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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Oct 22. 2019

베를리너와 함께 살기, 카우치 서핑

GERMANY

베를린의 속살은 과연 무슨 색을 지니고 있을까? 한 겹 한 겹 벗겨낼 때마다 전에는 본 적 없던, 새로운 색을 내비칠 것만 같다. 나는 이 도시의 진면모를 확인하고 싶어 카우치서핑을 이용해 베를린 현지인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들과 며칠씩 함께 살면서 삶의 결을 살펴보고, 배우려고. 아무렴 내 나이 또래의 호스트를 구하는 것이 무언가를 나누기에 좋을 것 같아서 20대의 젊은 베를리너(혹은 베를리너린)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크리스토프, 테레지아, 카타리나를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내게 이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삶의 갖가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주일간 세 친구들의 집을 떠돌며 한 가지 깨달음이 머릿속에 콕 박혔다. 소박하지만 제멋대로 꾸려 나가는 인생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


Couchsurfing in Berlin


1. 보현이의 다정한 배웅을 받고 프랑크푸르트 남역으로 향했다. 나는 한 시간 뒤 슈투트가르트(Stuttgart)에서 올라오는 기차를 타고, 하노버(Hanover)를 거쳐, 베를린(Berlin)에 닿을 것이다. 총 다섯 시간의 여정. 종착지가 하나면 마음 편히 잘 수 있겠지만, 도시와 도시 사이 정차하는 역이 꽤 된다. 짐을 분실하거나 목적지를 놓치지 않을까 조금 예민한 상태로 기차에 올랐다. 나의 여행에서는 언제나 그랬듯 집채만한 캐리어와 잡다한 물건으로 가득 찬 에코백을 품에 안았다. 역을 지나칠 때마다 6인실 기차 칸의 자리는 채워졌다 비워졌다를 반복했다. 해가 쏟아지던 차창의 색이 이내 오렌지빛으로 물들고, 베를린의 상징인 TV타워가 보일 즈음엔 푸른빛으로 변했다. 그 순간 나는 베를린에 도착했음을 실감했다. 이제 곧 역에 내리면 크리스토프의 집을 찾아가야 했다.


오스트크로이츠(Ostkreuz)역 근방으로는 어둠이 짙게 깔린 거리를 밝히는 레스토랑의 불빛이 어마어마했다. 거리의 모든 식당이 맛집인 것처럼 사람들로 넘쳐났고, 복작거렸다. 홍대의 걷고 싶은 거리를 걷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모두가 가벼운 차림으로 식사를 즐기고 있는 틈을 비집고 캐리어를 질질 끌었다. 인도 상태가 좋지 못해 바퀴가 토해내는 소리가 소음처럼 들렸다. 괜히 부끄러워 빨리 이 골목길을 벗어나고 싶은데, 큰 돌에 묻힌 바퀴는 제자리에서 구르며 나올 생각을 안 한다. 크리스토프의 집 앞에 도착해 그의 이름을 찾아 벨을 눌렀다. 대부분의 독일식 아파트에는 문 옆에 벨마다 각기 다른 거주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대부분 하나의 이름이 쓰여 있었지만, 간혹 여럿의 이름이 적혀 있기도 했다. 조금 기다리자 그의 룸메이트 캐서린이 나를 맞이했다. 똑 부러지는 인상의 그녀는 크리스토프가 저녁 약속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 방 안에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주인 없는 방에 앉자 적막한 공기가 느껴진다. 소파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벽면에 크리스토프의 사진과 그 밑에 놓인 물품들을 보니, 아직 만나보지 못한 그를 조금은 예상할 수 있어 웃음이 났다.


긴장이 풀리자 피로가 쏟아져 소파에 몸을 기대었는데, 그 순간 키가 190cm는 되어 보이는 남자가 황급히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할로 크리스토프! 내 머릿속에 있었던 전형적인 독일 남자의 이미지를 한 크리스토프는 참으로 선한 사람이었다. 사실 그는 카우치서핑 어플에서 게스트들에게 평판이 굉장히 좋았다. 그를 수식하던 온갖 칭찬은, 금세 수긍이 되었다. 예의 바르고 친절한 이 청년은 낯선 사람을 대하는 일에 매우 능숙해 보였다. 아마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스쳐갔기 때문이겠지. 그는 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도와주면서도, 또 그것이 과도한 친절이 되어 부담으로 변하지 않도록 적당히 끊을 줄도 알았다. 현재 크리스토프는 커피 회사에서 일하다가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일의 양은 늘었지만, 전보다 훨씬 재밌다고 했다. 아침마다 자유로운 복장으로 출근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굉장히 부러웠다.


