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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Nov 14. 2019

흑해는 검은색이 아니야

GEORGIA


바투미는 선택받은 도시다. 바다와 산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모자람이 없는 자연환경은 곧 그 도시 사람들의 영혼 또한 충만하게 만든다. 과연 바다와 산 중 무엇이 무엇을 에워싸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만큼, 광막한 풍경이었다. 흑해와 산의 수려한 능선을 바라보는 일은 결코 질릴 수가 없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쉼 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바투미의 고혹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지만,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던 진경이 나타난다. 한 세기 넘게 유지되고 있는 바투미 식물원(Batumi Botanical Garden)라든가 비잔틴 제국 시대에 지어진 페트라 요새(Petra Fortress) 같은. 해안도로를 달리는 내내 사라지지 않는 바다의 풍경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북쪽으로는 코블레티(Kobleuti)나 우레키(Urekhi)가, 남쪽으로는 고니오(Gonio)나 사피(Sarpi) 해변이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바투미 시내에서 버스를 타면, 30분 내로 터키 국경에 닿는 놀라운 경험도 가능하다. 이 도시가 선사하는 모든 아름다움은 신의 선물과 같은 만경창파(萬頃蒼波), 즉 바다로부터 시작된다.


Batumi Beach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닷가에 다녀왔다. 그간 '아침 수영'은 내게 있어 꿈같은 일이었는데, 이곳에서는 매일 가능하다니. 마음속에서 행복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젖은 몸을 말리려고 자갈 위에 얇은 수건을 깔고 누웠을 때, 별안간 이 풍경과 소리가 생경해졌다. 너무나 낯설어서 순간 현실이 아닐까 생각했다. 꿈, 꿈결, 꿈속. 그만큼 내게 이 상황은 몽상 속에서나 가능한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한순간에 현실로 돌아갈까 봐 두려웠지만, 눈을 여러 번 깜박여봐도 눈앞의 모든 것이 실재했다. 새파란 바다와 그 바다색을 닮은 수영복을 입은 아주머니, 물 안에서 물장구를 치며 웃고 있는 사람들, 힘차게 부서지다가 이내 부드럽게 굴러오는 포말. 과분한 기분이 들었다. 새삼 감사함으로 가득 차는 순간이었다.


매일 아침, 집에서 골목길을 따라 무작정 걷다 보면 바닷가가 나왔다. 나는 매일 조금씩 다른 바다를 고를 수 있었다. 늘 사람으로 들끓는 알리와 니노 동상(The Statue of Ali&Nino) 근처를 벗어날수록 해변은 더욱 한적하고 고요해졌다. 바다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일은 나의 일상을 한껏 경쾌하게 만들었다. 사실 바투미의 흑해를 직접 보기 전까지만 해도, 이름만 보고 색이 검은 바다가 아닐까 생각했다. 정말이지 바보 같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흑해의 어원에 관한 의견(흑해를 터키어로 하면 'Karadeniz'가 되는데, 여기서 'Kara'는 단순히 검은 것뿐만 아니라 북쪽을 상징하기도 한다.)이 분분하기는 해도,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색깔 때문에 붙여진 것은 아니라는 거다. 흑해는 맑은 날에는 눈이 시리도록 파란색이고, 흐린 날에는 탁한 회색이다. 여느 바다처럼 날씨에 따라 파도가 잔잔하기도 하고, 거세기도 하다. 나는 바투미의 오색 바다를 매일같이 보면서 바다의 존재가 얼마나 인간에게 큰 위로가 되는지 절감했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Batumi Botanical Garden


흑해의 파노라마를 살펴보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가 바로 바투미 식물원이다. 바투미 시내에서 10번이나 10a번 버스를 타면 된다. 파란색의 버스는 도심을 벗어나서 이내 등장하는 해안도로를 달리더니, 구불거리는 산비탈을 끊임없이 감고 돈다. 얼마나 산속에 위치해있는 건가 궁금하던 참에 종점에 내려준다. 평일이라 유독 한산했던 건지, 입구까지 걸어가는 길이 마치 나만의 세상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한평 남짓한 매표소에 가니 입장권을 사야 했다. 버스비가 50 테트리, 입장료가 15라리이니 총 15.5라리(약 6500원)의 비용이 들었는데, 결코 아깝지 않았다. 바투미 식물원의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총 9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각각 대륙의 이름을 테마로 삼아 꾸며놓았다. 동아시아부터 아메리카 대륙, 유럽 대륙, 호주, 뉴질랜드까지. 지도를 따라 찾아가는 탐험대원이 된 거 같았다.


