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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Jan 24. 2018

영국 케임브리지

UNITED KINGDOM


Cambridge는 대학의 도시이자 자전거의 도시임이 분명했다. 거리에는 온통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는 학생들로 가득했으니 말이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친구를 만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영국의 가장 유명한 대학으로 꼽히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견학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런던과 옥스퍼드 그리고 케임브리지는 지도상 삼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다. 옥스퍼드가 런던의 북동 방향에, 케임브리지는 런던의 북서 방향에 위치한다. 안타깝게도 옥스퍼드에 갈 기회를 날려 두 대학도시를 비교해볼 수 없게 되었지만 케임브리지만으로도 충분하고 행복했다.


CAMBRIDGE


런던에서 코치 버스를 타고 두 시간 반 정도를 달려 케임브리지에 도착했다. 버스를 제시간에 못 탄 바람에(이렇게 간단히 쓰인 한 문장 안에는 대단한 우여곡절이 담겨있지만) 하늘에는 이미 어둠이 물들었고, 도시는 잠들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친구가 미리 예약해준 Magdalene College의 Guest room으로 가기 위해 기숙사까지 캐리어를 질질 끌면서 찾아갔다. 골목길을 지나가면서 마주친 대부분의 사람들은 확실히 내 또래 같아 보였다. 학생다운 모습이 어딘가 반갑고 낯설지 않았달까. Magdalene 대학은 가장 북쪽에 위치해있었기에, 가는 동안 케임브리지가 얼마나 아담하고 걷기 좋은 도시인지도 알 게 됐다. 지도에 나온 대로 좁다란 길에 멈춰 서서 왼쪽으로 들어가니 허름한 건물에 Porter's Lodge라고 쓰여 있었고, 문을 두들기니 경비원 할아버지가 굳은 얼굴을 하고 나오셨다. 친구의 이름을 말씀드리자 내게 열쇠 하나를 쥐어 주셨다. 그리고는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셨다. 바로 맞은편에 있던 문으로 들어가니 비밀의 화원처럼 경치 좋은 곳에 기숙사 건물이 있었다. 나중에 길을 헤매지 않으려고 아저씨가 걸어가시는 발걸음을 얼마나 열심히 눈으로 좇았는지 모른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놓인 방들에는 각각 학생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바로 1층에 위치한 게스트 룸으로 들어가니 침대 하나와 작은 세면대 하나 그리고 옷장이 전부였지만, 그렇게 마음이 놓일 수 없었다. 영국 아니랄까 봐 차만큼은 완벽히 준비돼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무사히 도착했다고 연락한 후, 짐 정리를 가볍게 하고 곧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오래간만에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자서 그런지 몸이 아주 개운했다. 일찍 잠든 만큼 이른 아침에 눈을 떴고 친구와 만나기로 한 점심시간까지는 시간이 꽤 있었다. 그전까지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생각을 하고, 결정을 내렸다. Jesus Green이라는 공원을 가볍게 산책한 후 The Fitzwilliam Museum에 갔다가 케임브리지에서 가장 유명한 'Punting'을 하고 친구를 만나러 가기로! 방 바로 옆에 있던 샤워실에서 씻고 가벼운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나오는 길에 마주친 한 학생이 나보고 'Are you alright?'라고 했는데 순간 너무 당황해서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나왔으나, 인사말이 아니라 정말 괜찮냐고 물어본 거라면 뭐가 문제였을까. 아찔함도 잠시, 정면으로 마주한 기숙사 앞 정경은 나를 한없이 들뜨게 만들었다. 온화하고 맑은 날씨 덕분에 풍경은 더욱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바로 앞의 리버 캠에서 배를 타고 유유히 지나던 학생들도 화창한 기운으로 아침 인사를 건넸다. 벌써 봄의 싹이 움트는 듯한 케임브리지의 모습은 만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것 같았다.    