'My city'를 보여주겠다던 크리스토프는 나를 노이쾰른 지역과 크로이츠 베르크 지역으로 데려갔다. 노이쾰른의 갤러리와 비어가르텐이 돼버린 동네 놀이터는 베를린 사람들의 숨결이 묻어있었다. 크로이츠 베르크의 바데쉬프를 갈 때는 스쿠터를 이용했다. 어플로 쉽게 빌릴 수 있는 공공 스쿠터에 헬멧과 위생용 두건도 들어있어 놀라웠다. 오버바움 다리를 스쿠터로 달리자 정말 내가 이 도시의 일부가 된 기분이 들어 쾌감이 곱절로 느껴졌다. 사실 이번 여행은 특별한 계획 없이 어떤 우연에 맡겨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었다. 다행히 나의 바람대로 순탄하게 흘렀고, 이따금씩 커다란 행운이 찾아오기도 했다. 단연 크리스토프도 그 행운의 일부다. 함께 지낸 삼일 동안 그 덕분에 나는 든든한 마음으로, 온기 가득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가 건네준 '베를린에서 꼭 방문해야 할 곳'을 적은 종이는 아무리 꼬깃꼬깃해져도 버릴 수가 없다.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에 그가 의자에 구겨 앉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쓰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상냥했던 그에게 깊은 감사를 보낸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실한 삶을 지켜나가며 행복하게 살기를. 그리고 내게도 그에게 'My city, My Seoul'을 보여줄 기회가 닿기를!

     

크리스토프 동네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마켓
크리스토프가 직접 내려준 커피와 아침 식사


2. 테레지아를 떠올리기만 해도 내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일생에서 만나 본 사람 중에 가장 사랑스럽고, 웃음에 생기가 넘친다. 그녀와의 대화는 언제나 꽃망울이 터지는 듯 싱그럽고 찬란했다. 만나자마자 본인의 방으로 이끌기에 따라 들어갔는데, 곧장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아라비안나이트 동화에 나올 것 같은 공주방이었다. 강렬한 붉은빛으로 가득한 방에 마침 테라스에서 들어온 햇볕이 한층 더 눈이 부시게 만든다. 형형색색의 샹들리에와 금장 거울, 와인색 실크 커튼, 앵두색의 침대 그리고 이불. 고풍스러운 액자에 담긴 그림들까지. 그녀의 정열적인 취향을 보니 밤이 되면 남몰래 요술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마저 들었다. 내 혼란한 머릿속을 단번에 정리시키는 그녀의 천진난만한 질문공세.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비슷한 점이 많아 놀라웠다.


테레지아는 우체국에서 일을 하며 대학원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다. 학부 전공이었던 예술 사학을 더 공부하고 싶어 대학원에 왔지만, 최근 들어 꽤나 버거운 상황이라고 했다. 할 일도 많지만 매일 반복되는 삶에서 오는 권태가 가장 문제라고 생각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환기'를 시키고 싶었다고 한다. 그게 그녀가 카우치서핑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나는 부디 내가 그녀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유쾌한 대화가 오가기도 잠시, 그녀의 이웃이 저녁밥을 들고 찾아왔다. 그녀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자주 모여서 식사를 하기도 하지만, 종종 모임을 가지며 사회운동에 참여하기도 한단다. 테레지아의 이웃 역시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관심 분야도 무척 폭넓어 보였지만, 할 줄 아는 언어도 5개가 넘는다고 했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의 프로젝트에서 만난 사람들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여자들의 수다 파워를 제대로 뽐내듯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깔깔대다가도 급격히 분노를 하는 대화의 서사가 어찌나 웃기던지. '희로애락'의 감정을 넘나드는 이야기는 일기장에 기록해두고 이따금씩 꺼내보고 싶었다.


