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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그 미묘한 관계

<브이아이피>, <강철비>

                                                                                                      


대한민국 문화계는 정말 좋지만 민감함 때문에 함부로 손을 델 수 없는 소재를 지니고 있다. 바로 ‘남과 북의 관계’다. 6.25 전쟁 혹은 ‘빨갱이 타도’를 외쳤던 60~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종종 등장했지만 현대의 남과 북의 관계를 다룬 작품들은 그 조심성 때문에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파급력을 생각했을 때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왜 남과 북의 관계는 유독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이 문제가 두 국가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일본-중국-러시아라는 세계 최대의 강대국들이 연관되어 있기에 단순하게 접근하기 힘들다. 2017년 개봉한 두 작품, <브이아이피>와 <강철비>는 참으로 신중하게 남과 북의 관계에 접근했다.

                                                                                                           


북에서 온 손놈?


반가운 사람은 손님이다. 허나 불쾌하면 손놈이다. <브이아이피>의 김광일은 이 손놈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인간이다. 그는 북에서 연쇄살인을 저질렀고 이 나쁜 버릇을 남한에서도 반복한다. 북한에 있을 당시 김광일은 고위층의 자제였기에 처벌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사건을 파고 든 리대범이 좌천을 당하고 이후 김광일에게 보복을 당했다. 헌데 남한은 어떤가. 그는 여기서 고위층도 아니며 그저 북한에서 넘어온 살인마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국정원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 이 관계는 꽤나 복잡하다. 국정원 현장요원 박재혁은 내부에서 힘을 키우기 위해 김광일의 귀순을 기획했다. 그리고 이 계획에는 폴이라는 미국인이 관여되어 있다. 


폴은 박재혁에게 말한다. 만약 김광일을 미국에 데려갔다고 치자. 그가 뉴욕 한복판에서 저런 살인을 저질렀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었을까? 그게 불가능하기에 그를 한국에 맡긴 거다. 남한과 북한은 서로의 체제 선전을 위해 귀순한 이들을 적극 이용한다. 특히 북한의 고위층이 남한으로 오게 되는 경우 그들이 하는 말 하나하나에 신빙성이 있다 여겨지기에 귀한 손님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이 손님이 연쇄살인범이라면, 그가 남한의 사람들을 죽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재혁의 동료는 그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 심지어 국정원 직원들이 당했음에도 말이다. 


우리는 손님과 손놈을 착각하곤 한다. 음식점에 들어왔다고 다 손님이 아니다. 과한 부탁, 더러운 부탁, 명령에 가까운 부탁을 하는 손님은 손놈으로 간주, 쳐낼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남북 관계에서는 이 칼 같은 태도가 힘들다. 북한 인사 하나하나가 그들에게는 ‘힘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강철비> 역시 이런 모습을 잘 보여준다. 북한 1호가 쿠데타로 인해 남한으로 내려오자 북한 군부는 1호를 죽이기 위해 암살단을 남한으로 보낸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남한의 군인들이 희생을 당한다. 우리 군인들이 왜 우리 대통령도 아닌 다른 나라 수장을 지키기 위해 죽어야 하나. 그것도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적대국에게 말이다. 이는 한 민족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총과 칼을 맞댄 역사를 써내려 간 남과 북만이 가지는 비극이다.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 


<강철비>는 균형 잡은 시각으로 남과 북의 관계를 바라보는 영화다. 특히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탁월하다. 이 영화에는 두 명의 대통령이 등장한다. 현직 대통령인 이의성은 북한에 강경하며 대통령 당선자인 김경영은 북한에 온건하다.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고 군부가 집권한 후, 선전포고를 하자 미국은 선제핵공격을 제안한다. 이 작전에 찬성하는 이의성은 임기 내내 북한에 시달린 고통을 호소하듯 이리 말한다. ‘그들은 항상 저래왔어요. 앞에서는 대화를 요구하고 뒤에서는 폭격을 가했죠.’ 그의 말대로다. 북한은 천안함, 연평도를 일으키고도 뻔뻔하게 대화 그리고 지원을 요구했다. 그들에게는 사과는 물론 반성의 메시지도 들을 수 없었다. 특히 연평해전은 남북 관계가 가장 좋았다는 김대중 정권 때 일어난 사건이다. 북한은 정권 유지를 위해 남한을 공격했고 그때마다 남한은 참고 그들의 대화 요구를 받아들여야 했다. 


