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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Feb 06. 2018

몽마르뜨 언덕

FRANCE


파리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파리의 명소는 어디일까? 영화 <사랑해, 파리>를 본다면 조금은 그 답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등장하는 몽마르뜨 언덕. '순교자(Martre)의 산(Mont)'이라는 이름답게 파리 북부에 130m 높이에 있다. 이곳엔 흔히 '치안이 좋지 않은 위험한 지역'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곤 한다. 하지만 몽마르뜨 언덕의 진면모를 알게 된다면, 위험하다는 이유만으로 경계하거나 금방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정상에 위치한 사크레 쾨르 대성당을 마주하기 전까지 파리의 오래된 골목길에 매료되어 거닐다 보면 예술가로 가득한 테르트르 광장을 만날 것이고, 곧이어 낭만이 흐르는 음악 소리가 들릴 것이다. 내가 몽마르뜨 언덕을 두 번, 세 번 방문했을 때도 그날의 상황과 날씨에 따라 각기 다른 인상을 받았지만, 공통적이었던 건 그곳엔 언제나 음악이 함께했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는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음악은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이었고, 비틀스의 팝송이었으며, 이름 모를 재즈곡이기도 했다. 언덕 꼭대기에 도착해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면 파리시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마법의 장소. 바로 몽마르뜨 언덕이다.


Montmartre


 몽마르뜨 언덕을 향해 가는 방법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하철 Abbesses역에 내려 사랑해 벽을 보고, 테르트르 광장을 지나 사크레 쾨르 대성당으로 가거나 혹은 Anvers역으로 가서 푸니쿨라를 타고 곧장 정상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내가 머물고 있는 Voltaire역 부근에서는 버스를 추천했기 때문에 Chateau Rouge역에서 내렸다. 이러한 우연으로 몽마르뜨 언덕에 닿기도 전에 사랑스러운 골목길을 걷게 되었다. 경사진 도로를 따라 늘어선 서점, 빵집, 과일 가게, 꽃집은 저마다의 개성으로 무장한 듯 보였다. 어느 것 하나 같은 색감을 쓰지 않았지만 묘하게 조화로웠다. 그중에서 나의 눈을 사로잡은 건 Meme dans les Orties라는 꽃집이었다. 가게 입구부터 온갖 꽃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고, 그 안에는 고상한 분위기를 지닌 주인이 꽃다발을 만들고 있었다. 주인 언니에게 한 송이로 구입할 수 있는 꽃은 어떤 것이 있는지 여쭈어 보았더니, 하던 일을 멈추고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꽃을 고르는 일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인데, 내가 나에게 선물을 하려니 쑥스러우면서도 신이 났다. 나의 선택은 영롱한 아름다움을 지닌 주황색 장미였다. 친구들도 나와 같은 장미꽃을 골랐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에게 주는 꽃 선물에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몽마르뜨 언덕에 도착했을 때는 맑은 날, 그것도 해가 쨍쨍한 한낮의 오후 즈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사크레 쾨르 대성당(Sacré-Cœur)의 돔과 기둥의 구조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웅장하고 위엄 있는 성당의 공간감에 넋을 놓고 감탄하다가도 뒤를 돌면 보이는 파리의 전경에 또 한 번 놀라게 됐다. 때마침 저 멀리에서 흐르는 음악은 영화 <인셉션>의 ost로 유명해진 에디트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 이 곡을 하프 연주로 들으니 어딘가 오묘하고 색달랐다.



 사크레 쾨르 대성당의 뒤편에서 조그만 샛길을 따라 이동하면 테르트르 광장(Place du Tertre)이 나온다. 수많은 화가들이 이젤과 이젤 사이에서 풍경화 혹은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예술가들의 맞은편에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했다. 아무래도 관광지답게 일부 레스토랑에서는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간간이 피어오르는 음식 냄새는 관광객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우리도 점심을 먹기 위해 La Cremaillere 1900이라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듣자 하니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크레페가 식사 대용이라고 하길래 시켜 봤는데, 너무나 디저트 같은 비주얼의 아이스크림 크레페가 나왔고 맛 또한 굉장히 익숙했다. 다만 햇살이 좋아서 테라스에서의 식사 분위기만큼은 가히 최고였다. 왜 유럽 사람들이 희미한 햇살에도 바깥에 나와서 커피를 마시고, 식사를 즐기는지 알겠더라. 참, 테르트르 광장에는 예술인의 동네답게 독특한 인테리어의 스타벅스가 있다. 아메리카노라는 메뉴를 찾아볼 수 없는 프랑스 정통 카페에서 스타벅스는 한 줄기 빛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좁은 골목길을 둘러싼 화가들의 작품, 크레페 굽는 냄새, 기념품 가게,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이 가득한 테르트르 광장은 몽마르뜨 언덕의 또 다른 면모다.



