔 폭포가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그간의 더위를 식히는 찬 바람이 불어왔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때 이른 날씨가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쌀쌀한 기운에 몸이 부르르 떨리려던 찰나, 반대쪽에서 따뜻한 햇살이 비쳐온다. 폭포까지 말을 타고 가는 길은 염소와 양에게 천국일까 싶은 푸르른 초원이었다. 저 멀리까지 펼쳐진 초원을 바라보며 말을 타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했다. 종종 이곳에서 눈을 뜨고 산책을 할 수 있다면 삶의 질이 얼마나 드높아질지 상상해보기도 했다. 아름답구나 정말.
말을 타고 한 15분 정도 가니 'Orkon' 폭포에 당도했다. 생각한 것보다 큰 규모의 폭포였다. 두 개의 세찬 물줄기를 보고 있으니 내 마음까지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번잡한 생각일랑 모두 접어두고 현재를 오롯하게 즐길 수 있었다. 현재 눈 앞의 풍경, 감정에 집중하면서. 아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경치였다. 이 순간엔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경탄과 감사함으로 가득 찼다.
내일은 울란바타르로 돌아가는 일정밖에 없으니 오늘이 사실상 투어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래서 오늘도 차가 멈출 때마다 무조건 내려서 바깥 경치를 즐기기로. 이동 중에도 절대 잠들지 않고 창 밖의 풍경을 두 눈으로 꼬옥 붙잡아 두려고 했다. 마침 날씨도 따라 주었다. 눈부시게 찬란한 날씨여! 이번엔 가나, 디마, 에르카와 단체사진도 찍었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리곤 그들에게 그 사진을 선물했더니, 차에 저렇게 꽂아두었다. 평생 이 푸르공의 장식으로 있었으면!
내리는 곳마다 자연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자연 앞에서 고백하건대 나의 친구들은 불편한 것이 많은데도 불평 한 번 하지 않는 예쁜 아이들이다.
오늘의 게르 캠프에 도착! 주위를 둘러보니 그동안 갔던 게르 캠프 중에 시설이 가장 좋았고 현대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와이파이가 빵빵했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와이파이를 연결해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작스레, 오랜만에 문명으로 돌아가면 끝이 없을 거 같아서 15분만 보자고 서로 약속했다. 하지만 15분은 그렇게 30분이 되고 1시간이 넘어갔다는 후문이..(!)
호쇼르는 몽골 음식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양도 튀기니까 맛있나 보다. 특유의 양 냄새가 거의 안 나고 조금 식은 군만두를 먹는 것 같은 식감이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크기가 거의 얼굴만 한 호쇼르는 두 개만 먹어도 든든하다.
식당 앞에 놓인 정자에서 가이드북을 보고, 일기를 쓰고, 카드 게임을 했다. 그리고 정말 웃겼던 순간을 잊지 말자며 하나 둘 적기 시작했다. 적으면서도 또 한 번 재밌었다. 이제는 느리게 흘러가는 몽골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면 좋은지 아는 것 같다. 그런데 어째 오늘따라 디마가 조용하다. 이상하다 싶었는데 에르카가 한 마디 일러준다. 여기 디마의 옛 여자친구가 살았던 동네라 조용히 있는 거라고.^^
조금 선선해질 저녁 무렵에 오늘의 공식 일정인 'Erdenezuu(에르데네조)' 사원에 갔다. 우리의 게르 캠프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바로 있었다. 몽골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사원이라고 한다. 수많은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관광지로, 이곳으로 가족끼리 전통 복장인 'Del(델)'을 입고 나들이를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도 몽골의 전통복을 입은 가족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각 건물 내에는 사찰 그림과 전시품들이 있었고 가이드분들이 구역마다 친절히 설명을 해주셨다. 설명에 따르면, 에르데네 조 사원은 16세기에 지어졌고 최초의 불교수도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과거의 공산주의(구 소련)가 부디즘을 배척해서 그때 이곳에 존재했던 수많은 사찰과 게르를 처참히 파괴했고 현재 남은 곳은 과거에 비하면 아주 일부라고 한다. 탄압 속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사원이 보존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라이 라마의 초상화를 보았을 때 불교의 숨결이 전해지는 듯, 경건한 마음으로 이곳을 천천히 돌았다.
같이 온 일행들, 심지어 디마까지도 손톱만큼의 흥미 없는 표정으로 내내 지루해하길래 나랑 세희는 우리 둘이 알아서 보고 오겠다고 하고 에르데네 조 사원 가장 안쪽에 있는 'Lavrin sum(라브링 숨)'까지 걸어갔다. 매일 아침 11시 즈음 법회가 열린다고 하는데, 우리가 갔을 때 꼬마 승려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기도를 하는 분들이 계셔서 조용히 보고 나왔다.
