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로폴리스 위로 별똥별이 떨어지던 밤

GREECE

by gil

아테네의 작은 언덕에서 하늘의 별쇼를 목격했다. 그것도 아크로폴리스 위로 흐르는 별똥별을. 기적과도 같은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알고 보니 그날은 3대 유성우 중 하나인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가 극대(매년 8월 둘째 주 즈음)를 이룬 날이었다. Meteor Shower. 탁 트인 하늘에 획을 그으며 떨어진 별줄기를 보니, 안 그래도 ‘신성한 도시’ 아테네가 더욱 신성하게 느껴졌다. 새삼 요란스럽게 울려대던 매미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고, 내면의 평화 깊이 내려앉았다.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세상의 수많은 아름다움을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처럼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 사이를 헤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Strefi Hill


아테네에서의 나날은 꽤나 단조롭게 흘러간다. 딱 한 사람만을 위한 침대와 책상, 거울이 있는 방에서 눈을 뜬다. 하얀 커튼을 활짝 제치고, 테라스의 문을 연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과 맹렬히 대지를 달구는 태양이 보인다. 물 잔을 집어 들고 침대맡에 걸터앉으면, 이 집에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내 다리 사이로 지나간다. 손님의 안녕을 주인 대신 확인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방을 한 바퀴 빙- 돌더니, 재빠르게 문 밖으로 나간다. 5일 내내 한결같은 이른 오후의 풍경이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정했다. 욕심이 없을 만도 한 것이,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아테네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숙소 주인인 Laura는 나만큼이나 게으른 친구였다. 보통 내가 일어나서 씻고 나오면 그녀도 잠에서 덜 깬 듯한 얼굴로 아침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뭐할 거냐고 묻기에, 나는 아테네에서 지하철을 타고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바닷가, 코스타 델 솔(Costa Del Sol)에 수영하러 갈 거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저녁이 되면 함께 스트레피 힐(Strefi Hill)에 가서 일몰을 보자고 했다. 자신은 도저히 한낮의 더위를 이겨낼 자신이 없다며. 해가 질 무렵 나설 준비를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바다에 갔다가 약속 시간에 맞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진한 립스틱을 바른 Laura가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반겨준다. 우리의 목적지인 스트레피 힐은 아테네의 수많은 언덕 중 하나로, 동네의 뒷산에 불과한 규모지만 아크로폴리스나 리카비토스를 한데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함이 있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언덕이라 라우라는 이곳을 아지트 삼아 자주 간다고 했다. 때마침 둘 다 배가 고파 기로스 집에서 닭고기 기로스와 베지 기로스(Laura는 10대 때 베지테리언이 되었다.)를 사들고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도시를 색으로 규정한다면 아테네의 색은 단연 흙색이다. 흙 중에서도 맑은 노랑 혹은 흐린 주황의 황토라고나 할까. 누군가는 오랜 세월을 거친 자연의 고결함을 떠올리고, 말라붙은 대지의 헛헛함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아테네의 땅과 건물은 대부분 비슷한 황토색을 지니고 있었다. 해 질 무렵이 되자, 흙색 건물벽이 붉게 물들어 갔다.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수록, 벽과 담장과 계단과 언덕에 낙조가 스며들었다. 걸음을 재촉하자 금세 꼭대기에 도착했고, 깨끗한 하늘 덕에 아테네 시내의 전경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엇비슷한 건물들의 생김새와 색깔이 나의 도시 서울과는 극명히 대조되었다.


리카비토스 언덕은 이쪽에 있고, 피레우스 항구는 저쪽에 있네. 위에서 보니 생각보다 아테네에도 나무가 많구나, 하며 눈길을 아크로폴리스로 천천히 옮겼다.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 아크로폴리스. 가까이 보는 것도 좋겠지만 멀찍이 바라보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 안에 있으면 원경의 모습은 상상에 맡겨야 되지 않은가. 스트레피 힐에서라면 아크로폴리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그런데 일순간 아크로폴리스의 위로 몇 개의 선이 반짝하고 떨어졌다. 화들짝 놀란 나는 Laura에게 방금 하늘에서 떨어진 별똥별을 보았냐고 외쳤다. 그녀는 이곳에서는 매년 여름이면 별쇼 구경을 종종 할 수 있다며, 아이 같지만 소원이나 어서 빌자고 했다. 나는 놀라움이 가시기도 전에, 하늘을 보고 눈을 감았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겪은 경이로운 모든 경험에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나의 가족 그리고 친구들의 안녕을 기도했다. 별똥별에게 소원을 들어주는 힘이 정말로 있었으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