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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Jun 28. 2018

나는 '나'를 선택할 수 있다, 영화 <변산>

La vita è un film


* 좋은 영화 선물해주신 브런치 무비패스 관계자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시는 배우 박정민 님이 이 글을 읽으실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감을 안고 리뷰를 남깁니다.



 부모 자식 관계에서, 부모는 자식이라는 존재를 갖느냐 마느냐를 선택할 수 있지만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난다면 나는 평생 그 누군가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또한 성인이 되기까지 우리는 부모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서 길러진다. 부모의 가치관, 사고방식, 생활방식이 자식에게 전달되고 자식은 부모로부터 세상을 배워나간다. 그들의 세계가 곧 나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김수영 작가는 <마음 스파>에서 '어린 시절 부모는 우리에게 우주 그 자체'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의 우주가 흔들리고 아프면, 우리는 그 어떤 고통보다도 깊고 쓴 통증을 느낀다. 부모와의 갈등은 자식의 인생 전체를 흔들기 마련이고, 그 속의 상처는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는다.

   세상의 모든 인간이 완벽하지 못한 것처럼 부모도 완벽할 수 없다. 따라서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극복해 나가야 한다. 적어도 나는 '나'의 인생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변산>의 주인공 학수도 아버지 앞에서 '아빠가 없을 때가 엄마와 나의 유일한 봄날'이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깊은 상처를 가진 영혼이지만, 자신의 결핍과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감한 인간이다. 나는 인간 김학수를 보면서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은 없고, 결국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가르침을 얻었다.  



 학수에게 있어서 고향은 지우고 싶은 흔적이다. 놀음과 싸움을 일삼는 건달 아버지, 그리고 암에 걸려 세상을 일찍 떠난 어머니, 자신의 습작 노트를 훔쳐 문학상을 받은 교생 선생님, 용기를 내어 고백을 했지만 그의 진심을 무참히 차 버린 미경이. 온통 아픈 기억으로 얼룩져 있을 뿐이다. 그런 학수를 서울에서 변산으로 다시 불러낸 건 고교 동창 선미의 전화 한 통이었다.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에 계신다는 내용의 전화. 그렇게 10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은 여전히 그에게 모질다. 친구들과 술 한잔 하기 위해 동네 편의점에 갔다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지 않나, 학수에게 어렸을 때 괴롭힘 당했던 친구 용대가 조폭이 되어 복수를 하려고 하지 않나, 교생 선생님은 기자가 되어 미경이랑 사귀고 있지를 않나. 무엇보다 아버지. 학수의 아픈 손가락인 아버지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게 된 고향 변산에서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학수는 자신의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사실 학수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선미의 공헌이 크다. 선미는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에게 막말을 내뱉고, 폭력까지 행사하는 학수에게 '아버지와 똑같은 놈'이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과거에 학수가 어머니 장례식장에서도 들었던 말이다. 이후로 학수는 자신이 직면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를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아버지가 물려준 부정적인 정신적 유산을 끊어내고, 인간 대 인간으로 아버지를 대한다. 그는 랩 가사에도 솔직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아픔을 녹여낸다. 학수가 내면의 어두운 바다를 살피지 않고 그저 흘러가게 두었더라면, 그 삶은 결국 아버지에게 종속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학수 스스로 '내 삶'과 '내 마음'의 주인이 되었고, 그 누구에게도 이끌려 다니지 않았다.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것은 노을 밖에 없네

 사실 <변산>은 보는 내내 유쾌함으로 가득 찬 코미디 영화였고, 아무 생각 없이 보기에 더없이 좋았다. 하지만 그 속에 내려앉은 메시지는 선명했다. 나는 어떤 '나'를 선택할 것인가, 어떤 '나'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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