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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Feb 07. 2018

시테섬과 생루이섬

FRANCE


ODE -- Arthur O'Shaughnessy


We are the music-makers,

And we are the dreamers of dreams,

Wandering by lone sea-breakers,

And sitting by desolate streams;

World-losers and world-forsakers,

On whom the pale moon gleams:

Yet we are the movers and shakers,

Of the world forever, it seems.


우리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꿈꾸는 몽상가들,

외로운 파도를 따라 떠돌고,

쓸쓸한 시냇가에 앉은;

세상의 실패자들 그리고 세상을 등진 자들,

우리를 비추는 것은 창백한 달빛:

하지만 우리는 영원히 세상을 움직이는 자,

뒤흔드는 자일 지도 몰라.


Cite


파리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시테섬(Cite)은, 이름만 들으면 마치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할 것 같지만 센강 위의 '다리 하나'만 건너면 쉽게 닿을 수 있는 장소다. 사실 여기가 섬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지 '다리 하나'가 육지와 섬의 경계를 가른다. 시테섬에는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뿐만 아니라 생트 샤펠 성당(Sainte-Chapelle), 콩시에르주리(Conciergerie)와 같은 관광명소 그리고 사법부, 경찰청 등의 정부청사가 위치한다. 마침 내가 시테 섬에 갔을 때는 11월의 첫째 주 일요일, 파리의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에 무료입장이 가능한 날이었다. 대부분의 성당 내부 또한 무료로 개방하고 있었다. 여행 일정을 짤 때 미리 고려해 입장료가 비싸서 못 가던 곳들을 매월 첫째 주 일요일에 가면 좋을 것 같다. 우연히 당일날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신이 나서 이른 아침부터 마레 지구의 피카소 박물관(Musée National Picasso)을 본 후, 이곳 시테섬의 성당과 박물관 곳곳을 돌아다녔다. 낮에도 밤에도 연일 북적이는 사람들로 가득한 이 섬엔 기분 좋은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  



Shakespeare & Company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와 <비포 선셋>에 등장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Shakespeare & Company) 서점 또한 시테섬에 있다. 짙푸른 초록빛의 서점 외관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안쪽으로 들어섰다. 여느 서점처럼 책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세기의 작가들에게 아지트와 같은 존재였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이 서점을 보면서 나도 꿈꾸었다. 언젠가는 그 누구라도 편히 들어와 머물 수 있는, 잠도 잘 수 있는 책방을 열고 싶다는.   


 '낯선 사람을 냉대하지 말라. 그는 변장한 천사일지도 모르니'.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 쓰여 있던 문구다. 계단을 오르자마자 좁디좁은 공간에 거의 구겨지다시피 앉아서 토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곳곳이 시와 문학으로 물들어 있는 이 서점에서, 나는 엽서 몇 장과 에코백 그리고 봉투에 담긴 시를 샀다. 봉투를 열어보니 영국의 시인인 아서 오소네시의 작품이 있었다. We are the music-makers..로 시작하는 시. 아서 오소네시는 그저 몇 줄의 시로 수많은 영혼을 달랬을 것 같다. 시를 산다는 것은 그 누군가의 신념과 가치관을 엿보는 기회를 사는 것과 같다. 우리는 스스로를 세상의 실패자로 여기기보다는 세상을 움직이는 자라고 여겨야 한다. 하루하루의 작은 도약에도 기꺼이 자부심을 가지고. 어떠한 절망감이 찾아와도 그것 또한 있는 힘껏 받아들이고, 극복할 줄 아는 강한 영혼이 되고 싶다.



Saint-Louis


여행자와 생활자가 한데 뒤섞여 활기찬 분위기가 지배적인 시테섬과 달리 생루이섬은 꽤나 한산하다. 의식하지 않고 걷다 보면 금방 섬을 벗어나게게 되므로 이곳에서는 지도를 보지 않고, 아무렇게나 걸어 다녀도 좋겠다. 생루이섬으로 통하는 다리에는 역시나 음악이 흐른다. 과연 음악이 낭만적인 운치를 자아내는 건지, 낭만적인 운치에 음악이 따르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중후한 목소리가 돋보이는 여자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쑥스러워하면서도 꿋꿋이 노래를 이어나가는 여자의 모습을 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고요하고 완벽한 시간이었다. 왠지 생루이섬에서 여러 형태의 아름다움을 가득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좁다란 골목길 사이마다 식료품점, 크레페 가게, 다양한 소품샵이 있었다. 그리고 와인 가게! NICOLAS라는 이름의 와인 가게는 하루의 끝을 완벽하게 물들였다. 와인의 본고장에서 맛볼 수 있는 와인은 끝도 없지만, 나는 이곳에서 만족할만한 여러 종류의 와인을 값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병에 10유로도 안 하는 와인도 무지 많았다. 영어를 잘하는 친절한 점원의 추천을 받고 레드, 화이트, 로제, 샴페인 등 각기 다른 류의 와인을 한 아름 안아 들었다. 세상에서 최고로 부자가 된 기분! 나중에 알고 보니 니콜라는 프랑스의 대표 와인전문점이라 파리 시내 도처에 있었다. 와인 병을 상자에 담아주시기 때문에 선물용으로도 아주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루이섬을 자유로이 배회하며 강변에 앉아 와인을 마시는 순간, 또 다른 음악이 들려왔고 파리가 내 것이 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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