반면 선제핵공격을 반대하는 김경영은 이리 말한다. ‘저 작전을 쓰면 우리 쪽의 피해도 너무 큽니다.’ 김경영은 ‘우리는 한 민족’, ‘남과 북은 하나’라는 감성적인 주장보다는 우리에게 닥칠 ‘피해’를 먼저 생각하는 실용적인 태도를 지닌다. 싸움에는 묘한 법칙이 있다. 많이 가진 사람이 무조건 손해다. 압도적인 힘으로 끝낼 수 없을 바에야 ‘우리 몇 명 죽고 말죠’는 성립하지 않는다. 또, 이 장면에서 김경영은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힘으로 저들을 굴복시킨다 한들, 저들이 자신들을 공격한 우리를 한 민족이라고 받아들이겠습니까?’ 이 대사는 왜 남한이 먼저 북한을 공격할 수 없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대사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 후 더 큰 고통을 안고 있다. 전쟁은 압도적인 힘으로 끝을 냈으나 그곳에서 일어나는 테러의 공포로 많은 미군이 희생당했다. 미군의 주기적인 중동 개입은 반감을 가져왔으며 결국 미국 내에서의 테러 공포로 이어졌다. 이는 남한이 선제타격 후 힘으로 북한을 굴복시킬 때에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는 문제다. 자연스러운 흡수통일이 아닌 무력통일의 경우 상대국의 국민들을 힘으로 굴복시킬 생각을 하고 시행해야 된다. 이는 길고 긴 갈등과 싸움을 의미하며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폭력의 반복을 낳을 수도 있다.


통일이라는 커다란 그림을 그리는 정치인이라면 절대 선제타격을 말할 수 없는 이유를 <강철비>는 영리하게 보여준다. 자신을 때린 사람을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물며 북한 주민들에게 그들의 사상은 종교처럼 절대적이다. 서서히 이뤄지는 교화가 아닌 무력으로 인한 일방적인 지배는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만들 뿐이다. 허나 그렇다고 이의성의 입장이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다. 도저히 통일이 보이지 않을 때, 오히려 통일 이후 펼쳐질 문제가 두렵게 다가올 때 북한은 부담스럽고 거북하게 느껴진다. 차라리 지도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노무현 정권 때 통일이 이뤄질 듯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나 이후 확 바뀌어버린 북한의 태도를 경험한 이들이라면 더욱.

                                                                                                            


결국 핵심은 미국이다


지난 9년의 자칭애국보수 정권의 북한 외교는 최악이었다. 그들은 북한에 대해 아예 손을 놓아버렸다. 남한이 북한에 손을 놓으면 북한 문제를 주도하는 건 미국이 된다. 안 그래도 북한은 남한과의 대화보다는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꿈꾸고 있다. ‘아니, 그러면 미국이랑 북한이랑 둘이 대화해서 해결하면 그만이지, 북한 귀찮아 죽겠는데 그냥 놔버리자’ 라고 말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미국과 북한이 합의를 본 내용을 남한이 따라야할 때이다. 우리는 협상 테이블에서 아무 힘도 쓰지 못한 채 북한이 원하는 대로, 미국이 시키는 대로 행해야 될지도 모른다. <브이아이피>는 이런 상황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김광일의 남한귀순을 기획한 건 재혁과 그의 선배지만 이 모든 계획을 짠 건 미국인 폴이다. 그는 김광일이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그를 남한에 보냈다. 김광일이 알고 있는 중국 내 북한 계좌의 돈을 얻어내기 위해서다. 한 마디로 남한은 미국이 돈을 벌기 위해 처치 곤란의 살인마를 강제로 맡은 것이다. ‘왜, 너희 이거로 실컷 체제 선전도 하고, 국정원 직원 둘은 힘도 얻었잖아. 그러니까 서로 좋은 거래 아니야?’ 라고 악마 같은 폴은 말할 것이다. 미국은 영원한 우방이 아니다. 철저한 자본원리에 따라 움직이며 실익을 따져 행동으로 옮기는 국가가 미국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나치게 미국을 신뢰하고 의존하며 알아서 힘을 키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건 미국을 신뢰하다 뒤통수를 맞는 장면을 <강철비>는 보여준다. 선제핵공격이 실패하자 미국은 작전을 중단한다. 북한의 위협에 노출된 대통령은 재공격을 촉구하나 미국은 거절한다. 그 이유는 한국보다 ‘더 좋은’ 파트너, 일본 때문이다. 일본은 한때 세계 1위를 넘봤던 경제 강국이며 여전히 경제적으로 한국보다 우위에 있는 국가다. 한국보다 일본에서 얻을 것이 더 많기에 미국은 일본을 버리지 않는다. 영화에서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북한 군부는 핵을 이용해 미국에게 협상을 이끌어낼 계획을 세우는데 이 역시 한 없이 우울하다. 그들은 먼저 일본 영해의 상공에서 핵을 터뜨린다. 그리고 대전을 공격, 남한 내에 전자시설을 모두 무력화 시킬 계획을 세운다. 이 계획 후 그들이 인질로 잡는 건 ‘주한미군’이다. 북한의 안중에도 남한은 없다. 오직 ‘미국’ 뿐이다.


