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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Feb 02. 2018

생 마르탱 운하

FRANCE


파리에는 센 강(La Seine) 말고도 물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바로 생 마르탱 운하(Canal Saint-Martin)다. 누군가에겐 틈날 때마다 가볍게 거니는 산책로가, 다른 누군가에겐 강변에 걸터앉아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는 쉼터가 되기도 한다. 파리에서의 생활이 끝나갈 무렵, 나는 생 마르탱 운하 근처에서 머물며 매일 이곳을 산책했다. 운하를 따라 늘어선 가로수, 선박을 개조한 극장, 예술적 오브제로 가득한 서점 그리고 보석 같은 카페는 곧 떠나려는 여행자의 발길을 붙잡는다. 잔잔한 물살을 가르며 지나가는 유람선의 모습은 언제 바라보아도 아름답다. 배가 지나갈 때마다 무지개 모양의 다리가 수문을 열기 위해 위아래로 움직이는 장면 또한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도심의 혼잡을 잠시 잊게 만드는 평화로운 생 마르탱 운하의 정취는 잊지 못할 '그리움'이다.


Canal Saint-Martin


생 마르탱 운하 곳곳에 노을빛이 도는 저녁 어스름이 물든다. 담벼락의 그라피티라던가 이미 짙게 녹슨 다리는 개성 넘치는 히피족과 어울리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간 파리를 돌아니면서 런던에 비해 조깅을 하는 사람의 수가 적다고 생각했는데, 모두 운하 주변에 모여 있었다. 운동복을 입고 달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또한 많았다. 11월 초의 파리 날씨는 초겨울 같아서 강둑에 오래 머물 수 없었지만 걷기에는 더없이 완벽한 곳이었고, 여름의 풍경이 무척이나 기대되는 곳이었다.



ARTAZART DESIGN BOOKSTORE


파리의 서점 중 으뜸으로 뽑을 수 있는 Artazart! 이 서점에서는 디자인, 건축, 패션, 여행, 일러스트 분야 등의 책은 물론 각종 디자인 용품과 폴라로이드 사진기, 프라이탁 가방 등을 판매한다.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창의적이고 통통 튀는 서적들이 존재한다. 개중엔 한글로 쓰인 독립출판물 형태의 책이 유일하게 한 권 있었는데, 반가움과 동시에 정체가 몹시 궁금하기도 했다. 나의 손길이 가장 오래 머문 것은 역시나 여행 분야의 서적. Martijn Doolaard의 'One Year On A Bike'라는 자전거 여행기다. 생존기에 가까운 모험담을 읽으며 세상에 용기 있는 사람은 정말 많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자각했다. 책의 표지 바로 뒷면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있다. The more you travel, the more you realize how little you've seen.  



BRICKTOP PIZZA


강변에서 소풍을 즐기고 싶었지만 날씨가 따라주지 않으니, 실내에서라도 기분을 내기 위해 피자가게를 찾았다. 모던하고 감각적인 외관을 보자마자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해가 나서 밖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Bricktop Pizza는 피자 전문점답게 다른 식사 메뉴는 없었고, 1인 1판이 가능한 크기의 피자를 파는 곳이었다. 나는 주문과 동시에 피자 반죽을 하고, 화덕에서 구워주는 이곳의 방식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발랄하고 개성 있는 스태프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음식에 대한 기대를 한층 높였다. 얼마 안 기다려서 신선한 재료와 먹기 좋은 크기의 피자가 나왔다. 그런데 맛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우리 모두가 아는 화덕피자의 맛. 원래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피자 도우에서 탄 맛이 매우 강하게 났다. 하지만 먹을 것에 있어서 가리는 게 없는 나는 가뿐하게 먹어 치웠다.



LA MARINE


파리에서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들어가면 긴장부터 된다. 자리를 안내받기 위해 문 앞에서 잠시 기다려야 하고, 메뉴를 건네받으면 읽지 못해서 감으로 주문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커피 메뉴도 불어로만 쓰여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무엇을 시킬지 정하고 나서 직접 말하고 싶어도, 결국 내 손가락이 먼저 글씨를 가리키며 종업원이 잘 알아듣기를 바라는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 나는 카페 La Marine에서도 나는 커피 하나를 주문하기 위해 폭풍 검색을 해야 했다. 평범한 커피는 먹기 싫고 달달한 우유가 들어간 라테가 먹고 싶었는데, 'Cafe Nouisette'라는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카페에서 일할 때 헤이즐넛 시럽병에 분명 'Nouisette'라고 쓰여있었는데! 나는 이게 헤이즐넛이 들어간 커피인가 보다-라는 생각으로 자신 있게 '카페 누아제트'를 외쳤다. 그런데 막상 나온 메뉴는 에스프레소 잔에 담긴 커피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마셔보는데, 맛이 씁쓸한 게 그냥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넣은 것 같았다. 뒤늦게 검색해보니 에스프레소에 약간의 우유를 첨가한 것이 맞았고, Cafe Nouisette으로 불리는 이유는 색깔이 헤이즐넛과 같은 담갈색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에스프레소보다는 낫기에 나름대로 만족하면서 마셨다. 이곳에서는 식사를 해도 좋을 정도로 훌륭한 분위기에, 친절한 웨이터들이 있었다. 실제로 식사를 하는 단체손님들로 북적였다. 또 가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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