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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Oct 16. 2019

베를린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가장 완벽한 방법

GERMANY


Freiheit(프라이하이트).

이 단어만큼 베를린을 완벽하게 표상하는 단어가 또 있을까? 자유로움. 내가 베를린과 사랑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이전에 그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것을 감각했기 때문이다. 런던도, 파리도, 여느 도시도 내게 완벽한 자유로움은 주지 못했는데. 처음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부터 와 닿았던 자유의 공기가 나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간 아무리 여행이 좋아도 6개월 이상은 한국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고,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 싶어 그럴 수 없을 거라 여겼던 내게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일 년만 살아보고 싶다, 베를린에!


A week in Berlin


 나는 베를린에서 2주가량 지냈지만, 만일 일주일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보내야 할까 고민해보았다. 날것 그대로의 베를린을 잘 경험할 수 있는 공간 위주로 '베를린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가장 완벽한 방법'을 소개한다.


Montag, Monday


1. 이스트사이드 갤러리(East-Side Gallery)


독일의 수도라는 사실 말고도 베를린에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가 매우 많다. 그중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찾는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서독과 동독을 가르던 회색 장벽이 무너지면서, 118명의 아티스트가 이곳을 세상에서 가장 긴 야외 갤러리로 탈바꿈시켰다. 그 유명한 '형제의 키스' 그림도 장벽 길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화려한 색채의 벽화가 베를린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어떤 색깔을 지닌 사람이든 포용할 줄 아는 도시.

   

2. 오버바움 다리(Oberbaumbrücke)


베를린은 베네치아보다 많은 다리가 있다고 한다. 다양한 시대에 지어진 거의 천 개의 다리가 있는데 그중 프리드리히스하인 구와 크로이츠베르크 구를 서로 연결하는 오버바움 다리는 가장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갔다고 한다. 과연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건축적 요소가 돋보인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뾰족한 두 개의 성탑이 인상적이다. 다리 위로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지하철 1호선이 운행되어 계속해서 지나가는 노란 전철을 볼 수 있다. 파란 여름의 하늘과 노란색 전철이 교차하는 모습은 영롱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드넓게 펼쳐진 슈프레 강의 경치는 이 다리가 주는 덤!

 

3. 로우 젤란데(RAW-Gelände)


폐공장을 개조한 문화공간인 로우 젤란데는 베를린의 힙한 매력을 가장 잘 담아냈다고 본다. 벽면을 가득 채운 그라피티와 그림을 끊임없이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시즌에 따라 다양한 전시, 마켓, 공연이 열린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스케이트장과 오픈 에어 시네마. 특히 여름날에 방문하기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버바움 다리 북쪽 방향으로 걸으면 15분 안으로 닿을 수 있다.


4. 바데쉬프(Badeschif)

슈프레 강 위의 수영장을 만들어 놓아 강 한가운데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바데쉬프. 에메랄드 물빛이 짙푸른 강물과 대비가 되어 더욱 신비스럽게 보인다. 수영을 하지 않더라도, 해변 콘셉트의 바에서 모래를 밟으며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이다. 


5. 발터 바(Bar Walther)

바데쉬프에서 가벼운 맥주 한잔을 했다면,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 지역의 레스토랑과 바를 들려보길 권한다. 골목길마다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은 식당이 줄줄이 들어서 있다. 지구촌을 한데 모아 놓은 것 같이 식당 종류가 다양하니 선택은 오로지 당신의 몫! 그중 발터 바에선 DJ가 현란한 비트의 음악을 들려주었고, 문 앞에는 개성 넘치는 베를리너들이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틈을 헤집고 들어선 바 내부는 오렌지 빛의 아늑함으로 가득했다. 음악과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분 좋은 소음을 들으며, 독특한 이름의 칵테일을 마셔보길.


Dienstag, Tuesday


1. 베를린 필하모니(Berliner Philharmonie)


매주 화요일 오후 1시에는 베를린 필하모니의 무료 공연이 열린다. 주로 오케스트라 공연이지만, 때로는 타악기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콘서트이기 때문에 좋은 자리에 앉고 싶다면 1시간 정도 미리 가는 것을 추천한다. 200번 버스를 타면 베를린 필하모니 건물 입구 앞에 내릴 수 있다. 나는 여기서 웃음을 금치 못할 경험을 했는데, 50분의 공연 동안 졸다가 코를 고는 사람을 여럿 봤다. 클래식 연주가 달콤한 자장가처럼 들린 탓이겠지. (베를린 필하모니 공식 홈페이지: https://www.berliner-philharmoniker.de/en/concerts/lunch-concerts/)


2. 티어가르텐(Tier garten)


베를린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은 바로 공원이다. 큰 규모의 공원뿐 아니라, 주택가의 중간중간 들어선 작은 공원의 수도 상당하다. 도시 전체 면적에서 숲과 녹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20%에 달할 정도로, 푸르고 건강한 베를린이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티어가르텐 공원 역시 베를린의 허파 같은 존재다. 고개를 들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나무들 덕에 곧장 도심 속 자연을 맛볼 수 있다. 워낙 넓어서 깊숙이 들어간다면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참, 이곳은 베를린 내에서 유일하게 나체 선탠을 허용한 공원이기도 하다.