 테르트르 광장에서 Abbesses역 쪽으로 내려오면 사랑해벽(Le mur des je t'aime)이 있는 작은 공원이 나온다. 전 세계의 언어로 '사랑해'라는 말이 쓰여 있는 사랑해벽. 내가 아는 '사랑해'라는 표현은 몇 개나 될까? 이 중에서 혹시 틀리게 써진 건 없을까? 이런 낭만적인 발상은 누가 한 거지?라는 생각을 하며 파란 벽의 무수한 언어들을 바라보았다. 개중에는 내가 읽을 수 없는 언어가 90%였지만 하나같이 예뻐 보였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자신의 나라의 말 앞에서 사진을 찍는 거 같아 나도 한국어로 '사랑해'라고 쓰여있는 곳에서 하트 모양의 손짓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몽마르뜨 언덕 여행의 마무리는 물랭 루주(Moulin Rouge)였다. '붉은 풍차'라는 뜻의 물랭 루주는 아마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댄스홀이 아닐까 싶다. 근방에 유흥 업소가 있어서 그런지 물랭 루주 또한 내 눈에는 어딘가 불온해 보였는데, 밤에는 네온사인 조명으로 인해 더욱 화려할 것만 같았다. 나중에 파리지앵 부부의 집에서 카우치 서핑을 할 때 듣게 된 얘기인데, 아직도 이 지역에는 사창가가 존재한다고 했다. 그래서 파리 북역이 위험하다는 말이 나온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두 번째로 몽마르뜨 언덕에 갔을 땐 사촌동생과 함께였다. 내가 가장 좋았던 장소를 동생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마치 파리 여행의 하이라이트처럼 꽁꽁 숨겨두었다가 날씨 좋은 날 함께 가게 되었다. 한 달 뒤 다시 찾아온 몽마르뜨 언덕을 보면서 여전히 예술의 혼이 느껴지는 동네구나, 하며 버스킹 공연을 보기 위해 계단에 걸터앉았다. 그날 공연을 하던 분은 유독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재치 있는 농담을 건네는 사람이었다. 한껏 달아오른 유쾌한 분위기에서 그분은 우리에게도 말을 건네셨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기에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나와서 같이 노래를 부르자고 하셨다. 사실 내가 혼자였다면 그전에 타깃이 된 다른 외국인들처럼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했을 텐데, 사촌동생이 함께 있어 왠지 용기가 났다. 동생은 나보다 더 용감하게 내 손목을 잡으며 '나가자 언니!'를 외치더라. 


 우리는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일단 부르시니까 앞으로 나갔다. 그런데 세상에, 우리에게 함께 부르자고 한 노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었다. 이제는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지구촌을 하나로 만든다. 우리가 애써 부르지 않아도 기타리스트의 신명 나는 기타 연주에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사람이 옆에서 춤을 추자 현장은 한층 더 흥이 올랐다. 다행히 분위기를 망치는 위험은 면했고, 노래가 끝나자 부끄러움이 물밀듯 찾아왔다. 그래서 마무리 인사를 하고 줄행랑치듯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등 뒤로 사람들이 웃는 소리가 들려오자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실성한 사람처럼 웃으며 뛰어가고 있었는데, 뒤에서 누가 '저기요!'하고 부른다. 타지에서 들려오는 우리말에는 반응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어 뒤를 돌아보니, 한 여성분께서 아까 우리가 공연할 때 뒤에서나마 영상을 찍었다고 하셨다. 우리는 연거푸 감사 인사를 하며 영상을 전달받았다. 참, 별일이 다 생긴다. 


 그 이후에 세 번째로 몽마르뜨 언덕에 갔을 때는 혼자였다. 사촌동생이 포르투갈에 간 사이 나홀로 파리에 지낼 때였다. 그땐 특별한 목적 없이 그냥 그 공간에 있고 싶었다. 제법 추워진 날씨에 따뜻한 와인과 빵을 사들고 계단에 걸터앉아서 끼니를 때우며 경치를 감상했다. 저 멀리엔 파리의 전경이 보였고, 가까이엔 곧 버스킹 공연을 하려는 듯 보이는 남자가 작게 리허설을 하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언제나 평화롭고 활기찬 몽마르뜨 언덕. 내겐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존재하는 파리의 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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