이곳에는 무려 1800여 종의 나무와 5000여 종의 식물이 살고 있다. 수국이나 무궁화처럼 익숙한 꽃도 많았지만, 난생처음 보는 모양의 식물이 넘쳐났다. 대부분 이름표가 달려있어 하나하나 읽어보는 재미도 있었다. 하늘을 가리는 대나무 숲에 들어섰을 때는 무림 영화의 한 장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자연으로부터의 치유는 언제나 고결하다. 이따금씩 지저귀는 새소리와 산뜻한 풀 냄새가 기분을 산뜻하게 만들어준다. 뭐니 뭐니 해도 바투미 식물원의 백미는 바다 정원이다. 북쪽 끝을 향해 나아가면 밑으로 내려가는 긴 계단이 있는데, 그곳엔 기찻길(Botanikuri Baghi Railway Station) 너머로 바다가 펼쳐져있었다. 작은 식당이 있어 잠시 머물며 체력을 보충해도 좋겠다. 이른 오전에 식물원에 와서 피크닉을 즐기다가, 오후에는 바다에서 수영을 하며 하루를 보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바투미 식물원: http://bbg.ge/en/home)




Petra Fortress


페트라 요새로 가는 방법은 코불레티(Kobuleti)로 향하는 마슈르카(미니 버스)를 타고 중간에 내리는 것이다. 이토록 쉽게 쓰인 한 문장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난 끝에 페트라 요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날은 근래 중 가장 더운 날이었다. 스마트폰의 날씨 어플은 3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여름의 불볕더위와 더불어 바다 도시 특유의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마슈르카 안도 찜질방 그 자체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창밖만을 애타게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내리나 싶어 구글 지도를 살피니, 페트라 요새 입구를 지나치고 있었다. 나는 기사 아저씨를 황급히 불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리 사이에는 언어의 장벽마저 나타났다. 나의 간절한 손짓과 발짓을 보고 승객 모두가 도와주시려고 했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분은 아무도 안 계셨다.


마슈르카를 탈 때는 기사님께 목적지를 명확히 말하는 게 필수다. 더군다나 페트라 요새처럼 종착지가 아닌 중간지점에서 내릴 때에는 더욱이 주의해야 한다.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나 또한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알고 보니 내가 말씀드린 분은 운전기사가 아니라 승객들을 태우는 역할만 하시는 직원분이었다. 결국 얼마 가지 않아 길 한복판에 내릴 수 있었지만, 문제는 비탈길을 내려온 터라 돌아가기 위해선 오르막길을 최소 20분은 걸어야 했다. 이미 더위에 지친 나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났고, 머릿속엔 한 가지 방법만이 떠올랐다. 히치하이킹. 나는 어딘지도 모를 도로의 한가운데서 난생처음 히치하이킹에 도전했다. 정말이지 살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어떤 조지아 분께서 너그러이 차를 태워 주셔서, 마침내 요새 입구에 당도할 수 있었다. 페트라 요새는 6세기에 지어진 고대 유적지로,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그리고 이란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입장료가 없는 열린 공간이라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듯했다. 규모가 크지 않았기에, 나는 몇 계단 오르지 않아 금세 정상에 도착했다. 성벽의 형체가 폼페이 유적지를 연상케 했다. 이곳의 절경은 바로 끝이 보이지 않는 흑해. 성터의 작은 돌덩이에 앉아 흑해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데, 한 천사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질끈 묶은 머리 사이로 땀에 젖은 앞머리가 앙증맞았던 소녀. 카메라로 이것저것 열심히 찍는 내가 신기했던지, 동그랗고 큰 눈으로 나와 내 카메라를 번갈아 쳐다본다. 천사는 트빌리시에서 왔고, 제일 좋아하는 것은 강아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는 중이라고 했다. 내게 평온한 시간을 안겨 주어 고마워, 천사야.