그녀의 집에서 지내는 동안 여러 이웃과 인연을 맺었다. 옆방에 살고 있는 룸메이트부터 윗집에 살고 있는 베로니카 아줌마까지. 특히 베로니카는 내게 은인과도 같은 존재다. 조지아에서 오랫동안 살다온 그녀는 내가 안전하고 즐겁게 여행할 수 있도록(일주일 후면 나는 조지아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자신이 아는 정보를 아낌없이 말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미지의 나라였던 조지아에 대해 조금은 예측해볼 수 있었다. 테레지아와 함께하며 가장 좋았던 시간은 바로 이때였다. 그녀는 나를 머물다 떠날 여행자로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새로운 한 사람이자 친구로서 대했다. 그녀가 나를 위해 자신의 일상을 잠시 바꾸기보다는 본래 지니고 있던 일상에 나를 초대한 느낌이 들었달까. 테레지아와 그녀의 이웃들은 모두가 '늘 하던 대로' 행동했다. 그러한 행동 뒤에는 내게 어떠한 불편함도 주지 않으려는 배려가 숨어있다는 것을 안다.


떠나는 날 아침, 테레지아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만들어 주겠다며 잠에 취한 나를 깨웠다. 자전거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호숫가가 나오는데, 다른 곳과는 달리 돈을 안 내고 수영을 할 수 있다고! 그러면서 그녀는 베를린 사람들은 최대한 꼼수를 부려 '돈 안 쓰고 똑같이 행복하기'에 특화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덧붙인다. 가난하지만 섹시한(한때 베를린의 도시 슬로건) 베를리너답다. 기대를 한 아름 안고 간단히 세수만 한 뒤,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화창한 날씨와 부드러운 바람이 이미 하루를 완벽하게 했다. 과연 그녀의 비밀장소는 우아한 경치를 자랑했다. 너른 호숫가에 유유히 떠다니는 백조 사이를 가르며 수영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보석처럼 빛나는 물살을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이곳이 바로 천국이구나 생각했다. 베를린이 품고 있는 대자연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헤어짐이 아쉬웠던 나는 베를린에 있는 동안 테레지아를 한번 더 보고 싶었다. 곧 만날 은희에게도 이 사랑스러운 언니를 소개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일정이 맞지 않아 우리의 재회는 이뤄지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장문의 편지를 남기며, 언젠가 꼭 다시 만나기를 소망했다. 주홍색 단발에 눈썹 위로 올라간 앞머리를 씰룩이며 웃을 그녀의 얼굴을 생각하니 기분이 덩달아 좋아진다. 아마 매년 6월 즈음이 되면 테레지아의 웃음과 더불어 그녀의 테라스에서 진동하던 나무의 꽃향기가 떠오를 것 같다.


테레지아의 신비로운 방
테레지아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작은 테라스


3. 아직 6월 중순인데도 대낮의 기온은 30도를 넘나들었다. 이상기온이 유럽 대륙을 뒤흔들고 있다는 뉴스를 얼핏 들었는데, 사실이었다. 저녁이 되면 카타리나와 만나기로 했는데, 나는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다. 끓어오르는 열기에 걷다 보면 이마에 금세 땀이 맺히고, 두통이 이따금씩 찾아온다. 목적 없이 걷던 나는 한 교회의 마당에 있던 벤치에 몸을 뉘었다. 책으로 해를 가리고 벌러덩 누우니 살 것 같았다. 잠깐 잠이 들었던 걸까, 바지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화들짝 깨어 전화를 받았다. 나도 모르게 여보세요-라고 했지만, 한국에서는 절대 전화가 올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이내 깨달았다. 출국 전 핸드폰 일시정지를 신청한 터라 발신인은 유럽, 아마 독일의 누군가에게 오는 것이겠지. 전화 안에서 들려오는 중성적 목소리의 그녀는 바로 카타리나였다. 오늘 저녁에 요가 수업을 갈 예정인데, 함께하겠냐는 거였다. 나는 황급히 짧은 인사를 건넨 후 좋다고 했다. 애초에 그녀의 프로필에서 요가가 취미라는 것을 보고, 메시지를 보낼 때 기회가 된다면 요가를 같이 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와 만나기로 한 시간은 다가오는데 도무지 기운이 회복되지 않았다. 캐리어를 끌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일은 체력 소모가 상당했다. 가끔 이럴 때마다 나 자신이 너무나 어리석게 느껴진다. 카페에서 가만히 앉아 쉬면서 기다리면 될 것이지, 무엇을 하느라 그렇게 바쁜 건지 스스로도 모르겠다. 결국 카타리나에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오늘 몸상태가 좋지 못해 쉬는 편이 낫겠다고. 네가 운동을 간 사이 나는 장을 봐서 저녁을 만들고 있겠다고. 실제로 본 카타리나는 무뚝뚝한 외모와는 달리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잔잔하게 웃으며 내 이야기를 듣더니, 차분하게 포옹을 건네었다. 그리고는 한마디 툭 던진다. 노 프라블럼.  