3. 체오 베를린(C/O Berlin)


이른 오후에는 클래식 공연을, 한낮에는 피크닉을 즐겼다면 남은 오후는 예술작품을 감상해보자. 체오 베를린은 사진과 비주얼 아트를 주로 선보이는 갤러리이다. 베를린 동물원 역 바로 아래 대로변에 위치해 있기에 번잡스러울 수 있지만, 전시관에 들어서는 순간 고요함이 온몸을 감싸 안는다. 새하얀 외관처럼 내부도 굉장히 깔끔하고 모던하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는 'Food for the eyes'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라는 주제를 사진과 영상으로 다채롭게 담아냈다. 입장료는 10유로이고, 국제학생증이 있을 시 할인이 되니 참고. (C/O Berlin 공식 홈페이지: https://www.co-berlin.org/)


4. 몽키바(Monkey Bar)


베를린의 핫플레이스 몽키바. 동물원을 내려다보며 술을 마시다 보면 원숭이를 볼 수 있어서 몽키바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곳은 일찍 가지 않으면 도무지 빈자리를 찾을 수 없다. 오후 7시쯤 찾아간 나 역시 한 바퀴를 돌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건물 1층에 있던 스티커 사진기에서 기념샷을 찍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지만, 한 번쯤 경험해봐야 하는 장소가 아닐까 싶다.


Mittwoch, Wednesday


1. 가라지(Garage)

베를린에 왔으면 빈티지 쇼핑은 필수다. 하지만 자칫하면 실패 확률이 높으니, 우선 '좋은' 빈티지샵을 찾아야 한다. 베를린에서 가 본 빈티지샵 중 가장 훌륭했던 곳이 바로 가라지이다. 베를리너린 Theresia가 추천해줘서 알게 된 이곳은 실로 엄청난 규모이다. 보다가 현기증이 날 수도 있을 정도로 빈티지 아이템의 가짓수가 많다. 수요일에 방문할 것을 권하는 이유는 해피아워가 있기 때문이다.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30% 할인 행사를 진행한다. 사실 기본 가격이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보통 5~10유로선) 할인 없이 구매해도 만족스럽다. 이곳의 큰 장점은 모든 옷을 입어볼 수 있다는 것.


2. 템펠호프 공항(Flughafen Berlin-Tempelhof)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진 데에 한몫한 곳, 바로 템펠호프 공항이다. 공항이지만 결코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는 볼 수 없다. 이곳은 공항으로서의 기능은 더 이상 하지 않고, 베를린에서 가장 넓은 공원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 들판에서 동쪽 방향으로는 조깅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윈드서핑을 하고. 서쪽 방향으로는 삼삼오오 모여 바비큐 파티를 하고, 축구를 하고, 연을 날리고. 가히 어떤 야외활동이든 가능케하는 공원이라 말할 수 있다. 나와 은희도 작은 돗자리와 로제 와인 그리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챙겨 우리만의 소풍을 즐겼다. 넉넉한 공간 덕에 노래를 흥얼거리고 춤을 춰도 주변을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너무나 좋았다.


3. 노이쾰른(Neukölln)

베를린에서 우범지대라고 불리는 노이쾰른은 동시에 예술가들의 쉼터다. 그 어느 지역보다도 베를린만의 섹시한 에너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카페 겸 갤러리로 운영되는 공간이 거리마다 있고, 담벼락의 그라피티가 만연하다. 노이쾰른에서 반드시 맛봐야 할 것은 바로 되너 케밥(Döner Kebap)! 터키 이민자가 운영하는 케밥집이 많아 오리지널 케밥을 먹을 수 있다. S반 Sonnenallee 역에 내리면 보이는 그 어떤 케밥집에 들어가도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바삭한 빵 안에 고기와 야채, 각종 소스가 어우러져 입안 가득 퍼지는 풍성한 맛. 곁들이는 감자튀김과 마요네즈 조합까지. 베를린에서의 내 소울푸드는 곧 케밥이다. 짭짤한 음식을 먹고 나니 단 게 당긴다면, '프라흐트베르크(Prachtwerk)'에 가 보자. 낮에는 카페, 밤에는 바로 운영되는 이 공간은 웬만한 커피와 술, 식사 메뉴를 두루 판매하고 있다. 라이브 공연도 종종 열리니 시간대를 잘 맞춘다면 아름다운 밤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Donnerstag, Thursday


1. 알렉산더플라츠(Alexander Platz)

알렉산더플라츠는 마치 홍대 같았다. 누군가에겐 거리공연의 무대가 되고, 다른 누군가에겐 친구를 기다리는 약속 장소가 되기도 하는. 큰 광장을 중심으로 상점가와 레스토랑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베를린의 상징인 TV타워가 머리 위로 우뚝 솟아 있어, 시내 한복판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이곳에서는 쇼핑을 즐기며 기념품을 사고, 맛집 탐방하기 딱 좋다.


2. 로젠탈러플라츠(Rosentaler Platz)

알렉산더플라츠의 번잡함에 혼이 쏙 빠졌다면, U반을 타고 두 정거장을 가 보자. 그럼 베를린 최고의 멋쟁이 동네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감각이 돋보이는 편집샵부터, 예술서적을 주로 다루는 독립서점, 줄을 서서 먹는 젤라토 가게, KW 미술관까지. 없는 게 없다! 하루가 모자라도록 즐길 수 있는 공간 투성이다. 그중 소다 북스(Soda Books)에는 매일 가서 읽고 싶은, 흥미로운 책과 잡지가 넘친다. 로젠탈러플라츠의 히든 플레이스는 바로 클레르켄스 발룸(Clärchens Ballroom) 식당 건물! 천장이 높고 창문이 길쭉한 건물 안에는 예쁜 식당도 있지만, 계단을 오르면 세련된 무도회장이 있다. 그곳에서는 마침 살사 강습이 열리고 있었다. 남녀가 서로를 조심스레 안고, 스텝을 밟고 있는 모습이 시간을 한없이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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