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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Oct 11. 2019

베를린의 Fête de la Musique

GERMANY


베를린 거리를 걷다 보면 각종 공연이나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벽면부터 기둥까지 종이가 붙어있을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어디든지 말이다. 어느 날 무심코 본 포스터에서 눈에 띄는 점이 하나 있었다. 보통 각기 다른 명칭이 쓰여 있곤 하는데, 그 벽에는 디자인만 달랐다 뿐이지 모두 같은 날에 열리는 한 축제를 홍보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Fête de la Musique(페트 드 라 뮤지크)'. 이건 왠지 놓치면 안 되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찾아보니 대박이었다! Fête de la Musique는 1982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음악 축제로, 점차 전 세계로 퍼져나가 매년 하지인 6월 21일 하루 동안 전 세계에서 음악의 향연이 펼쳐진다. 각국의 도시 전체가 무대가 되어 다양한 장르의 음악 행사가 열리는 것이다. 아마추어든 프로든 관계없이 공연이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서나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연주할 수 있고, 기존의 음악축제들과는 달리 무료로 진행이 된다. 과연 파리 못지않게 예술로 가득 찬 도시, 베를린의 Fête de la Musique는 어떨까?


Fête de la Musique


 은희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포스터에서 보았던 Badehaus로 향하던 도중, 창밖으로 거리 한가운데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고 우리는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2년 전 스위스 베른에서도 기차역에 당도하기 직전에 범상치 않아 보이는 공터를 보고, 이름도 모른 채 오로지 감으로만 찾아갔던 경험이 있다. 그곳에서 수많은 현지인들, 시끌벅적한 분위기, 대단했던 밴드 공연의 기억은 절대 잊을 수 없다.(Cool in Bern 편 참고: https://brunch.co.kr/@rlfqhrud1995/110) 다행히 이번에는 찾아가기 쉽게 내가 전에 가본 적이 있던 장소였다. 베를린에서의 첫 카우치서핑 호스트였던 Christophe가 추천해준 Holzmarkt(홀쯔마르크트). 다양한 예술행사와 공연, 마켓이 열리는 이곳은 요즘 베를리너들이 즐겨 찾는 장소란다. 평일에 가보니 한산했지만, 슈프레 강변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기 딱 좋았다.

 페트 드 라 뮤지크 날에 다시 찾아온 이곳은 힙한 공간답게 오픈 에어 라이브 공연이 진행 중이었다. 코스프레 수준의 화려한 복장을 한 베를리너들이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니, 우리도 대낮부터 흥이 최고조로 올랐다. 어서 생맥주 한잔을 사들고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축제의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매우 인상 깊었던 점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베를린 답게 저마다의 희망을 담은 피켓을 들고 있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종이가 한편에 수북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한국과 북한의 국기를 그려 넣고 'Our wish is unification'이라고 적고 싶었다. 하지만 펜이 없었고, 주위에 쓰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빌리려고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나도 내년에는 피켓까지 준비해 오리라. 날씨마저 너무나 완벽해서, 나의 첫 페트 드 라 뮤지크는 시작부터 아주 성공적이었다.

 실로 도시의 모든 공간이 무대가 되었다. 거리 곳곳마다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분단위로 새로운 공연의 현장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작은 옷가게 앞에서 난데없이 DJ 공연이 열리거나, 놀이터에서 오케스트라가 합주를 하거나, 공원에서 난타 공연이 펼쳐지거나. 말 그대로 24시간 내내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우리는 크로이츠베르크, 프리드리히샤인, 프렌츨라우어 베르크 등 베를린 시내를 돌며 축제의 분위기를 한껏 누렸다. 모두가 이날의 주인공이 되어 음악 안에 한데 어우러지던 그 모습은, 두고두고 곱씹고 싶은 아름다운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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