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건우 Mar 29. 2018

네덜란드의 옵션거래

네덜란드의 옵션거래
  
  
네덜란드의 곡물 무역상들은 이미 1550년대부터 옵션 계약을 사용해왔다. 흉년이 들 때를 대비해 보험을 들어두는 것이다. 기업의 지분에 대한 옵션 거래는 이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후에 등장했다. 기록에 남아 있는 최초의 기업 지분 옵션 거래는 1660년 1월 루이 트립이라는 사람의 것이다. 그는 무기 상인이었다. 루이와 그의 형 헨드릭 트립은 동인도 하우스 맞은편에 ‘트립의 집’이란 뜻의 저택 ‘트리펜하위’를 지은 걸로 유명한데, 이 건물은 1812년부터 현재까지 네덜란드 왕립 예술 과학원으로 쓰이고 있을 정도로 웅장하다.
  
물론 트립 형제 이전에도 회사 지분을 놓고 옵션을 거래한 사람들이 있었을 수 있지만, 적어도 기록상으로는 이들이 최초다. 또한 옵션을 발행하는 브로커들에게 주는 커미션은 1689년에야 등장했으니 옵션 거래는 17세기 후반에 와서야 활발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꽤 늦은 시점이라 할 수 있다. VOC는 1602년 설립되어 바로 그다음 해부터 시민들 사이에서 그 지분이 활발히 거래되어왔고, 선도 거래와 ‘리포’ 역시 수십 년 이상 활발하게 사용되었으니 말이다. 유독 옵션 거래만 이렇게 뒤늦게 활성화된 것은, 옵션이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복잡한 개념이기 때문일 것이다. 옵션에 비하면 선도 계약이나 리포는 개념이 아주 간단하다. 이들은 값을 치르지 않고도 먼저 살 수 있게 해주는 ‘파생상품’이지만, 옵션은 다르다. 옵션은 한 개인이 가격 변동에 대한 리스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또 그 리스크를 대체하기 위해 얼마큼의 프리미엄을 지불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상품이다. 책 <혼란 속의 혼란>에서 투자 전문가는 2명의 초보자들에게 옵션 거래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하지만, 실제로 경험이 적은 비전문가들이 옵션 거래에 발을 담그기는 무척 어려웠다.
  
어쨌든 1650년쯤에는 옵션 거래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트레이더들의 수가 꽤 늘어났다. 이들 대부분은 장기 보유가 아니라 투기를 목적으로 지분을 거래하는 전문 트레이더들이었고, 상당수는 포르투갈계 유대인이었다. 이들은 매일같이 거래소와 ‘로얄 광장’에서 열리는 회원제 트레이딩 클럽에 들렀다.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었고, 또 언제나 VOC 지분의 가격 변동을 관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옵션 거래를 하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도 스스로 잘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단기 투자를 선호하는 투기 목적의 전문 트레이더들과 지분을 장기 보유하려는 일반 주주들은 리스크를 감당하는 성향이 서로 다르다. 요즘 금융업계 용어로 말하자면 ‘리스크 프로파일(risk profile)'이 다른 것인데, 일반 주주들은 기본적으로 리스크를 싫어한다. 이들은 회사가 주는 배당을 받는 것이 투자의 주목적이며, 지분 가격이 너무 급격하게 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지분의 가격이 출렁거린다는 것은 곧 자신의 재산 가치가 출렁거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외 반대로 전문 트레이더들은 지분 가격이 많이 움직일수록 그 가격 변동을 잘 노려 돈을 벌 기회를 찾는다.
  
이렇게 사람마다 리스크에 대한 판단이 다르기 때문에 옵션 거래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옵션 계약은 기본적으로 같은 리스크를 놓고 두 사람의 판단에 차이가 있어야 성립이 가능하다. 한 사람은 보험료를 내더라도 리스크를 피하기를 원하고, 다른 한 사람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대신 보험료 수입을 올리기를 원할 때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VOC가 설립되고 얼마 되지 않았던 17세기 초반에는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장기 투자자에 해당하는 ‘리스크 프로파일’을 갖고 있었으므로, 옵션 계약이 생겨날 여지가 거의 없었다.
  
이제 리스크를 거래한다는 것이 실제 트레이딩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다행히 17세기 당시 옵션 거래에 대해 자세한 기록을 남긴 사람이 있다. 요세프 되츠다.
  
요세프 되츠는 유산으로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았다. 그의 부모는 얀 되츠와 엘리사베트 코이만스 부부다. 요세프 되츠는 부모가 준 돈을 더 크게 불렸다. 스웨덴에서 역청(배에 바르는 끈적끈적한 방수 물질)과 타르를 수입하는 사업을 해서 성공했고, 나중에는 은행업도 시작했다. 당시 그의 재산은 약 89,000길더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2006년 한 연구자가 네덜란드의 황금시대였던 17세기의 부자 250명의 리스트를 발표했는데, 요세프 되츠는 전체 순위에서 101위를 차지했다.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비싼 동네인 헤렌흐라흐트 운하 ‘황금의 커브’ 지역에 화려한 저택을 짓기도 했는데, 폭이 다른 건물의 2배인 이 저택은 필립스 빙분스가 설계했다. 헤렌흐라스트 450번가에 있는 이 건물은 바로 얼마 전까지 도이치뱅크의 네덜란드 지사 사무실이었고, 지금은 고급 임대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황금의 커브’에 있는 헤렌흐라흐트 450번가 저택 외에도 되츠는 공화국 정부가 발행한 채권도 상당량 보유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렘브란트를 비롯한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모으기도 했다(렘브란트의 그림들은 여전히 되츠 가문 후손들의 개인 소유이며 매년 단 며칠만 일반에 공개된다.) 세를 받았던 프린센흐라흐트 운하 변의 주택들과 VOC의 지분 역시 그의 재산 목록에 들어 있었다.
  
