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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건우 Mar 29. 2018

옵션과 레버리지, 리포 대출

옵션과 레버리지, 리포 대출
  
  
17세기 트레이더들은 ‘커버드 콜’ 같은 파생 금융상품을 잘 사용해서 리스크를 커버하기도 했지만, 사실 이들이 옵션을 사용했던 주된 이유는 대부분 좀 더 큰 리스크를 가져오기 위해서였다. 큰 리스크를 감수한다는 건 그만큼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뜻이다. 트레이더들은 옵션 같은 파생상품이 가져다주는 ‘레버리지(지렛대)’효과를 좋아했다. ‘레버리지’란 돈을 추가로 투자하지 않은 채 지렛대 효과를 통해 리스크만 확대하는 행위를 이른다. 17세기 암스테르담에선 옵션뿐 아니라 선도 거래와 ‘리포’역시 ‘레버리지’효과를 내는 데 쓰였다.
  
1675년 3월 그는 장부가 36,000길더어치의 VOC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이를 더 늘리고 싶어서 5개의 ‘콜 옵션’을 샀다. 각각 장부가 3,000길더의 지분이었다. 만일 이 5건의 권리를 모두 행사하면 그의 VOC 지분은 장부가 51,000길더로 불어날 것이다. 지분 가격이 떨어지면 옵션은 행사하지 않고 원래부터 갖고 있던 지분에 대한 가격 하락 분만 감수하면 된다.
  
선도 거래 역시 투자 포트폴리오의 ‘레버리지’를 높이는 데 아주 효과적이었다. 선도 거래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약속한 금액으로 아주 효과적이었다. 선도 거래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약속한 금액으로 사겠다는 약속이다. 일단 약속만 하는 거시므로 정해놓은 날짜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당장 돈을 써야 할 일이 없다. 그러니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선도 계약을 맺을 수 있다. 맺어놓은 선도계약이 쌓일수록 가격 변동에 대한 리스크도 커진다. 즉, ‘레버리지’가 늘어난다. 그런데 옵션과는 달리 선도 거래의 리스크는 양쪽 방향으로 다 작용할 수 있다. 선도 거래로 지분을 산 사람은 지분 가격이 오르면 이익을 보고, 가격이 떨어지면 손해를 본다.
  
선도 계약을 많이 사면 당사자뿐 아니라 그 사람과 거래하는 상대의 리스크 역시 커진다. 지분 가격이 크게 떨어질 경우 ‘레버리지’를 너무 많이 높여놓은 트레이더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피해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할 위험이 있고, 상대방 입장에서는 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파산 리스크는 옵션을 발행하는 트레이더들 역시 안고 있다.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수의 옵션을 발행했다가 가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급격히 움직여버리면 발행자는 큰 손실을 입게 되는 것이다. 옵션을 많이 발행할수록 파산할 위험도 커진다.
  
그렇기 때문에, 계약을 중개하는 브로커들은 각각의 트레이더들이 얼마큼의 옵션과 선도 계약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파악하려고 애를 썼다. 누군가 너무 용감하게 많은 옵션, 선도 거래를 하고 있다고 생각되면 브로커는 고객에게 그런 사람을 연결시켜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전에 고객과 계약을 맺은 사람이 이후 다른 계약들을 늘려가며 ‘레버리지’를 높이는 것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
  
‘행동주의자의 모임’ 같은 회원제 트레이딩 클럽에서는 이런 문제를 부분적으로나마 예방할 수 있었다. 이런 클럽에서는 회원 모두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또 얼마만큼의 리스크를 지고 있는지도 파악이 가능하다. 또 서로 수많은 거래로 엮여 있기 때문에 ‘레버리지’를 지나치게 높였다가 파산했을 때 겪을 파장에 대해서도 미리부터 조심을 한다. 하지만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던 모든 VOC 트레이더들이 이런 트레이딩 클럽에 소속된 건 아니었다. 그러니 일반적인, 클럽 외부의 거래에 있어서도 계약 상대가 너무 무모하게 ‘레버리지’를 높이는 걸 막고 그에 따른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했다.
  