 수채화 같은 하늘을 살피며 길을 거니는 동안, 나를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나다니는 차도 별로 없었거니와 도시와는 정반대인 한가로움이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겨울보다는 봄에 가까웠던 날씨는 덤이요! 런던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을 주는 케임브리지였다.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봤던 영국에서 봤던 모습 중에 제일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지나가면서 마주친 고풍스러운 건물들 대부분은 여러 대학의 건물이었고 학교의 이름이 심벌과 함께 표시돼있었다. 이걸 보면서 케임브리지가 한 대학을 나타내는 이름이 아니라 도시의 이름이자 여러 개의 컬리지를 포함한 커다란 범주의 대학 명칭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가히 대학 도시라고 명명할만한 것이 총 31개의 컬리지가 모여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의 황홀한 풍경에 내내 감탄하다가 어젯밤부터 시달리던 배고픔과 갈증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음을 느꼈고, 뭐라도 먹어야겠다 싶었다. 그러다 작은 마켓을 발견했는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과일 가게만이 장사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싱싱한 과일을 보니 입맛이 돌았고, 혹시 주스로도 판매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옆 가게에서 불쑥 한 청년이 튀어나와 당연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과일 가게 바로 옆이 주스 가게였다. 나는 마음과 같아선 특대 사이즈를 주문하고 싶었으나 생각보다 싸지 않아서 기본 크기의 딸기 주스를 시켰다. 주스 청년은 스탬프 쿠폰을 받겠냐고 물었고, 기념으로라도 가져가고 싶어서 받았다. 그리고는 바로 건너편에 있는 막스 앤 스펜서 마트로 가서 가장 시급하게 필요했던 물과 간단한 식사 거리를 샀다.  


 방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다시 나와서 피츠윌리엄 박물관으로 향했다. 케임브리지에서 제일 유명한 박물관이라길래 가봤는데 볼거리가 상당했다. 영국에서 간 웬만한 박물관, 미술관은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에는 참 아쉬울 정도로 볼 게 많다. 여느 박물관이 그렇듯 피츠윌리엄 박물관에도 아이들에게 좋을 만한 교육 프로그램도 잘 마련돼 있었다. 그렇지만 Punting을 위해 여유롭게 둘러볼 겨를이 없었다. 박물관으로 걸어오는 길에 경쟁적으로 펀팅을 권하는 여러 업체 중, 나를 끝까지 붙잡았던 한 언니에게 영업을 당했기 때문이다. 20분 내로 다시 오면 파격적인 가격에 펀팅을 해주겠다고 했다. 여행의 말미라 자금난을 겪던 나는 그 제안을 반갑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펀팅이란 리버 캠에서 캠브리지 학생들(인터넷에서는 분명 이렇게 나왔으나 친구 말로는 캠브리지 학생들이 아닌 경우도 많다고 했다)이 끄는 배를 타고 설명을 들으며 관광하는 것을 말한다. 학생들의 용돈벌이 수단이 된다는데, 나름 재밌게 돈 벌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좋은 것 같다. 나의 배를 담당한 예쁜 언니는 퀸스컬리지에 다닌다고 했다. 각 컬리지 건물을 지날 때마다 열심히 설명도 해주고 같이 탄 사람들의 질문에도 친절히 답해주었다. 그 유명한, 뉴턴이 설계했다는 수학의 다리와 시험장으로 갈 때 지나는 한숨의 다리를 볼 수 있었다. 여러 건물 중에서는 킹스칼리지 건물이 가장 위엄 있고 화려했으며 멋져 보였다.

 

 드디어 나의 친구 우석이와 우석이의 여자친구 수민이를 만났다. 한국이 아닌 영국에서 볼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곱절은 더 반가웠다. 외국어만 들리던 식당에서 한국말로 맘껏 떠들 수 있다니, 정말로 기뻤다. 친구는 케임브리지에 있는 동안 듣고 싶은 수업이 있으면 다 들어보라고 권했다. 그렇다면 나는 전공 수업보다는 가벼운 교양 수업을 원했으나 안타깝게도 그런 종류의 수업은 없다고 했다. 일단 밥시간이 한 시간밖에 없어서 우리는 쉴 새 없이 대화하며 빠르게 식사를 마쳤다. 나는 수민이가 '태아의 탄생 과정'을 다루는 의대 수업을 들으러 간다고 해서 따라가기로 했다. 문과생이 생물학 수업을 들으러 간다니. 딱히 학문적 열정이 끌어 오르지는 않았지만 이 학교 학생들이 어떤 수업을 듣고, 어떻게 생활하는지가 몹시 궁금했다!


