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무사>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김성수 감독, 안성기, 정우성, 주진모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이 영화는 그리 평이 좋은 작품은 아니지만 난 이 작품이야 말로 한국판 <반지의 제왕>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재미있게 보았다. <신과함께-죄와 벌> 역시 내 취향저격 영화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난 이 작품이 실패를 거듭했던 국내 판타지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영화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하지만 참고로 난 원작 웹툰을 보지 않았다. 그 점이 내가 이 작품을 더 재미있게 본 요인이 될지도 모르겠다.
한국 판타지의 실패 원인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고 본다. 첫 번째는 가장 중요한 스토리다. 좋은 원작을 가져온 작품들이 종종 있었으나 스토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저게 뭔 소리야?’ 또는 ‘왜 이렇게 싱거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두 번째는 CG다. 화려한 헐리웃 작품들에 비할 때 기술적으로 너무 뒤쳐졌기에 촌스러워 보이는 경우가 허다했다. <신과함께>의 시작도 상당히 낯설었다. 자홍이 건물에서 떨어지고 사망하는 장면, 이후 49일 동안 7번의 재판을 시작하는 그 빠른 도입부는 마땅한 사전설명이나 깔고 들어가는 인물묘사가 없기에 급작스러운 기분이 강했다. 영화가 이 빠른 템포를 잡은 비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익숙한 감정, 두 번째는 개성 강한 캐릭터다.
이야기는 낯설되 감정은 익숙하다. 좋은 상업영화가 가지는 미덕은 이에 근거한다. <신과함께>는 가족의 ‘사랑’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감정을 선보인다. 자홍과 동생 수홍, 그리고 어머니가 만들어내는 따뜻한 가족 이야기는 낯선 세계에 떨어진 관객들에게 익숙함을 주어 편안하게 영화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런 점 때문에 이 영화를 ‘또 신파’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 또 신파다. 한국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신파로 빠진다는 것이다. 헌데 난 이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 액션영화의 영웅주의와 애국심 강요, 일본 상업영화의 쓸데없는 교훈 강요 등등 각 국가마다 영화에 따른 특징들이 있다. 한국의 경우 ‘한의 민족’이라는 말처럼 신파가 가장 대중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감정이다.
그리고 신파도 신파 나름이다. 울음을 짜내기 위한, 오직 눈물만을 위한 신파가 있고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묻어나 눈물을 자아내는 신파가 있다. 이 작품의 경우 탄탄한 원작이 있기 때문인지(원작을 보지는 못했지만) 나름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며 감정에 골을 더한다. 덧붙여 지옥에서의 에피소드는 생소하지만 이승에서의 에피소드는 익숙함이 강하다. 불우가정 문제, 군대 문제, 소방관의 처우 문제 등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담아내며 신선함과 익숙함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캐릭터의 경우 왜 이름 있는 배우들을 많이 기용했는지 잘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연기를 잘하는 배우’와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배우’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굳이 연기력이 좋지 않아도 주연을 맡고 화제가 되는 배우들은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들 줄 아는 이들이다. <신과함께>는 각각의 캐릭터가 가지는 개성이 뚜렷하다. 하정우, 주지훈, 김향기, 차태현 등 배우들은 각자가 가진 색으로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포장한다. 여기에 김동욱, 도경수, 오달수, 임원희, 이정재, 이준혁, 예수경 등 역시 각각의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내며 극의 매력을 살려낸다.
개인적으로 김용화 감독이 이 작품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는 생각이 든다. 김용화 감독은 <미스터 고>로 만화원작의 기술력이 필요한 작품을 찍었으나 기대 이하의 성과를 거두었다. <오! 브라더스>,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로 실패 없이 달려온 그에게 <미스터 고>의 실패는 상당히 뼈아팠을 것이다. 그는 <미스터 고>와 같은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요구하는 만화(웹툰) 원작의 작품에 다시 도전했고 (개인적으로) 성과를 이뤘다고 본다. 웹툰 속 세계관을 표현해내기 위한 CG 기술의 섬세함이 돋보이는데 이 기술적 효과 덕분인지 난잡할 수 있는 배경임에도 불구 전혀 그런 느낌이 없다. 당연히 촌스럽거나 어색한 느낌도 들지 않고 말이다.(어색한 건 딱 한 순간 있었다. 자홍이 소방관일 때 고양이를 구조하는 장면에서 고양이만 살짝 어색했다.) 스토리의 경우 가족의 사랑이라는 익숙함 외에도 중요한 요소가 하나 있다. 바로 이 작품의 핵심인 ‘업보’다.
난 이 영화가 한 인간이 가진 업보를 통해 ‘수직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은 수평으로 바라봤을 때는 비교당하기 마련이다. 취업이 늦고, 변변찮은 직업에 종사하고, 결혼이나 출산이 늦어지고. 그럴 때면 삶이란 보잘 것 없이 느껴진다. 하지만 삶을 수직으로 본다면 달라진다. 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이라도 삶 속에 남에게 큰 상처와 고통을 준 순간이 있다면 업보에 따라 지옥에서 벌을 받는다. 반면 아무리 비루하고 미천하게 살아왔다 하더라도 가족을 위해 헌신을 다하고, 경쟁과 욕심에 눈 먼 삶보다 행복을 위해 노력해 왔다면 그 삶은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는 삶이다. 영화는 자홍의 수직의 삶을 통해 그와 그의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 사랑, 인내 등 모든 감정을 보여준다.
<무사>를 보고 한국판 <반지의 제왕>이라고 생각했던 거처럼 과장된 리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한국 판타지 영화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업보와 사랑으로 써낸 한국산 신파 판타지. 신파라는 단어가 거슬릴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해가 될 것이다.