이는 아주 민감한 문제였고, 당장은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옵션 혹은 선도 계약 기간 도중에 가격 변동이 크게 일어날 경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계약 조항 안에 넣어둔다면 손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었다. 18세기에 맺어진 선도 계약 중에는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었다. 계약 기간 중에 VOC의 지분 가격이 10% 이상 변하면 중간 정산을 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어 손해가 커질 것 같은 상황에서 미리 액션을 취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런 원칙은 현대의 선물(futures) 시장에서도 쓰이고 있다. 물론 구체적인 방식은 조금 달라서, 현대의 선물 계약은 트레이더들 사이에서 직접 거래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대부분 중간 매개자를 거친다. 어떤 나라에서는 증권거래소가 이 중개인 역할을 하고, 암스테르담 금융시장에는 이 일만을 담당하는 청산기관(clearing agency)이 따로 있다. 트레이더들은 중앙 청산기관을 통해서만 선물 계약을 사고팔 수 있으며, 모든 트레이더들은 이 중앙 청산기관에 신용계좌(margin account)를 만들어두고 일정 금액의 증거금을 넣어둬야 한다. 매일 장이 마감되면 트레이더는 그날 자신이 입은 손해만큼을 이 신용계좌에 채워 넣어야 하고, 반대로 거래에서 이익을 본 날이면 그만큼 인출해갈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각 트레이더들이 계약을 이행할 수 있을 만큼 재정적 여력이 있는지 어떤지를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고 파탄에 이르기 전에 상황을 수습하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트레이더가 더 이상 계약을 이행할 수 없는 파산 상태에 이르면 그가 입은 손해는 일단 중앙 청산기관이 대신 떠안은 다음 모든 회원 트레이더들이 손실을 똑같이 나눈다. 이렇게 하면 1명의 파산이 지나치게 큰 파장을 불러오는 걸 막을 수 있다.
  
17세기의 상인들은 증거금이나 신용계좌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런 방법으로 파산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했을 수도 있고,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신용계좌와 증거금을 이용한 리스크 조절을 하려면 중앙 청산기관의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한데, 브로커들이 이런 역할을 하기에 딱 적합했을 것이다. 브로커들은 당사자가 아니라 제삼자의 입장으로 거래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로커들은 한 번도 이런 임무를 맡지 않았다.
  
또 다른 추측도 가능한데, 선도 거래를 하는 트레이더들 본인들이 이런 안전장치를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신용계좌와 증거금 제도를 도입하면 아무래도 지켜야 할 규정과 절차가 많아진다. 선도 거래라는 것 자체가 VOC 지분을 거래할 때 생기는 거추장스러운 행정 절차들을 피해 가기 위해 고안된 것이니만큼, 괜히 다른 규정을 만들어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현대의 선물 거래에 쓰이는 것과 같은 안전장치는 도입되지 않았다. 계약 당사자들 간의 대금 결제는 항상 계약 만료 일이 다 되어서야 이뤄졌다. 따라서 모든 선도 계약은 상대가 계약대로 이행하지 않을 리스크를 수반하고 있었다. 이런 리스크 때문에 계약 상대를 찾지 못하는 경우, 트레이더들은 ‘리포’를 이용했다. ‘리포’ 역시 트레이더가 약간의 돈으로 큰 지분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장치였고, 바로 그 지분을 담보로 맡기기 때문에 돈을 빌려주는 살마도 리스크를 줄일 수 있었다.
  
17세기 후반, ‘리포’ 대출은 암스테르담 부자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재테크 상품이 됐다. 당시 네덜란드가 무역으로 부유해지면서 암스테르담에 부자의 수가 늘어났지만 이들이 안전하게 재산을 투자할 만한 곳은 많지 않았다. 홀란트 주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은 안전하고 이자 수익도 괜찮은 편이었지만 발행량이 한정 돼 있었다. 그래서 VOC 지분을 담보로 받고 이자수익을 올릴 수 있는 ‘리포’가 부유층이 선호하는 투자 대안이 됐다. ‘리포’를 파는 자산가들은 ‘헤어컷(담보 할인율)’을 신중히 설정하기만 하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리스크를 최소화한 상태에서 대출이자를 받을 수 있었다. ‘리포’에는 또 다른 장점도 있었는데, ‘리포’ 계약의 근간이 되는 VOC 지분은 언제고 쉽게 팔아버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채무자가 도망가 버리면 담보로 받은 지분을 쉽게 현금화할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 ‘리포’와 선도 거래는 경쟁관계에 있다고도 볼 수 있었다. ‘리포’ 대출을 해주던 부자들은 트레이더들이 선도 거래보다 ‘리포’를 더 많이 이용하게 하려고 이자율을 점점 낮춰줬다. 선도 고래에 드는 비용이 상당히 적은 편이었기 때문에 ‘리포’ 역시 이자를 많이 받을 수는 없었다. 그 결과 VOC 지분을 담보로 하는 ‘리포’ 거래의 이자율은 4% 미만으로 내려갔다. 참고로, 당시 가장 안정적인 투자자산으로 여겨졌던 홀란트 주 발행 1년 만기 채권이 연 4%의 이자를 지급하고 있었다. 
  