 나는 생물학 수업을 시작으로 마지막 날까지 총 4번의 수업을 들었다. 친구 없이 혼자서 경제학이나 미디어학 수업을 듣기도 했다. 이를 통해 느낀 것은 내겐 미지의 세계였던 외국 대학 수업이, 한국의 여타 대학 수업과 다를 게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교수님의 수업 방식부터 강의실 모습 그리고 학생들의 태도까지. 특별했던 것을 굳이 꼽자면 학생들의 국적이 워낙 여러 가지라 나조차도 자연스레 이곳 구성원의 일부가 된 느낌이었다. 교수님이 수업을 진행하시다가 갑자기 마이크가 나오지 않아 중단될 때면 학생들은 좋아라 떠들기 시작하고, 누군가 기침을 하면 소소하게 웃는, 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내가 너무 유별난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맨 앞에서 교수님의 말씀을 토씨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경청하며 노트북에 빼곡히 적는 학생이 있는 반면, 어제 술을 진탕 마셨는지 아무 영혼 없는 얼굴로 우두커니 앉아서 단지 그곳에 '존재'만 하려는 학생도 있었다. 나는 수업의 내용을 뜨문뜨문 이해할 수 있었지만, 맥락 정도는 파악했기서 지루하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졸음이 찾아오거나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 들려오면 그냥 교수님이나 학생들을 관찰했다. 그것만으로도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중간중간 시간이 비거나 들을만한 수업이 없을 때는 우석이가 캠퍼스 내부를 구경시켜주었다. 구글 맵스없이 친구만 쫄랑쫄랑 따라다니면 돼서 정말 좋았다. 그가 가는 길은 나 혼자서는 절대 못 갈 것 같은 지름길이자 뒷길이었다. 바쁜데도 나를 위해 같이 움직여 주는 우석이에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한국에 놀러 오면 꼭 이 은혜를 갚으리라. 대학 건물 사이사이를 가로지르며 구경하다가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사과나무의 손자의 손자의 손자쯤 되는 나무도 보았다.


 밤에는 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굳이 어딜 가야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정체를 알 수 없는 빛을 발하는 건물을 보기도 했고, 시시각각 색이 변하는 꽃 조명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가장 큰 쇼핑몰이 나왔을 땐 잠시 들어가서 의자에 앉아 쉬기도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Sainsbury라는 마트에서 한국으로 가져갈 간식들을 사 오기도 했다. 저 중에서 성공한 건 피치 시리얼바와 세인즈버리 초콜릿 쿠키 정도? 특히 초콜릿 쿠키는 살면서 먹어본 쿠키 중에 으뜸이었다. 저녁시간이 되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자기 친구들과 함께 저녁 먹고 펍에 가자고 했다. 나는 밤 12시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서 몇 시간 밤을 새우고 아침 비행기를 타야 했다. 마지막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따뜻하게 장식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짐 정리를 마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베트남 쌀국수 집에서 모이기로 했고, 그곳에 들어가자 먼저 와있던 친구와 친구의 후배들이 있었다. 그들과 깊은 대화를 나눌수록 겉보기에는 더없이 멋지고 부족함 없는 삶을 사는 것 같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너도 나도 모두 다 같은 불완전한 인간'이었다. 한국인 유학생들끼리 정기적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일종의 Therapy 시간이 있다고 했다. 평상시에는 꺼내기 힘든 말을 서로 나누며 마음을 치유하고 연대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아닐까 싶다. 이른 나이부터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먼 땅에서 독립해서 사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터였다. 그들은 저마다의 삶을 꾸려감에 있어서 누구나 겪는 성장통을 경험하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보통의 청춘들이자 흔들리며 피는 꽃이었다. 아쉽게도 그들의 꿈과 이상이 무엇인지 들어볼 수 있는 시간까지는 되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의 선을 긋게 만드는, 몇 시간 뒤면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나의 심정은 또 나대로 복잡해졌다. 친구들은 방으로 가서 2차로 술을 더 마실 거라고 했다. 나는 갈 수 없었기에 작별인사를 받으며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그때 우리가 있던 곳은 크릭과 왓슨 박사가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했다는 The eagle 펍이었다. 나는 내 여행의 진짜 마지막을 이곳에서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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