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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Feb 26. 2018

오르세, 오랑주리, 퐁피두센터

FRANCE


'예술은 우리의 영혼을 일상의 먼지로부터 씻어준다'는 파블로 피카소의 말처럼, 나는 예술에는 일상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제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닌 예술작품 앞에서 인간은 생각에 잠기고, 음미하고, 의미를 발견한다. 그 의미란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일 수 있고, 섬광처럼 스쳐가는 희망일 수도 있다. 내면에 깃든 예술은 한 인간의 신념을 형성하기도 한다. 나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닌 그저 보는 사람으로서, 작품을 분해하는 미학적 관점을 지녔다기보다는 상상력을 더한 직관을 지녔다고 보는 편이 옳다. 지식 없이 작품을 감상하고 내게 특별히 와 닿은 그림 혹은 화가에 대해 나중에 찾아볼 때가 많다. 또 여러 미술관을 배회하며 알게 된 나의 취향은 줄곧 현대미술 쪽으로 기울어 있었으며, 그나마 19세기의 근대까지 포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파리가 간직한 수많의 예술의 흔적 중 내가 멈춰 선 곳은 오르세, 오랑주리, 퐁피두센터가 아니었나 싶다. 예술의 극치를 품은 이 도시에서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Musée d'Orsay 


 무엇이든 처음이 지닌 의미는 각별하듯이, 오르세 미술관은 내게 유럽여행 첫 도시인 파리에서 가장 처음으로 가게 된 장소라 더욱 유의미하다. 날이 밝자마자 열 장 묶음의 일회용 대중교통 승차권인 까르네(Carnet)를 이용해 버스를 타고,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했다. 조용한 동네에서 조금만 벗어났을 뿐인데 파리의 활기찬 아침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버스의 차창 밖으로 막 영업을 시작하려는 상점들과 출근하는 파리 사람들의 모습이 교차했다. 이윽고 크리스털처럼 빛나는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도 볼 수 있었다. 어서 버스에서 내려 파리의 상징들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강변에 자리 잡은 오르세 미술관 덕분에, 센 강을 거닐며 유유히 지나가는 유람선의 모습 또한 포착할 수 있었다. 아직 시작도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오늘의 여정이 완벽할 것만 같은 기대감에 휩싸였다. 소지품을 검사를 거쳐, 오르세와 오랑주리 통합권을 사고, 오디오 가이드까지 목에 걸고 본격 전시회 관람 준비 끝!

 

 기차역사에서 1986년 미술관으로 변신한 '뮤제 드 오르세'의 정중앙에는 황금빛의 동그란 시계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과거에 마치 기차를 타려는 그 누구라도 기차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만 같은, 크고 화려하고 위엄을 지닌 시계 말이다. 시계 밑으로 전시된 여러 조각상은 이렇게 무방비로 놓여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동상만 봐도 한 시간은 훌쩍이겠다- 싶었다. 양 방향으로 나있는 전시장 입구를 보니 어느 곳부터 가야 할지 망설여지기도 했다.

 작품을 보면서 든 생각 하나는, 13시간의 비행시간을 거쳐 공간을 이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 오르세 미술관에 왔더니 19세기로 시간을 이동했다. 시공간을 동시에 이동했다는 사실에 현실감각마저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근대미술의 작품을 보는 동안 잠시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땅에 들어서서 존재할 수 없었던 시간 속에도 상상으로나마 들어가 본다. 눈 앞엔 종교적 사상을 기반으로 한 작품, 생의 자연을 가감 없이 표현한 작품, 그리고 이름 정도는 익숙한 빈센트 반 고흐, 모네, 세잔 등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무수히 쏟아졌다.

 

 또 다른 생각 하나는, 그림을 둘러싼 액자의 모양이 제각각이어서 그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림이 완성된 당시에 쓰던 액자를 그대로 전시한 것인지 혹은 후대의 작업을 거쳐 전시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그림과 그를 둘러싼 액자가 그렇게 조화로울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특히 찰스 섀넌의 잠자는 요정(Nymphe dormant)이라는 그림의 원형 액자는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액자의 크기 면에서도 다양성이 돋보이는데, 전시관마다 한눈에 들어오는 크기의 액자도 있지만 저 뒤로 물러나야 전체를 볼 수 있는 액자도 있다.