‘리포’ 이자가 낮아지니, 선도 거래로 충분히 지분을 거래할 수 있었던 트레이더들도 점점 더 ‘리포’의 이용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예로 니무스 펠터르스가 그런 사람의 하나였다. 펠터르스는 돈도 많고 암스테르담 상인 사회에서 평도 좋았기 때문에, 원하기만 하면 선도 거래를 해줄 사람을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1676년 10월 선도 계약을 맺기 전에 ‘리포’를 할까도 진지하게 고려했다. 이는 그가 미델뷔르흐에 있던 비즈니스 파트너 피에르 마카레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리포로) 돈을 빌려서 4%, 심지어 3.5%만 이자를 낸다고 해도, 선도 계약을 맺는 게 나을 것 같아. 왜냐하면 ‘리포’는 장부가 3,000길더의 지분을 맡겨도 최대 11,000길더까지만 빌릴 수 있거든, 나머지는 내가 마련해야 해.”
  
다시 말해 펠터르스는 ‘리포’에 적용되는 ‘헤어컷’ 때문에 ‘리포’가 아닌 선도 거래를 택했다. 관연 그 차이가 얼마였을까. 장부가 6,000길더의 지분을 1달 후 만기되는 선도 거래로 사면서, 그는 당시 시장 가격보다 2% 높은 값에 합의했다. 즉 6,000길더의 2%인 120길더가 거래 비용으로 들어간 셈이다.
  
만일 그가 ‘리포’로 지분을 사기로 결심했다면, 장부가 6,000길더의 지분을 담보로 맡기고 22,000길더까지 현금 대출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1달 동안 22,000길더의 3,5%(연간 이율 기준)에 해당하는 83길더를 이자로 내야 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리포’가 비용이 더 적게 들어가는 것 같지만, 22,000길더로는 그만한 지분을 살 수가 없다. 당시 시장에서 VOC 지분의 가격은 454였다. 그러니 펠터르스에게 필요한 돈은 27,240길더(6,000 ⨉ 454 / 100)다. ‘리포’ 대출을 받고도 여전히 모자라는 5,240길더를 어디 다른 곳에서 빌려와야 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선도 거래를 택할 경우의 비용은 120길더, ‘리포’를 택하면 83길더의 ‘리포’ 대출 비용에 추가 대출 비용이 더 들어간다. 만일 펠터르스가 6.67%의 이자로 어디에서든 무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면 이 경우 역시 총비용이 120길더가 되겠지만, 알다시피 담보 없이 대출을 받으려면 높은 이자를 내야 한다. 6.67% 롤 무담보 대출을 받기는 어려웠다.
  
펠터르스는 부자였고 평판도 좋은 상인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6.67% 아래로 돈을 빌릴 수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비용적인 측면 외에도 다른 귀찮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리포’가 아닌 선도 계약을 택했을 것이다. ‘리포’를 택할 경우, 동인도 하우스에 가서 지분을 2번이나 명의 이전해야 한다. 담보로 맡길 지분을 대출자에게 넘길 때 한 번, 그리고 나중에 돈을 갚고 담보를 찾아올 때 또 한 번. 대출 자체도 2번을 따로 받아야 하는 데다 그 과정에서 돈도 여러 번 오가야 하므로 번거롭다. 그러니 아무래도 ‘리포’보다는 선도 계약을 택하게 된 것이다.
  
17세기 암스테르담의 VOC 지분 트레이더들은 자신들이 하는 게임이 꽤나 위험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투기 성향을 가진 전문 트레이더들이 담 광장이나 거래소보다는 상호 간 신뢰가 깊은 회원제 트레이딩 클럽을 선호하게 된 건 우연이 아니다. 그런 곳에서는 또 ‘레버리지’를 너무 많이 쓰는 트레이더라고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선도 거래보다 ‘리포’를 찾는 경우도 점점 늘어났다. 자신의 선도 계약을 받아줄 상대를 찾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종 지분 투자에 대한 유혹이 너무 커지면 곧잘 주의력이 떨어지곤 했다. 1671년, VOCrk 주주들에게 사상 최대 규모의 배당금을 지급하자 주가도 최고치를 넘겼다. 시장에는 낙관론이 넘쳐흘렀고, 누구나 이 바닥에 발을 담그고 싶어 했다. 많은 트레이더들이 리스크가 큰 계약들을 연이어 사들이며 포트폴리오의 ‘레버리지’를 계속 높여갔다.
  
  
  
참고 자료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 로데베이크 페트람 지음, 2011, 이콘
  
길건우 자산관리사(rlfrjsd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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