Kobuleti


사실 조지아에 오기 전부터 나는 한 가지 정보를 찾는 데에 몰두해있었다. 바로 여름마다 열리는 잼 페스티벌(GEM FEST)이다. 2015년에 처음 개최된 이 음악 축제는 테크노, 하우스, EDM 등의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작년에는 아나클리아(Anaklia)라는 해변 마을에서 개최되었다고 한다. 몇몇 이미지를 찾아보니, 형형색색의 컬러 폭탄을 뒤집어쓴 사람들의 사진이 있었다. 사람들의 신난 얼굴을 보니 축제 현장의 열기가 느껴졌다. 나는 언제 티켓 예매가 시작되는지 주기적으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고, 트빌리시에서는 파브리카 직원들에게 묻기도 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잼 페스티벌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함께 불안감도 높아졌다. 홈페이지상으로 날짜는 확정이 되었는데, 장소가 요상하다. 분명 L a t v i a라고 쓰여있다. 잠깐만, 라트비아라면 다른 나라가 아닌가!  


학수고대하던 잼 페스티벌을 갈 수 없게 되자 너무도 아쉬웠다. 그런데, 신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는지. 바투미 관광안내소에 갔다가 우연히 코불레티(Kobuleti) 페스티벌 포스터를 발견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담당 직원에게 날짜에 맞춰 코불레티에 가면 이 축제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인지를 물었다.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슈르카를 타면 4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낮에는 민속 공연을 하고, 저녁에는 DJ와 밴드 무대가 있는 음악 축제란다. 만세! 나는 카페 콘테에서 알게 된 이집트인 친구 모(Mo)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그는 음료를 서빙하다 말고, 자신도 그 축제에 갈 거라고 했다. 나는 모의 말을 듣고, 꽤 괜찮은 축제임을 확신하며 계획을 세웠다.


코불레티에 도착해 축제의 분위기를 살피는데, 귀여운 구석이 돋보였다. 포스터부터 화려하더니, 과연 곳곳에 놓인 색채 구조물이 눈에 띄었다. 작은 공원 부지에 축제가 열리고 있었고, 코앞에는 바다가 있었다. 잼 페스티벌과는 비교할 수 없이 소규모이지만, 바닷가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라는 사실만큼은 똑같다! 기분이 업된 나는 음악에 몸을 들썩이며 곳곳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아직 저녁 공연이 시작되려면 시간이 꽤 많이 남아, 은희와 바다로 수영을 가기로 했다. 이때 만났던 친구가 바로 나니(Nani)와 오토(Otto)이다. 그들은 수영을 하고 나와서 쉬던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케이팝의 팬이라며, 대뜸 한국 연예인과 몇몇 개의 한국어를 말했다. 또 한 번 케이 파워를 실감한 순간이다. 알고 보니 우리와 비슷한 또래였고, 'K-culture'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유쾌한 대화가 이어졌다.  


함께 산책을 하다가, 저 멀리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다시 축제 현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은희와 나는 동시에 경악하고 말았다. 분명 아이들이 참여하기엔 무리가 있는 분위기 같은데, 온통 10대들 뿐이었다. 앳된 외모의 아이들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데다 짙게 화장을 하고, 어른들의 '클럽춤'을 추다니. 사실 내가 신경 쓸 바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보기가 썩 좋지는 못했다. 어린 나이에 이렇게 놀 수 있다니. 내가 너무 고루한가 싶었다. 괜히 내가 눈치가 보였다. 그러다 우연히 모를 만났는데, 그 역시 어린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재미없다고 했다. 우리는 어이없게 웃으며, 바투미로 돌아가서 노는 게 낫겠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꿩 대신 닭으로 귀결되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만 그래도 어쩐지 달콤하게 기억되는 날이다.



Ureki


우레키(Ureki)는 모래 해변이 그리워 찾아가게 된 곳이다. 아드자라 지역의 흔치 않은 검은 모래 바다가 바로 우레키에 있다. 오랜만에 모래사장을 밟을 생각을 하니 신이 났다. 바투미에서 마슈르카를 타고 한 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우레키는 시골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노후한 주택과 낡은 놀이공원, 비포장 도로까지. 바투미의 신식 건물만 보다가, 작은 마을에 오니 어딘가 촌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우중충한 날씨 탓에 바다색은 온통 잿빛이었다. 수심이 굉장히 얕은 우레키 바다는,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가족단위로 놀러 온 사람들이 무척 많아서 이때 조금 외롭기도 했다. 그래도 씩씩하게 하고 싶었던 건 하자 싶어, 타월을 깔고 책을 읽다 수영을 했다. 배가 고파졌을 땐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서 하차푸리와 함께 사페라비 와인을 마셨다.


