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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최대의 화약고가 터지다 <강철비>

                                                                                                      

처음 <강철비>의 포스터가 공개되었을 때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는 이모티콘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략 난감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촌스러웠기 때문이다. ‘북한 쿠데타 발생’이라는 붉은 문구에 인물을 앞세우는 한국 포스터의 특성상 북한 군복을 입은 정우성의 모습이 딱 80년대 영화 같은 느낌이었다. 다행히도 영화는 세련되었다. 액션은 강하고 전개는 스피디하다. 양우석 감독은 본인이 다음에 연재했던 웹툰을 영화화했다. 원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영화로 만든다면 더 포인트를 잘 살릴 수 있지 않을까? 더군다나 <변호인>의 천만 감독인데. 그런데 아쉬움이 크다. 

                                                                                                             

양우석 감독이 스토리를 썼던 다음 웹툰 <스틸레인>을 원작으로 한 <강철비>는 초유의 북한 쿠데타를 다루고 있다. 북한 최정예요원 엄철우는 군부 내에서 중국으로 정보를 빼돌리는 무리가 있다는 소식과 함께 암살을 지시받는다. 개성공단 행사 날, 암살을 준비하는 엄철우. 하지만 타겟은 나타나지 않는다. 같은 시각 대한민국. 미군 전차 중 한 대가 훈련에서 복귀하지 않는다. 그 전차는 북한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고 행사장은 쑥대밭이 된다. 상처 입은 북한 1호-여러분들이 모두 아는 그분-를 데리고 도망치는 엄철우. 군부의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긴박한 상황에서 그는 북한 1호를 데리고 남한으로 내려온다.

                                                                                                          

<강철비>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단연 스토리다. 북한 쿠데타라는 소재가 주는 흥미가 상당한데 ‘오, 진짜 북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면 이럴 수 있겠다’ 라는 상황들이 담겨 있다. 그래서 쿠데타 후 상황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가 잘 되어 있다. 스토리는 이 체계를 따라 속도감 있게 흘러간다. 승차감 좋은 차가 속도를 내지만 운전자가 실력이 좋기에 마치 쇼파에 앉은 거처럼 편한 느낌이다. 여기에 액션의 효과도 상당하다. 긴박감 넘치는 상황연출에 액션보다 좋은 것도 없다. 육탄전은 물론 총격전 역시 쾌감이 상당하다. 

                                                                                                      

스토리가 좋은 작품들의 특징은 방향성이 좋다. 남과 북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 걸리는 문제는 ‘과연 북한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이다. 북한은 영화에 있어 참 좋은 소재이지만 리스크를 가진다. 지켜야 될 선이 있고 방향이 있다. <백악관 최후의 날>처럼 너무 큰 상상력을 부여하자니 허황 되 보이고, 우리는 한 민족이고 친구다 라고 말하기에는 신파성이 강하다. <강철비>는 딱 그 중간을 향한다. 현실감 있는 북한의 쿠데타 시나리오를 만드는데 이는 남과 북, 미국과 일본, 중국의 입장이 모두 고려되어 있다. 좋은 시나리오의 완성은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을 때 탄생한다. 감독은 단순히 ‘북한과 남한’의 문제가 아닌 세계가 주목하는 ‘한반도 문제’를 그려냄으로 북한의 묘사에 있어 생동감을 부여한다.  

                                                                                                             

이런 장점들만 볼 때 <강철비>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하지만 흐름으로 보자면 아쉬움이 남는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화 했지만 그 원작이 감독의 작품이기에 더 포인트를 살리고 리듬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의미적인 포인트를 살리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장면 장면 포인트를 살리는 데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방향성과 의미는 분명 좋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위해 너무 많은 걸 담아내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씬 하나하나가 지저분해 지는 감이 크다. 감독도 이를 알았을 것이다. 작품은 담은 만큼 무거워 진다. 이 무거움은 관객을 쉽게 지치게 한다. 이는 상업영화의 미덕에 어긋난다. 그래서 감독은 코믹과 감동 드라마적 요소를 넣었을 것이다. 빵빵 터지는 유머와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드라마는 좋았다. 하지만 섞는 작업이 부족했다. 액션은 액션끼리, 감동은 감동끼리, 코믹은 코믹끼리 모아두다 보니 서로 섞여 하나의 리듬을 만드는 맛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하나하나 보면 좋은데 영화 자체는 밋밋하다. 눈 코 입 다 미인인데 얼굴에 붙이고 보니 조화가 안 되는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연기에 대해 말하자면 호흡이 좋았다고 본다. 정우성의 연기는 경직된 느낌이 강하나 북한 최정예요원이라는 점, 남한에 온 뒤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캐릭터에 어울리는 연기라 볼 수 있다. 그의 모습을 따라 정직될 뻔한 관객의 숨통을 쉬게 만들어 주는 건 곽도원이다. 그의 코믹 연기는 유효타가 강하며 능숙하고 능글맞다. 대통령과 당선자를 연기한 김의성과 이경영의 호흡 역시 백미다. 서로 상반되는 입장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한 두 사람은 보이지 않는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당긴다. 김갑수, 조우진, 정원중 등 탄탄한 조연 라인 역시 작품의 무게감을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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