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영국 여행기(2017)
런던의 DAUNT BOOKS, WATERSTONES,
THE NOTTING HILL BOOKSHOP 기록
나는 세상의 모든 읽을거리를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까운 표현일 거다. 신문과 책은 물론이거니와 잡지, 책자, 각종 홍보물까지. 눈에 보이는 것이 있으면 우선 읽고 본다. 저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있을 텐데 나에겐 그것이 '무언가를 읽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유독 재미있는 책이나 잡지를 발견하고 읽을 때 삶이 즐겁고 풍요로워짐을 느낀다. 이러한 생각을 의식적으로 깨달은 때가 언제일까 기억을 거슬러보면, 18살 무렵인 거 같다. 나보다 두 살 위인 언니가 먼저 대학생이 되어 학교에 갔다가 밤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올 때 가끔씩 '대학내일'이라는 캠퍼스 매거진을 들고 왔었다. 나는 그 잡지를 슬쩍 가방에 넣고 다음날 수업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읽었다. 마치 대학 로망을 온 신경에 불어넣는 듯 짜릿할 정도로 신세계였다. 그들의 외적인 모습, 자유, 생활방식. 그 모든 게 부럽고 대단해 보였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대학내일 사랑은 내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계속됐다. 수업에 지각을 할지라도 새로운 호가 나오는 월요일이면 그 잡지를 들고 강의동으로 뛰어올라갔다. 내겐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정보, 쉽게 들을 수 없는 청춘의 목소리가 담긴 소중한 읽을거리였다. 그리고 우연히 카페에서 읽게 된 '론리플래닛코리아' 여행잡지는 나의 두 번째 애정 잡지가 되었다. 표지부터 눈을 사로잡고(발간 때마다 어떤 사진을 실을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할까, 그 고민조차 즐거울 것 같다.) 내부에 실린 여행지 취재기사는 읽는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 일상을 살아갈 힘을 주는, 세상의 이야기가 너무 좋더라. 이러한 나의 취향은 여정의 곳곳에 물들었다. 런던에 가면 서점은 꼭 가봐야지 했는데 이렇게 여러 번, 오랜 시간 머물게 될 줄은 몰랐다. 이미 낯선 땅에 왔지만 그곳에서도 또 다른 새로운 땅을 꿈꾸게 하는 시간들이었다.
초록색 현판에 고딕체로 쓰인 Daunt Books(돈트 북스)를 발견한 순간은 환희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쇼윈도에 놓인 형형색색의 책들은 어서 와 펼쳐보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서점 안으로 발을 내디뎠을 땐 조용한 공기에 흐르는 책 냄새가 먼저 반겨주었다. 여행자를 위한 서점답게 전 세계의 여행서적이 가지런히 진열돼있었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압도적인 규모에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때마침 Daunt Books에선 작은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핑거푸드와 함께 잔을 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떠한 주제로 모인 사람들일까 궁금했다. 공간이 바람직하게 쓰이고 있음에 감탄하며 지하로 내려가 보니 'Korea'코너가가 눈에 띄었다. 그곳에서 발견한 서울과 북한 가이드북은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 다만 다른 국가에 비해 현저히 적은 책의 수는 조금 아쉬웠다. 외국인을 매료시킬 만한 한국의 모습을 보면서 괜히 애국심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 번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를 확신하며 나서려다 서점의 모습이 그려진 에코백이 걸려있는 것을 봤다. 한 끼 굶더라도 이건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초록색 에코백을 구입해 기분 좋게 들고 나왔다.
런던 곳곳에 위치한 Waterstone's(워터스톤스)는 유럽에서 가장 큰 서점이라고 하더니, 층마다 엄청난 규모의 책들이 분야별로 배열돼있었다. 고맙게도 책상과 의자도 함께 놓여있어 부담 없이 책을 읽다가 가도 좋은 곳이었다. 나도 책 몇 권을 뽑아 들고 백발의 영국인 할어버지 옆에 앉아서 읽기 시작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런던에 관한 가이드북을 읽으면 '무지'의 상태라 읽어도 머릿속에 입력이 잘 안됐는데, 며칠 열심히 돌아다녔다고 내가 아는 지명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고 보는 즐거움이 이런 건가. 마찬가지로 서울 가이드북을 볼 때는 익숙한 장소를 색다른 시각으로 표현하니 재밌었다. 론리플래닛에서 낸 'Best in travel 2017'에선 내가 늘 갈망하는 숲 속의 자연을 보면서 언제쯤 이런 곳에 가볼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방랑벽이라면 지독하게 앓고 싶은 내 마음을 충족시킬 수 있는 때가 올까?
두 번째로 찾아간 노팅힐에서 우연히 발견한 The Notting Hill Bookshop. 영화 <노팅힐>에서 착안한 듯 한없이 아늑하고 사랑스러운 공간이었다. 부드러운 노란 조명이 그 안에 놓인 아기자기한 책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중 더러는 워터스톤스에서 보았던 책들이었다. 노팅힐 북샵에서 펼쳐 보았던 책은 요즘 떠오르는 라이프스타일인 휘게를 담은 'The Little Book of Hygge'였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소박한 생활 속에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하는 책이었다. 이곳에서도 이제는 의례라도 된 마냥 하얀색 에코백을 사들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