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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Feb 01. 2018

러빙 빈센트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삶


무릇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순간이 온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걸까, 더 나은 길은 없을까, 이게 과연 최선일까. 나의 한걸음 한걸음이 어렵고, 버겁고, 힘들다고 느껴질 때. 오랜 시간 동안 일관된 신념과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은, 사실 기적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자신의 한계와 나약함을 마주한 순간 우리는 덧없이 무너지고 만다. 매일이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으로 치열한 때, 나는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났다. 영화 <러빙 빈센트>에서.


 

영화는 빈센트 반 고흐 사망 1년 후인 1891년으로부터 시작된다. 고흐와 가까웠던 우체부 조제프 룰랭은 아들 아르망 룰랭에게 빈센트가 쓴 편지를 맡긴다. 아르망빈센트의 남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파리행 기차에 오른다. 그런데 테오 역시 빈센트가 세상을 떠난 6개월 후 사망하게 되고, 아르망빈센트의 지인을 하나 둘 만나면서 그의 죽음에 의문을 갖게 된다. 단지 빈센트에 대해 '한쪽 귀를 스스로 잘라버린 광기 어린 예술가'이자 '밤의 카페테라스, 해바라기를 그린 장본인'이라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내용 전개가 다소 충격적일 수 있다. 영화는 빈센트죽음을 둘러싼 의혹과 진실, 삶의 면면을 낱낱이 파헤치기 때문이다. 영화를 통해 빈센트가 예술혼을 불태운 만큼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렸다는 것. 그리고 온갖 불행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는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붓만은 놓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미치광이라고 욕하고, 무시할 때도 그림을 버리지는 않았다. 한평생을 지독한 열정으로 붓칠을 한 그가 진정 위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만의 초를 태운 빈센트 반 고흐.



생전에는 전혀 빛을 못 본 예술가가 어떻게 후대의 수많은 추종자를 낳을 수 있었을까. 되려 영화를 보고 나니 궁금해졌고, 더 알고 싶었다. 빈센트가 사후 명성을 얻게 된 건 모두 테오의 미망인, 요한나 봉거 덕분이었다. 요한나는 생전에 빈센트테오가 주고받았던 수많은 편지를 모아 출판하고, 작품을 전시했다. 테오의 시신을 빈센트의 옆으로 옮긴 것도 요한나였다. 그러면서 문구의 묘비를 의뢰했는데, 두 형제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빈센트 반 고흐 여기에 잠들다.", "테오도르 반 고흐 여기에 잠들다." 그렇게 빈센트테오는 오베르-쉬르-우아즈에 나란히 잠들어 있다.

테오빈센트에게 있어 형제 그 이상의 역할을 했다. 부모님이 빈센트에게 돌아설 때도 동생은 언제나 형의 곁을 지켰고,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빈센트가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테오의 든든한 후원 덕분이었다. 빈센트가 그림에 필요한 물감을 사고, 작업실을 빌리고, 예술가들과 어울리기 위한 비용은 테오의 몫이었다. 빈센트를 늘 지지해준 테오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형제간의 우애와 사랑 그리고 헌신은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에서도 드러난다. 편지에는 빽빽한 글씨와 많은 드로잉이 포함되어 있다. 감정의 기복이 심했던 빈센트는 편지에서도 과감 없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형제의 편지는 800통이 넘는 방대한 분량인데, 주제에는 제한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내게도 테오와 같은 존재가 있다. 두 살 터울의 친언니인데, 한집에서 자라오면서 우리는 서로의 모든 것을 나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부모님께도 말 못 할 비밀스러운 이야기까지. 언니와 매일 대화하고 지내면서 주고받은 영향이 적지 않다. 크고 작은 고민이 생겼을 때에도 내가 제일 먼저 찾는 사람은 우리 언니인데, 언니는 늘 현명하고 객관적인 조언자이자 든든한 지지자의 역할을 한다. 가끔은 언니가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언니는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장애물을 만났을 때, 덜 넘어지고 조금은 더 빨리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다. 아마 빈센트테오를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로 여겼으리라.



"만약 우리에게 도전할 용기가 없었다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헤이그에서 1881년 12월 29일)


인생은 매 순간이 도전이자 과제이다. 안정적인 삶을 이루다가도 어느 순간 변화가 찾아오기 마련이고, 우리는 또다시 균형점을 찾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빈센트처럼 용기를 잃지 않으면 좋겠다. 주위의 시선에 굴하지 말고, 나만의 길을 걸어나갈 것. 내가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일에 집중하고 믿음을 잃지 말 것.  영화 <러빙 빈센트>라는 제목처럼 빈센트는 항상 편지의 끝에 'loving vincent'라는 이름을 남겼다. 이 말처럼 그는 항상 예술을 사랑했고, 테오를 사랑했고, 또 다른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화가의 삶에서 죽음은 아마 별것 아닐지도 모라.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 단언해.

하지만 별을 볼 때면 언젠가 꿈꾸게 돼.

난 스스로에게 말하지.

왜 우린 창공의 불꽃에 접근할 수 없을까?

혹시 죽음이 우리는 별로 데려가는 걸까?

늙어서 편안히 죽으면 저기까지 걸어서 가는 거야.

늦었으니까 자러 가야겠어.

잘 자고 행운을 빌게.

With handshake,

Your loving Vin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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