 

 오르세 미술관의 정수는 뭐니 뭐니 해도 원형 시계 뒤편에서 바라보는 파리의 전경이 아닐까 한다. 걸작을 뒤로하고 미술관의 건축양식을 꼽는다는 게 모순이 아닐까 싶지만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도시의 모습과 역광이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아름다움의 풍요'를 실재하게 한다. 유리 안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이 너무도 적당해서 눈앞의 풍경을 초현실적으로 보이게 한다. 이 모든 것을 구상한 이가 누굴까, 외경심마저 들 정도였다. 그렇게 파리에 대한 인상은, 오르세 미술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Musée de L'Orangerie


 '뮤제 드 오랑주리'는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오렌지 온실'이라는 뜻의 미술관이다. 원래 루브르 궁전의 튈르리 정원에 있는 오렌지 나무를 위한 겨울 온실이었기 때문에 오랑주리를 가는 길에도 루브르를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을 외관으로 두 번이나 봐서인지, 그곳에 고대부터 중세 르네상스 시기의 작품이 주를 이뤘기 때문인지, 혹은 둘 다인지 몰라도 나는 결국 루브르에는 가지 않았다. 언젠간 갈 기회가 있겠지-하는 막연함 정도로 남겨두련다.


 오랑주리를 대표하는 모네의 수련 연작 전시실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언제 와도 이곳에서 조용한 분위기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8점의 수련 연작이 관람객을 둘러싸고 있는 형상은 매우 인상적이었고, 세로로 긴 형태의 전시장은 파노라마로도 담기 힘든 규모였다. '빛의 화가' 클로드 모네. 그가 그려낸 작품세계는 인상주의라는 하나의 파를 형성했고, 후대의 수많은 추종자를 낳았다. 그의 수련에 표현된 보라색이 얼마나 다채롭고 신비한 인상을 자아내는지, 보고 또 봐도 감탄스러웠다.


 오랑주리 미술관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과 상당히 비슷했다. 하얀 벽과 적당히 노란 조명 그리고 길쭉하게 나있는 유리창. 오랑주리에 들어서고 나갈 때까지 내내 MMCA와 흡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술관은 MMCA이다. 때마다 바뀌는 전시 내용과 그 구성이 여타 미술관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훌륭하기도 하지만, 공간 활용을 이보다 잘하는 곳을 못 봤다. 바로 건너에는 경복궁 돌담길이 있어 주변 환경 또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Centre Georges Pompidou


 서울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다면, 파리에는 퐁피두센터가 있다. 하지만 퐁피두 센터는 좀 더 복합문화공간에 가깝다. 현대미술관과 함께 극장, 도서관, 전망대, 카페, 레스토랑 등 모든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알랭 드 보통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혹은 <우리는 사랑일까>와 같은 소설을 파리를 배경으로 쓴다면 남녀 주인공의 데이트 장소로 반드시 언급될 것만 같다. 퐁피두 센터라는 하나의 공간만으로도 ‘완전함’이 전해진다. 이곳의 입지를 증명하듯 전시를 보기 위해서나 도서관에 가기 위해서는 긴 줄을 서야 했다.

 

 1969년 당시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의 구상에 의해 지어진 퐁피두 센터는 외관부터 남다르다. 언뜻 보면 공사 중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철제 구조물을 그대로 드러냈다. 또한 거대한 에스컬레이터가 투명한 튜브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광장에서 건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퐁피두 센터 앞 광장에는 언제나 거리 예술가들의 공연이 펼쳐진다. 음악과 춤이 있는 곳에 사람들은 모여들기 마련이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프랑스의 화가 <앙드레 드랭>의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화가여서 그의 작품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런데 시간에 흐름에 따라 드랭의 화풍이 바뀌는 것이 확연하게 보였다. 알고 보니 그는 활동 초기에 앙리 마티스와 함께 밝은 색채 위주의 대담하고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선보였지만, 그 후엔 고대 예술을 연상시키는 전통적인 양식의 고전주의적 화풍으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야수파와 입체파를 조합한 독창적인 기법을 거쳐 마지막엔 고대 회화 기법으로의 회귀라니. 그간 하나의 화풍을 올곧게 고수해온 예술가들의 작품을 봐왔던 터라,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다. 나는 특히 드랭이 런던을 방문했을 당시 영감을 받아 그린 풍경화가 인상 깊었는데, 내가 바라본 런던과 어떻게 비슷하고 다른지 짚어보기도 했다. 당시 모네와 터너의 영향을 받아선지 드랭의 런던은 좀 더 말갛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앙드레 드랭> 전의 바로 아래층에는 디자인, 사진, 건축, 뉴미디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대한 양의 ‘컨템퍼러리 아트’ 전시장이 있었다. 이 구역은 입장권을 사지 않고도 관람이 가능한데, 사실 이곳만 보더라도 반나절은 훌쩍 넘길 것 같았다. 온갖 형태의 현대미술 작품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꼼꼼히 보다가도 마지막엔 거의 스쳐가듯 지나친 전시장이 꽤 된다. 전망대로 향했을 때는 마침 해가 저물고 있었고, 저 멀리 몽마르트르 언덕과 에펠탑이 보였다. 고개를 낮추자 광장에 머무는 사람들이 마치 또 하나의 설치미술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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