되츠는 그가 사거나 발행한 모든 옵션 계약들을 기록해뒀다. 계약이 체결된 가격과 날짜, 그리고 거래된 프리미엄의 액수도 꼼꼼히 적었는데, 그 장부에는 심지어 그가 가지고 있던 지분이 본인의 것인지 ‘리포’ 계약에 대한 담보로 받아서 임시로 보유하고 있는 것인지도 구분되어 있었다. 이런 정보들을 종합해보면 그가 왜 옵션 거래에 참여했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1675년 3월 12일, 되츠는 5건의 ‘콜 옵션’을 샀다. ‘콜 옵션’은 미리 정해놓은 가격으로 미래의 특정 날짜에 지분을 살 수 있는 권리다. 각각의 ‘콜 옵션’은 장부가 3,000길더의 VOC 지분을 놓고 맺어졌는데, 계약 상대는 모두 포르투갈계 유대인들이었다. 이들의 이름은 로드리고 디아스 헨리크, 마누엘 멘데스 플로레스, 안토니오 로드리기스, 사무엘 데 엘리사 아브라바넬, 요세프 혼살베스 데 아세베도였다.
  
5건의 ‘콜 옵션’은 모두 행사 가격이 450이었다. 행사 일은 1675년 5월 1일이었으니 계약 시점에서 약 50일 후였다. 다시 말해 장부가 3,000길더의 지분 5개를 1675년 5월 1일에 각각 450의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 대가로 되츠는 3명에겐 180길더씩, 나머지 2명에겐 165길더씩 해서 총 870길더의 프리미엄을 지불했다.
  
만일 5월 1일의 VOC 지분 가격이 450보다 낮다면 되츠는 옵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그냥 만료되게 놓아둘 것이다. 이미 지불한 프리미엄은 손해로 남게 된다. 반대로 그날 VOC 지분 가격이 450보다 높아지면 되츠는 지불한 프리미엄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되츠 같은 부자가 왜 이런 계약을 맺었을까? 3월 12일 VOC 지분 가격은 447에 머물고 있었고, 이 시점에서 그는 이미 장부가로 무려 36,000 길더나 되는 VOC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보면 되츠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콜 옵션’을 산 게 아니라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고 도박을 걸었던 것 같다. 5명의 계약 상대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옵션을 팔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되츠와 달리 VOC 지분 가격이 450 위로 올라가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되츠가 항상 이렇게 옵션을 도박처럼 구입한 것은 아니다. 가격의 변동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는 갖고 있는 VOC의 지분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보험을 들 듯 옵션을 사거나 팔기도 했다. 1678년 5월 4일의 경우를 보자. 그는 행사 가격이 340, 행사일이 그 해 8월 1일인 옵션을 발행해서 팔았다. 보통 그렇듯이 계약의 대상은 장부가 3,000길더의 지분이었다. 옵션을 산 사람은 길리암 벤투린이라는 사람이었다. 되츠가 벤투린에게서 받은 프리미엄은 360길더였다(1675년에서 1678년 사이에 되츠는 갖고 있는 VOC 지분을 상당량 처분했다. 그가 가진 지분의 장부상 가치는 이제 8,090길더였다. 이날 지분의 시장 거래 가격이 319였으므로 이 지분의 실제 가치는 25,807길더였다.)
  
되츠가 한 것처럼 지분을 실제로 보유하고 있으면서, 행사 가격이 현재 시장 가격보다 훨씬 높은 ‘콜 옵션’을 만들어서 파는 행위를 지금은 ‘커버드 콜(covered call)'이라 부른다. 이렇게 하면 단기간의 가격 변동에 대한 보험을 들 수 있다. 만일 옵션이 만료되는 8월 1일까지 VOC 지분 가격이 떨어졌다고 하자. 그러면 되츠가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지분의 가치가 하락하지만, 그 대신 ’콜 옵션‘을 팔아서 받았던 프리미엄으로 손해의 일부를 커버할 수 있다. 반대로 VOC 지분 가격이 340 이상으로 올라가면? ’콜 옵션‘을 사간 벤투린은 당연히 340에 지분을 사는 옵션을 행사할 것이니 되츠는 그만큼 손해를 본다. 하지만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지분 가치가 올라가므로 그 손해를 일정 부분 커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VOC 지분 가격이 오르긴 하지만 340을 넘지는 않는, 즉 319에서 340 사이에 머무르는 경우는 어떻게 될까? 이것은 베스트 시나리오다. 이런 상황이라면 벤투린은 ’콜 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며, 되츠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 가치만 올라갈 것이다. ’커버드 콜‘은 이렇게 지분 가격 변동에 따르는 충격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었다.
  
  
  
  
참고 자료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 로데베이크 페트람 지음, 2011, 이콘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의 중앙은행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