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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Jun 03. 2018

엑상프로방스, 아비뇽, 마르세유

FRANCE


남프랑스의 대표적인 세 도시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 아비뇽(Avignon), 마르세유(Marseille)는 가히 '도시'라 칭할만했다. 그것도 '걷기 좋은 물의 도시'. 어딜 가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볼거리가 풍부했으며, 마르지 않는 물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담담히 흐르는 강물이거나, 대지를 품은 바다이거나, 하다못해 분수에서 시원스레 내뿜는 물이거나. 엑상프로방스의 한 식당에서 물을 넓고 긴 병에 아무런 대가 없이 제공해준 것은 유럽의 땅에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에,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두 번째 WWOOF를 하는 동안 당일치기로 다녀왔던 여행의 기록이기에 다소 짧고 간결한 기억으로 남았지만, 그날의 잔상은 시간을 멈춰 서게 만드는 힘이 있다.


Aix-en-Provence


 이국의 여행자에게 엑상프로방스의 관광 지도는 반갑기 그지없었다. 한국어 지도가 따로 있었기 때문에. 한국어와 중국어 그리고 불어가 한데 섞여 있긴 하지만 흔치 않은 경우임은 분명했다. 광장과 분수대를 따로 표시할 정도로 엑상프로방스는 크고 작은 광장과 '물의 도시'라는 이름에 맞는 각양각색의 분수대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엑상프로방스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유명한 분수인 로통드 분수(Fontaine de la Rotonde)를 마주했다. 그 건너편에는 20세기 회화의 거장 폴 세잔의 동상이 있었다. 광장을 따라 거니는데, 세잔의 흔적은 곳곳에 녹아 있었다. 그가 에밀 졸라와 함께 자주 찾던 카페 레 되 가르송(Les Deux Garcons)을 지나가며 보게 됐고, 거리마다 세잔과 관련된 학교, 아뜰리에, 박물관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엑상프로방스가 지닌 특유의 고고한 분위기는 여타의 도시들과 비교할 수 없을 것 같다. 노랗게 부서지는 햇살이 고스란히 물든 듯, 투명하게 빛나는 옅은 색의 건물들이 하나같이 인상 깊었다. 세월의 흐름을 간직한 이 도시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역동성 때문이기도 했다. 교향악단의 활기찬 연주처럼 광장으로부터 뻗어나간 길목마다 사람들이 음표처럼 흐르고, 또 흘렀다. 한낮의 오후에 적당한 인파 속에 섞여 자유로이 배회하던 순간이었다. 배가 슬슬 고파져 트립어드바이저에 음식점을 검색해보니 꽤 높은 순위에 Aux Petits Oignons라는 핫도그 집이 올라 있었다. 보통 미슐랭 가이드에 등록된 레스토랑이 상위권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독특했다. 엑상프로방스에 각종 대학교가 많다더니 학생들의 맛집인 건가? 나도 사촌동생 지현이를 이끌고 가보았다. 그곳은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는 작은 규모의 식당이었다. 게다가 내부는 종업원 한 명이 서있기에 딱 적당한 정도였다. 우리는 맞은편에 놓인 야외 테이블에 앉아 핫도그 두 개와 이 지역에서 생산한다는 수제 맥주를 주문했다. 매우 상냥하고 친절했던 종업원 언니가 가장 먼저 갖다 준 것은 무료로 제공되는 물! 물맛이 확실히 달랐다. 공짜여서 더 맛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로마 시대 때부터 유명했다는 엑상프로방스의 광천수는 신선하고 깔끔했다. 기대감이 컸던 핫도그의 맛은 훌륭했다. 사실 핫도그나 수제버거는 웬만하면 평타 이상은 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녔기에 감탄사가 마구 흘러나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또 먹고 싶은 맛이었다.



 엑상프로방스에서 했던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나는 일말의 주저 없이, '결혼식 구경'을 꼽을 것이다. 지현이와 나는 교회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교회의 고요하고 성스러운 분위기와 함께 조금씩 다른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보는 일은 마음속에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사실 걷다 보니 다리는 아픈데, 시원한 곳에서 쉬고 싶을 때 교회만 한 곳도 없었다. 이번에도 우리는 자연스레 한 교회 안에 들어갔고, 공연 리허설 비슷한 것이 진행되고 있었다. 혹여 방해가 될까 맨 뒷자리에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었는데 어느 순간 정장과 드레스를 차려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고, 얼떨결에 나갈 타이밍을 놓쳐 그대로 앉아 있게 되었다. 누군가 팸플릿 종이를 건네주어 최선을 다해 읽어보니 그것은 결혼식이었다. 우리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내쫓지 않고 하객의 일원으로 껴주신 것이 감사해 우선은 자리를 지켰다. 잠시 후 뒤를 돌아보니 앳된 얼굴의 신랑 신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입장을 했다. 그리고 목사님의 주례(?) 같은 것이 이어진 후에, 아까 리허설을 하던 사람들이 축가를 불렀다. 나와 아무 연고도 없을지라도 방금 탄생한 부부와 저들의 가족, 친구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순간일 거라는 생각이 들자, 이 순간이 귀하고 감사했다. 한동안 지현이와 나는 엑상프로방스에서 본 결혼식 이야기를 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결혼식을 봤다는 것이 좀 웃기긴 하지만, 그 도시의 아름다움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일화로 남게 되었다.   