카타리나의 집엔 전에 살던 사람이 두고 간 물건이 잔뜩 쌓여 있었다. 부서진 샤워기와 곳곳에 내려앉은 먼지가 민망했는지, 그녀는 내게 아직 집안 구석구석 손봐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래도 내가 머물 공간만큼은 청소를 했다며 넓게 편 소파 위에 뽀송한 이불을 덮어 침대를 만들어 준다. 그제야 방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낡은 축음기와 전신 거울, 독특한 의자가 묘하게 조화로웠다. 갤러리 큐레이터의 방답게 옷 진열에도 미적 감각이 돋보였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밝아지는 단정한 방이었다. 잠깐 쉬다가 채식주의자 카타리나와 함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뭘까 고민을 했다. 마찬가지로 채식주의자였던 테레지아가 좋아했던 비빔밤을 해 먹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안될 것 같고. 간단히 상추와 계란을 사다가 비빔면을 만들면 좋겠다 싶었다.


카타리나가 올 시간에 맞춰 재료를 다듬고, 물을 올렸다. 이내 그녀가 집에 들어왔는데, 곧 포르투갈인 친구가 놀러 온다고 했다. 그녀의 친구가 오자, 둘은 내가 알아듣는 언어로 말하고 싶다며 영어로 대화한다. 세심한 마음씨가 너무나 예뻤지만, 정작 나는 비빔면을 만드느라 바빠서 잘 듣지도 못했다. 면을 그릇에 옮겨 담고, 식사에 곁들일 김치를 꺼냈다. 한인마트에서 산 김치인데 겉절이처럼 아삭하고 개운했다. 이 비장의 무기를 보자 두 친구의 눈이 빛났다. 카타리나의 친구는 자신의 또 다른 포르투갈 친구가 요즘 한국, 특히 김치에 관심이 많다며 만드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다고 했다. 또 한 번 내 나라가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한국의 매력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지. 그렇게 우리의 대화 주제는 한국 문화였다가, 이국에서의 삶으로 옮겨갔다.


사실 카타리나는 리스본 출신으로, 베를린에 온지는 일 년이 조금 넘었다. 그래서 현재 독일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한다. 왜 베를린으로 왔는지 물으니, 리스본에서는 자신의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갤러리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쌓고 싶은데, 리스본은 문화적인 면에서 가난하다고 했다. 전 세계의 예술인이 모여드는 베를린이 아무래도 자신의 무대로 적합했나 보다. 가족이 있는 땅을 뒤로하고, 새로운 나라에서 삶을 일궈낸 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외롭고 지난할지 가늠해보니, 그녀가 참 대단해 보였다. 동시에 나를 성장시켜줄 수 있는 도시를 일찍이 발견했다는 게 부럽기도 했다. 자라온 땅을 벗어나는 일이 진정 알을 깨고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그녀는 베를린에서의 삶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단기간에 선망하던 아티스트가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일하고 있고, 취미 생활도 맘껏 즐기며, 마음이 맞는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며. 그 말을 할 때 그녀의 눈은 총명하게 반짝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하룻밤이었지만, 카타리나는 내게 생각의 궤적을 깊이 남겼다.


카타리나 방의 내 침대
카타리나의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방


참! 세 베를리너가 입을 모아 말한, 베를린 방문의 최적 시기는 5월부터 8월까지이다. 베를린의 여름은 아름답지만 겨울이 되면 죽은 도시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베를린 사람들은 여름휴가는 떠나지 않고, 겨울 휴가를 준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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