이곳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경험은 단연 '음악가의 공원(Musician's Park)'이다. 우레키에 살고 계신 택시 기사님이 추천해주셔서 갔던 장소인데, 정말 기쁨의 환호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작고 아담한 테마파크처럼 꾸며진 이곳에는 전 세계 음악가의 동상과 함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바뀌는 음악 소리를 들으니 매우 황홀했다. 베토벤, 바흐, 파바로티 세기의 클래식 천재들은 물론이요, 비틀스나 지미 헨드릭스, 엘비스 프레슬리, 밥 말리와 같은 대중 가수들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에디트 피아프와 스티비 원더의 조각상 앞에서는 한참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이 순간만큼은 혼자라는 게 가슴 깊이 아쉽고 쓸쓸했다.



Gonio&Sarpi Beach


고니오(Gonio)와 사피(Sarpi)는 서로 인접해 있는 소도시다. 바투미에서 차로 20~30분이면 갈 수 있다. 비교적 관광객이 덜하고, 물이 깨끗해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좋다. 나는 조지아 친구 오토(Otto)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날이 몹시도 더워 도무지 외출할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오토가 해질 무렵에 바다로 수영을 가자고 한다. 차가 있는 덕분에, 고니오 비치(Gonio Beach)까지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생리 중이라, 물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오토에게 솔직하게 말하니 굉장히 아쉬워하며 자신이 내 몫까지 즐기고 오겠단다. 부드럽게 반짝이는 바다로 첨벙하고 들어가는 오토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저 멀리 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다. 선명한 주홍빛으로 물들어가는 바닷물이 참 예뻤다.  


오토는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자신의 비밀 장소에 가야 한다며, 몸을 말리지도 않고 자리를 떴다. 그의 차로 비탈길을 열심히 밟아 간 곳은 구글 지도 상에 CROSS(상세 주소: гора над Гонио, Georgia)라고 밖에 뜨지 않는 한 언덕이었다. 거대한 십자가 동상이 떡 하니 있었기에, 그에 맞게 붙여진 이름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었다. 놀랍게도 언덕에는 일몰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꽤 있었다. 말소리가 묻힐 정도로 심했던 바람 탓에, 우리는 그저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인생에서 겪어본 바람 중에 가장 센 바람이었다. 수평선 너머로 붉게 물든 하늘 위로는 구름이 흘러가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강풍이 구름을 끌고 가고 있었다. 바다가 밀물 썰물 운동을 하듯 끊임없이. 코카서스 산맥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바람의 위력에 압도당해 잠시 넋이 나갔었다. 그 후 사피를 가는 길에도 우리는 크로스 언덕 하면 바람밖에 떠오르는 게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바투미에서 17번 버스를 타면 고니오를 거쳐 사피에 닿을 수 있다. 사피는 터키로 향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여권만 있으면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것이다. 바투미 사람들은 쇼핑을 하거나, 주말여행을 하러 자주 간다고 한다. 나도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었는데, 게으름을 부리다 결국 못 갔다. 터키의 트라브존(Trabzon)이나 리제(Rize)는 1박 2일로 가볍게 다녀오기 좋은 코스라고 하니 참고하시길.  



More Info.


바투미의 사계절은 다채롭다. 봄에는 캠핑을, 여름에는 수상레저와 음악 축제를, 가을에는 포도 수확체험과 민속 축제를, 겨울에는 스키를 즐길 수 있다. 바투미는 조지아 사람들 뿐만 아니라 러시아,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등의 인접국 사람들에게도 '휴양지'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휴가 분위기가 물씬 난다. 바투미 관광안내소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책자가 꽤나 유용하니, 꼭 한번 들러보기를 권한다.


(바투미 관광청: https://georgia.travel/en_US/adjara/bat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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