Avignon


 아비뇽은 우프를 하며 머물고 있던 마을과 가장 가까운 곳이어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도 안 걸려 도착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거리는 비교적 한산했다. 갓 구운 빵을 파는 한 카페의 종업원만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분명 하늘은 맑고 푸른데, 무척이나 쌀쌀했다. 그렇게 느끼게 하는 건 거센 바람이었다. 몸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추위에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후회감이 들었다. 따뜻한 옷이라도 가져왔어야 했는데, 하필 더 얇게 입고 나왔다. 바람이 도무지 멈출 생각을 않자 우리는 들어갈 수 있는 실내란 실내는 다 찾아 들어갔다. Marche les Halles d'Avignon이라는 농산물 시장에 가보았고, 역시나 교회 구경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일순간 해가 내리쬐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날씨가 따듯해졌다. 이때가 기회다 싶어 아비뇽 교황청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광장에서 이탈리아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이탈리아 전통음식과 디저트, 술, 신발, 가방 등을 팔고 있었고 무대에선 이탈리아 밴드가 흥겨운 노래를 부른다. 남프랑스에서 이탈리아 축제라니!  



아비뇽을 둘러싸고 유유히 흐르는 강은,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꼬뜨 뒤 론(Cotes du Rhone)'의 그 론 강이다. 아비뇽 대성당(Notre Dame des Doms d'Avignon)을 지나 로쉐 데 돔(Rocher des Doms) 공원의 꼭대기에 오르면 이 도시의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나는 중세식 지붕이 돋보이는 건물 너머로 보이는 론 강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내려왔다. 7월이면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 축제가 열린다는데, 그때에 맞춰 여행 일정을 잡는 것도 좋을 것 같다.



Marseille


 '프랑스 제2의 도시' 자리를 두고 항상 리옹과 함께 언급되는 이곳. 파리 다음으로 가장 큰 도시, 마르세유다. 무엇보다 지중해 바다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나를 가장 들뜨게 만들었다. 10월이지만 분명 이곳은 남프랑스니까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수영복까지 챙겼다. 반나절의 시간 동안 둘러볼 수 있기에 사실 바다로 곧장 가도 됐지만, 도시의 전경을 보는 것만큼 여행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일은 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전망이 좋다는 노트르담 성당(Basilique Notre-Dame de la Garde)을 찾아갔다. 사실 노트르담 성당은 파리에만 있는 건 줄 알았는데, 노트르담이라는 명칭 자체가 성모 마리아를 뜻해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성당의 이름으로 흔히 사용된다고 한다. 노트르담 성당은 차나 버스로도 올라갈 수 있지만, 우리는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마르세유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있다더니, 경사가 엄청났다. 이마에 땀이 맺히도록 열심히 걸으니 눈앞엔 항구도시의 웅장한 경관이 펼쳐져 있었다. 



 해변으로 향하기 위해 버스를 타려는데, 기사 아저씨께서 돈을 안 받으셨다. 그러더니 이런 거 꼬박꼬박 받는 사람들도 있는데, 자긴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유쾌하게 말씀하셨다. 후한 인심(?) 덕에 우리의 기분은 더욱 좋아졌고 이제 남은 일은 지중해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것뿐이었다! 버스는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고 차창 밖의 풍경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구글 맵스에서 비교적 높은 평점의 해변을 찾아보니, Plage du Prado라는 곳이 괜찮은 후기가 많아 그곳과 가까운 정류장에서 내렸다. 바다 앞에 당도하니 곧바로 달려들고 싶었지만, 역시나 모래사장에 앉아서 놀고 있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바닷속에 입수한 사람은 손에 꼽았다. 그들에게도 10월의 수영은 약간은 도전인 것 같았다. 지현이랑 나도 가볍게 준비운동을 한 후 발을 담가 보는데, 생각보다는 덜 차가웠지만 확실히 기분 좋게 수영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이곳에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르는데 발만 적시고 갈 순 없었다. 결국 시원하게 입수했고 젖은 상태에서 옷을 다시 입어도 하나도 찝찝하지 않았다.

 

  마르세유에도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깊은 의미가 있는 랜드마크가 분명 많다. 하지만 반나절이라는 짧은 시간은 무언가를 꼭 보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보다, 되려 여유롭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구경하고 와야겠다는 마음을 들게 했다.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바라본 하늘에 짙게 물드는 노을을 보니 얼른 나의 우프 하우스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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