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영국 여행기(2017)
누구나 푹 빠질 수밖에 없는,
런던의 마켓 기록
노팅힐에 위치한 포토벨로 마켓은 형형색색의 건물 사이로 기다랗게 늘어서 있었다. 날이 오전 내내 흐리더니 마켓 입구에 당도하자마자 거리를 비추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햇빛이 길을 따라 퍼지면서 활기찬 장터의 분위기는 한층 살아났다. 올리브, 과일, 치즈, 생선과 같은 신선한 식재료가 눈길을 사로잡으려는데 동시에 수제 버거, 파스타, 소시지의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시선을 압도하는 건 단연 거리 예술가의 열정 넘치는 공연! 볼거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마켓은 반나절을 머무르기에도 충분했다. 내게 있어서 처음으로 간 런던의 마켓이라 발 아픈 것도 잊은 채 쉬지 않고 돌아다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팔에는 노팅힐과 포토벨로 마켓의 건물이 그려진 에코백이 매달려 있었고, 손에는 챙이 넓은 모자를 쥐고 사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며 거울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서울에서도 종종 플리마켓 구경을 갔었고, 한 번은 셀러로 직접 참여해 본 적이 있었다. 일반적인 상점보다 주인과 손님이 좀 더 편안하게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장 특유의 분위기가 좋다. 운이 좋으면(넉살이 좋으면)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것은 일석이조! 화려한 무늬의 그릇이나 앤티크 한 골동품을 보았을 땐 여행자가 구입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자 런던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포토벨로 마켓엔 지금껏 가봤던 서울의 플리마켓보다 볼거리가 곱절은 풍성했다.
캠든타운에 있는 캠든 록 마켓은 가는 길에서부터 그 분위기를 짐작하게 해주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내려 출구로 나가는데,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패션의 한 남자가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연두색 머리에 검정 가죽 재킷, 종아리의 반을 뒤덮는 워커. 나는 Camden Lock이 아닌 Camden Rock인 줄 알았다. 캠든타운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락의 기운. 아기자기한 포토벨로 마켓과는 전혀 다른 강렬한 인상이었다. 거대하게 늘어선 빈티지 옷들 사이로 험상궂게 생긴 주인들을 지나쳐 갈 땐 묘하게 긴장도 됐다. 캠든타운에 울려 퍼지는 펑키한 음악을 따라 걷다 보면 그림, 편지지, 액세서리와 같은 아트 앤 크래프트 제품을 팔고 있는 상점도 만나볼 수 있었고, 아름다운 리젠트 운하 옆에는 각양각색의 푸드트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느 나라의 음식을 먹을까 고르는 일만큼 즐거운 건 없지. 나는 가장 안쪽에 위치한 데다가 무언가 튀기는 소리가 강렬했던 베네수엘라 전통음식을 골랐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아레파'라는 둥근 옥수수빵에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양파, 고수, 양상추, 고구마튀김, 팥, 아보카도 소스가 들어간다. 다채로운 재료처럼 맛 역시 화려하다. 팥은 우리나라만 먹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이 풍성한 재료들이 하나같이 조화를 이룬다는 건 무척 신기했다. 흥미로운 맛이랄까 흐흐. 배가 불렀지만 남기기 싫어 오래도록 먹고 운하를 따라 걸었다. 시간은 잔잔하고 평화롭게 흘러갔다.
캠든 록 마켓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지 않을까 했던 예상과는 달리 브릭 레인 인근에 모여 있는 올드스피탈필즈 마켓, 선데이업 마켓, 백 야드 마켓, 브릭 레인 마켓은 또 다른 매력을 뽐냈다! 조금 흐린 날 찾아간 올드스피탈즈 마켓은 한 공간에 옷, 액세서리, 각종 먹거리가 모여 있었다. 주말에 놀러 나온 가족들과 연인들이 한쪽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우리 가족, 친구들이랑 이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케이크와 머핀의 황홀한 비주얼에 끌렸지만 혼자서는 먹고 싶지 않았다. 브릭 레인 마켓에선 빈티지 숍과 서점, 유명한 카페가 줄줄이 보였다. 런던의 홍대라는 별명에 걸맞게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여러 마켓 중 가장 나중에 찾아간, 런던을 곧 떠나기 전에 찾아간 곳이어서 그런지 만감이 교차했다. 기쁘고도 슬픈.. 그런?
런던 브리지 근처의 버로우 마켓에 찾아갔을 땐 아쉽게도 장이 열리지 않았다. 아마 너무 이른 시간에 찾아간 탓이다. 숙소에서 걸어서 20분 이내로 도착하는 거리라 첫 번째 행선지로 정했는데 잘못된 판단이었다. 몇몇 개의 부스만이 막 영업을 시작하고 있었고,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열댓 명도 안됐다. 아쉬워라! 그런데 여행 중 만난 한국인들 중 포토벨로 마켓이나 캠든 마켓이 버로우 마켓보다 더 좋았다고 하는 사람이 꽤나 많았다.
선데이업 마켓과 함께 일요일에만 열리는 콜럼비아 로드 플라워 마켓! 가는 도중엔 담쟁이넝쿨이 얽혀 있는 붉은 벽돌담과 그로 둘러 쌓인 하얗고 깨끗한 집을 발견했다. 한적하고도 아름다운 특유의 골목길 분위기에 매료되어 있을 때 즈음 꽃다발을 한 아름 품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골목길의 끝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듯 눈 앞엔 많은 인파와 마켓 부스가 펼쳐졌다. 일요일 오전에 갔는데도 이미 장은 활기가 넘쳤고 화사한 꽃들로 가득했다. 아아 마음 같아선 싱싱한 꽃을 한 아름 사서 방 한편에 놓아두고 싶지만 눈으로 밖에 담을 수 없었다. 이국적인 꽃에 사로잡혀 콜럼비아 로드 플라워 마켓이 꽃뿐만 아니라 컵, 접시 그리고 애프터눈 티 세트를 파는 카페로도 유명하다는 것을 새까맣게 잊고 가보지 못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플라워 마켓. 내게 런던에서 보내는 일요일이 또 한 번 주어진다면 단연코 이곳에 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