우리가 북한에게서 손을 떼는 것. 이건 북한이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다. 그들은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종용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남한은 그저 이용당하는 존재로 전락하길 바라고 있다. <브이아이피>와 <강철비>가 동시에 미국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 건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북한 문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높다. 이런 현상이 지속될 시에 통일은 더 멀어진다. 나와 너 사이의 문제를 우리가 풀어야 되는데 제삼자가 껴들어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으니 진척되기 힘들다. 그렇다고 북한 문제를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다. ‘한민족’이기 때문이 아니다. 혹여 북한이 미국과 협상을 이끌어내고 국제무대로 나가게 된다면 남한은 미국에 의해 그들이 원하는 요구를 받아주어야 한다. 이 순간 정말로 ‘코리아 패싱’이 시작되는 것이다.

                                                                                                    


영화가 제시한 해답, 우리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브이아이피>와 <강철비>가 내리는 해답은 같다. 결국 ‘주체’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먼저 <브이아이피>를 보자. 폴의 설계에 의해 한국에서 여자들은 살해당하고 그가 제대로 김광일을 관리 못하면서 형사 채이도도 죽음을 당한다. 분노에 찬 재혁에게 폴은 다시 찾아온다. 중국에서 붙잡힌 광일을 푸는 일에 그의 도움을 요청한 것. 한국과 미국의 우호관계, 광일이 가진 중국 내 북한의 계좌번호 때문에 결국 재혁은 중국으로 간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광일을 잔혹하게 죽여 버린다. 표면적인 이유는 중국 쪽과 연이 닿은 장성택의 축출로 그 라인이 붕괴, 중국 내 북한 계좌는 이미 중국이 다 가져가 버렸으니 김광일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박재혁 개인의 복수가 담겨 있다. 그는 북한과 미국에 의해 끌려 다니는 관계를 끝내려는 듯 북한의 고위층 자제를 죽이고 미국 쪽 인사의 명령을 거부한다. 이는 ‘남과 북의 문제는 한국이 알아서 주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강철비>의 결말 역시 마찬가지다. 난 이 파트의 제목을 ‘우리가 주체’라고 하였다. 이 ‘우리’에는 대한민국, 남한만을 포함하는 게 아니다. 북한도 포함이 된다. 군부 내 쿠데타 세력의 선전포고를 끝내는 건 북한의 최정예요원 철우다. 난 이 결말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그 민족의 문제는 그 민족이 해결해야만 한다.’ 우리에게 분단의 아픔이 찾아온 건 우리 민족의 문제를 우리 손으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마찬가지다. 남의 손을 빌리기 시작하면 의존하게 되고 나 자신은 도태되게 된다. 남한은 미국에게, 북한은 중국에게 그래왔기에 우리는 우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채 ‘핵’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접어들게 되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통일과 가장 가까운 정권이라 말했던 이유가 있다. 적어도 그때는 우리가 우리 문제를 주체적으로 이끌었다. 그랬기에 많은 이들이 혹시 통일이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꿈을 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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