사원 밖의 즐비한 기념품점, 식당가 앞에 독수리 한 마리가 있었다. 아이들도 신기한 듯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후르훙 베비들이다!
나도 한 번 용기 내어 독수리 뒤에 서보았다. 생각보다 순하고(?) 귀여워서 좋았다.
에르카가 눈을 감아보라더니 우리에게 엽서 한 장씩을 주었다. 너희가 많이 못 본 몽골의 밤하늘은 이렇다며, 엽서 속 사진으로 아쉬움을 달래라고 하였다. 센스쟁이 에르카는 마지막 날 이렇게 뜻깊은 선물을 안겨주었다.
아, 여기서 에르카와의 각별한 인연을 소개하자면 에르카 덕분에 몽골에서 나의 외삼촌과 만나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이 이야기를. 우선 나의 외삼촌은 올해 2월부터 일 때문에 몽골에서 살게 되셨다. 그래서 몽골에 가기 전에 연락을 시도해봤으나 끝내 닿지 못해서 무척 아쉬웠다. 그렇게 나는 마음을 접고 몽골로 여행을 왔고, 투어 둘째 날 밥을 먹다가 디마에게 지나가는 말로 외삼촌이 이곳에 살고 계신데 연락이 안 되어서 만나진 못하고 돌아갈 거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마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정보인 삼촌의 직장 이름도 덧붙였더랬지. 그런데 디마가 듣더니 잠깐 기다려보라며 에르카에게 갔다. (이때까지 에르카는 그저 다른 팀의 가이드일 뿐이었다.) 에르카가 다가오더니 갑자기 자기가 우리 삼촌을 찾아줄 수 있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에르카의 한국인 여자친구가 삼촌의 직장에서 인턴을 하고 있던 것. 심지어 그 인턴언니는 삼촌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 통화 수신이 가능한 지역에 들어서자마자 에르카가 여자친구분과 연락을 해서 삼촌의 번호를 알아내고, 도로 한복판에서 나는 삼촌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삼촌과 감격의 통화를 하고, 투어가 끝나면 하루 정도 삼촌집에 친구들과 함께 머물기로 했다. 가볍게 던진 말이 현실로 이뤄질 줄이야. 정말이지 이 여행은 시작부터 드라마틱했다. 괜히 이곳을 말만 하면 다 이뤄지는 마법의 땅이라고 명명하는 게 아니다.
저녁은 토마토 해산물 수프 같은 맛이 나는 국이었다. 너무나 훌륭한 맛이었지만 한국식 식단에 길들여진 천상 한국인은 반찬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김과 함께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쇠고기 고추장을 싹싹 비빈 밥을 김에 말아서 한 입 먹고 저 국물을 들이켜면.. 그야말로 황홀한 맛의 탄생이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소화를 시키던 중 영국과 독일에서 온 두 청년이 인사를 건네서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배낭 하나 메고 자유여행을 한다고 했다. 말 그대로 진짜 배낭여행이었다. 나는 놀라서 물었다.
-뭐?! 몽골에서는 완전한 자유여행이 불가능한데 도대체 어떻게 돌아다니는 거야?
-버스 아니면 히치하이킹으로.
-말도 안 돼. 그게 가능해?
-응, 우리는 그렇게 여기까지 왔는걸. 사진 보여줄까?
-어, 당장 보여줘! 우리도 보여줄게.
나는 그들의 패기와 대담함에 정말 놀랐다. 발길 닿는 대로 다니는 여행길 이여선지 그들은 우리가 가는 유명한 관광 명소보다는 마을의 소소한 구경거리를 즐기며 돌아다니는 듯했다. 이 대단한 두 청년은 오늘 밤에는 언덕으로 올라가 별을 구경할 거라고 했다. 비가 안 와서 우리도 같이 갈 수 있었으면!
오늘의 하루는 이렇게 저문다. 쫓기는 것 하나 없이 그저 흐르는 대로 몸과 마음을 맡기고 현재를 즐긴다. 아무래도 마지막 밤인 만큼 기나긴 밤을 우리 친구들과 대화를 하며 지새워야겠다. 뭐, 매일 그래 왔지만. 마침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오늘도 별을 보긴 글렀지만 아쉽진 않다. 왜냐면 찰나의 순간순간조차 너무나 아름답고 행복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