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고 싶은 몽골12, Ulaanbaatar

2주간의 몽골 여행기(2016)

by gil





투어가 끝이 났다는 생각 때문인지, 9일 만에 다시 만난 울란바타르의 모습은 한없이 우울했다. 여행의 끝자락이라니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오감으로 전해지는 모든 게 차갑고 답답하고 아쉬웠다. 하지만 드디어 외삼촌 가족을 만나자 식어버린 마음에 다시 온기를 더할 수 있었다. 낯선 이국 땅에서 아늑한 보금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2016년 7월 13일.




전날 아쉽다고 늦게 잔 탓에 모두가 느지막이 눈을 떴다. 부리나케 준비하고 이젠 정말 Go to the UB! 빗길을 뚫고 한참을 달리다가(출발하자마자 잠들어서 얼마나 간지 정확힌 모르겠지만) 어느 게르에 멈춰 섰다. 이유를 알고 보니 가나 아와의 지인 분이 사시는 곳이라 안부를 전하기 위해 들린 거란다. 이 게르에 사는 몽골 가족분들이 우리를 보러 차로 와주셨다. 그리고는 과자와 젤리를 먹으라고 내어 주셔서 감사히 받았다. 달콤한 잠에서 막 깬 터라 비몽사몽이긴 했지만, 그분들과 눈을 맞추고 진심이 담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오늘의 점심을 해결할 식당. 그곳에선 김치를 잔뜩 넣은 양고기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이제 양이라면 진절머리가 난 나는(양아 정말 미안해!) 김치만 쏙 골라 먹고 말았다.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는 내가 이런 행동을 하다니.



드디어 UB로 돌아왔다. 장시간의 이동 때문인지 몸이 이곳저곳 쑤셨다. 내심 빨리 내려서 팔다리 쭉 뻗고 푹 쉬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이런 마음이 든 내가 미웠다. 지금이 얼마나 행복하고 아까운 순간인데. 홍고르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 스탭과 투어비 정산을 하고, 전화기를 빌려 삼촌과 통화를 했다. 아, 이제 정말 끝이구나. 삼촌과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홍고르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오기 전에 한국인 동생들과 작별인사를 하는데 동생들이 울음을 터뜨린다. 꾹 참고 있었던 나도, 왠지 모르게 담담한 척을 하고 싶어서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동생들에 이어 서경이와 세희까지도 우는 모습을 보니 나도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아무래도 같이 마지막 저녁식사라도 함께해야겠다 싶어서 우리도 일정을 바꾸고, 동생들도 몽골에서의 마지막 날 저녁을 우리와 보내기로 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와서 처음으로 우리 6명이서만 걸었다. 디마 없이. 근처 식당가를 찾기 위해 걷는데, 아까 오면서 본 버거킹을 찾을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런데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 때문일까. 울란바타르의 이미지는 어딘가 우중충하고 우울한 구석이 있다. 마스크를 끼고 다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딘가 공기마저 탁했다.



햄버거가 가장 먹고 싶었던 우리는 버거킹을 찾아 헤매었지만, 경찰분들께 여쭤본 결과 걸어가기엔 조금 멀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는 수 없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한국식당으로 되돌아 갔다! 나담 기간이라 문을 닫은 무수한 식당들 사이에 한식당은 간판 불이 환히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역시 근면성실의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Seoul Garden'이라는 식당 이름이 참 반가웠다. 우리는 각자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자며 푸짐하게 시켰다. 닭볶음탕, 부대찌개, 닭강정, 김밥, 여러 반찬들.. 뱃속이 가득 차서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을 정도로 음식을 먹은 게 얼마만이야. 원래도 한식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황홀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동생들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쉬다가 다시 시내 구경을 하겠다고 해서 정말로 작별을 하고, 우리는 삼촌집에 방문하기 전에 뭐라도 사갈까 하고 국영 백화점에 장을 보러 갔다. 몽골의 보드카가 싸고 맛 좋다는 것을 직접 배우고 나니 마트에 가자마자 보드카부터 눈에 보였다. 분명 2주 전까지만 해도 내 인생에 '보드카'가 들어올 줄 꿈에도 몰랐는데. 투어 첫날에 장 볼 때랑 느낌이 너무 다르잖아! 이곳에서 경험한 가장 신비한 일 중에 하나다. 현대인의 간편식 대표 주자인 시리얼도 타지에서 보니 더욱 맛있어 보였다. 우리는 케이크를 하나 샀다. 맛이 어떨진 모르겠지만 빵이나 케이크류가 대체적으로 참 저렴해서 놀라웠다.



삼촌과 만나 기쁨의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라탔다. 삼촌은 이동하면서 시내 투어를 잠깐 시켜주셨다. 그러면서 울란바타르 광장 한번 둘러보고 기념사진도 찍고 오라고 내려 주셔서 애들이랑 달려가 보았다. 이곳은 1921년 7월에 수흐바타르(Sukhbaatar)가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장소로,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불리다가 6년 전 칭기즈칸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때 나담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는데, 매년 각종 국가 행사가 개최된다고 한다. 정부청사와 국회의사당, 오페라극장 등이 한데 모여 있었다.



삼촌집은 '자이승(Zaisan)' 내에 위치한 서울 로열 카운티였다. 에르카가 말하길, 자이승은 한국의 강남이라고 하였다. 내가 봐도 그간 몽골에서 보았던 여느 동네와는 다르게 확실히 발전돼 있었다. 삼촌집의 이름이 서울 로열 카운티인 이유는 한국 건설사가 지어서 그렇다고 한다. 어쩐지 집의 외관이나 구조가 한국 아파트와 굉장히 흡사했다. 우리는 오래간만에 욕조가 있는 화장실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다 같이 씻었다. 깨끗이 씻고 난 후에는 삼촌과 외숙모가 준비해주신 음식을 아이들과 함께 먹었다. 몽골에서 삼촌 가족을 만날 줄 전혀 예상도 못했는데, 이렇게 한 식탁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니 마음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가족이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무언가가 있나 보다. 삼촌과 외숙모께 우리의 생생한 여행 이야기도 들려 드리고, 그간 못 나눈 근황 이야기도 했다. 장원이랑 장우는 누나들이 와서 아주 신이 났는지 벌써 내일 아침 일찍 깨워주겠다고 한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절로 웃음이 피어올랐다. 사실 내일은 디마와 만나 울란바타르 근처를 함께 돌아다니며 마지막 날을 보내기로 약속했지만, 삼촌 가족과 여기에 좀 더 머물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이렇게 잠깐 보고 가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정말 컸다. 혹시나 해서 대한항공에 문의해보니 비행기 연장이 무료로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3일 더 연장해서 이곳에 있기로 했다. 이렇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은 아주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